많은 분들은 민사소송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이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소송을 미루려고 합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고, 한 번 더 연락해 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간을 끕니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스스로 약속을 지킬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 괜히 일을 키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건을 가까이에서 보다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의 장면을 더 자주 보게 됩니다. 사람을 가장 지치게 만드는 것은 소송 그 자체가 아니라, 소송도 아닌 상태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 시간입니다. 명확한 절차도 없이, 끝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싸움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사람을 가장 빨리 지치게 만듭니다.
제가 매일같이 보는 것은 돈을 받지 못한 채 계속 상대방을 설득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A씨는 일을 해 주고도 대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도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기다려 보았습니다. 메시지를 보냈고, 전화를 했고, 약속 날짜를 몇 번이나 다시 잡았습니다. 상대방은 “이번 달만 조금 어려우니 다음 달에 꼭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A씨는 또 한 번 기다립니다. 그런데 다음 달이 되면 또 다른 사정이 생깁니다. 그렇게 기다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돈보다도 ‘왜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지’에 대한 피로가 더 크게 쌓이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진다는 점입니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됩니다. 그 사이에 A씨는 계속 연락을 합니다. 언제 주느냐고 묻고,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고, 또다시 약속을 잡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실제로 지켜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감정은 점점 더 상하고, 일상 속에서 그 문제를 계속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는 규칙이 없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릅니다. 마치 링에도 올라가지 않은 채 링 밖에서 계속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경기는 시작되지 않았는데 체력만 계속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사람은 생각보다 이런 형태의 싸움에서 더 빨리 지쳐 버립니다.
민사소송이라는 것은 사실 싸움을 크게 만드는 장치라기보다, 싸움에 규칙을 만들어 주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재판부라는 심판이 있고, 법에 따른 주장과 증거 제출이라는 룰이 있으며, 결국 어느 순간에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누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어떤 자료가 증거가 되는지, 언제까지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지가 모두 정해진 상태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링 위에 올라가면 최소한 어디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링 밖에서 계속 말로만 부딪히는 것보다 훨씬 정리된 싸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감정적인 설득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와 주장으로 문제를 풀어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는 굳이 직접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변호사를 링 위에 올려 보내면 됩니다. 변호사가 서면을 쓰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응하고, 절차를 관리합니다. 상대방과 부딪히는 대부분의 과정은 변호사가 맡게 됩니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링 아래에서 상황을 편하게 지켜보면 됩니다. 굳이 너무 가까이에서 계속 주먹을 휘두르거나 맞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변호사와 사건위임계약을 체결하면 이제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필요한 순간에만 방향을 정하면 됩니다. 그동안 싸움에서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민사 사건에서 반복되는 패턴은 하나입니다. 돈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끝까지 스스로 해결하려 합니다. 마지막까지 연락하고, 마지막까지 설득하고, 마지막까지 기다립니다. “이 정도 일로 소송까지 가는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더 지치게 됩니다. 그걸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일찍 변호사를 링 위로 올려 보냈다면, 그동안 귀하는 훨씬 덜 지쳤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이제 그만 링 밖에서 계속 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변호사를 링 위에 올려 보내십시오. 법적인 다툼은 변호사가 대신 하겠습니다. 서면을 준비하고, 절차를 관리하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상대방과 입씨름하는 지저분한 일은 변호사가 맡겠습니다. 그동안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며 숨을 고르시면 됩니다. 이미 충분히 오래 버티셨습니다. 때로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싸움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라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