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변명을 하지 않기 위해서

by 지세훈 변호사

마이크 타이슨이 한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계획은 있다. 얼굴에 한 방 맞기 전까지는." 법정에 서거나 수사기관의 조사를 앞둔 사람들을 오래 만나다 보면, 이 말을 되새기는 순간이 참 많습니다.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것은 대개 치밀하게 준비된 '자기 이야기'입니다. 상대방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본인이 왜 억울한지, 그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를 나름 논리 정연하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있으면 공감은 갈지언정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그럴듯하지는 않습니다. 본인 머릿속에서 완성된 이야기는 언제나 본인에게 유리하게 편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기억을 구성합니다. 불리한 사실은 축소되고, 유리한 사실은 강조됩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어떤 의뢰인은 결정적인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그냥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기억하고, 어떤 의뢰인은 분명히 돈을 받은 날짜를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고 뭉개어 떠올립니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의 기억이 원래 그렇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대방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그 '편집된 기억'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변명이 어설픈 이유는 대부분 여기서 출발합니다. 논리의 구멍은 스스로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상대방의 귀에는 "왜 하필 그날?", "그 문자를 왜 삭제했지?", "그 금액을 왜 현금으로 줬지?" 같은 물음표가 순식간에 생겨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맥락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순간, 변명은 오히려 의심을 키우는 도구가 됩니다.


변호사를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외부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이지만, 의뢰인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이중적인 위치가 역설적으로 가장 정확한 피드백을 가능하게 합니다. 저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디를 찌를 것인지를 동시에 생각합니다.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은지, 어떤 대목이 경험칙상 이상하게 들리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첫 번째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의뢰인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때로는 의뢰인이 당혹스러워하거나 억울해합니다. "변호사님은 제 말을 안 믿으시는 건가요?"라고 묻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피드백이야말로 변호사를 만나야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정보입니다. 상대방은 훨씬 더 냉정하게, 훨씬 더 가혹하게 그 이야기를 들을 테니까요.


요즘은 변호사 대신 AI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24시간 대답해주고, 판단하지 않고, 무엇보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런데 AI와 나누는 법률 상담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AI는 기본적으로 '맞다'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사용자가 제시한 상황과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인 채로 답변을 생성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무혐의 가능성이 높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그 가능성을 설명해주고, "이건 사기가 아니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사기가 아닌 이유를 열거해줍니다. 기술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반대 방향에서 그 이야기를 공격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AI는 당신의 이야기에서 모순을 짚어내고, "그 부분은 상대방이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라고 불편하게 말해줄 동기가 없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친절한 AI의 구조적인 한계입니다.


법적 대응 과정에서 자기 서사를 검증받지 못한 채 준비하는 것은, 리허설 없이 무대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혼자 방에서 연습할 때는 막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 서는 순간,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대목에서 침묵이 흐르고, 내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설명이 의외로 복잡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무대가 경찰 조사실이나 법정이라면, 그 깨달음은 너무 비싼 수업료를 치른 뒤에 찾아옵니다.


한 가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겠습니다. 변호사를 만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검증받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도달하는 결론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처음에는 직관에 반하는 조언처럼 들립니다. 억울한데 왜 인정을 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책임의 범위를 정확히 확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100가지 사실 중 60가지가 사실이라면, 그 60가지를 끝까지 부인했다가 들통났을 때의 손실은 나머지 40가지의 주장까지 신뢰를 잃게 만듭니다. 법원은 전부 부인하다가 증거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보다, 처음부터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다툴 것은 논리로 다투는 사람의 말을 훨씬 더 신뢰합니다.


완강히 부인하다가 증거에 막혀 조금씩 후퇴하는 진술은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반면 초기에 사실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법적 해석을 다투는 방식은, 사실을 조작하려는 것이 아니라 법적 평가를 구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이 차이는 최종 결과에서 생각보다 크게 나타납니다. 어설픈 알리바이 하나가 사건 전체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저는 수도 없이 목격해왔습니다.


변호사를 만나는 것은 내 이야기를 대신 해줄 사람을 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이야기에서 위험한 부분을 먼저 찾아내고, 인정할 것과 다툴 것을 냉정하게 분리하고, 그 위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은 때로 불편하고, 때로 내가 믿고 싶었던 것을 내려놓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설픈 변명 하나가 사건 전체를 뒤집어놓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이 일의 가장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상대방이 준비한 한 장의 문자 캡처 앞에서, 몇 달간 공들여 쌓아온 이야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그 자리에서 "진작 말씀드릴걸 그랬나요"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계획은 있습니다. 들통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들통나지 않는 계획은, 혼자서는 절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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