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오드리한테 처음 요구한 것은 놀이터에 가자는 거였다.
학원 가는 길목에 놀이터가 있었는데 수지가 "저기"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놀이터 벤치에 좀 앉아 있다 가자는 말인가 했는데 수지는 미끄럼틀로 직진했다. 놀이터에는 어린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수지가 거침없이 미끄럼틀로 가는 걸 보며 오드리는 까먹고 있던 수지의 장애를 새삼 깨달았다. 수지는 아직 놀이터에서 놀 나이였던 것이다.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이 다섯 명이면 보호자도 다섯 명이라고 보면 된다. 젊은 엄마들은 벤치에 모여 자기 아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집을 파한 아이들이 집에 가기 전에 잠시 놀 수 있는 오후 시간대였다. 매일이 비슷했을 그들의 눈앞에 못 보던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덩치가 큰 십 대 여중생과 엄마도 할머니도 아닌 것 같은 오십 대 여자가 깔깔거리며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은 특이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 활보를 할 수 없다. 오드리는 일찌감치 그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따로 철판이 필요 없었다.
학기 중일 때 수지의 일과는 이렇다.
6교시면 3시 반, 7교시면 4시 반에 하교한다. 그다음 학원부터 가는데 6교시 한 날은 두 곳, 7교시 한 날은 한 군데 학원을 간다. 공부방과 미술학원이다.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여섯 시, 그때부터 여덟 시까지 수지와 놀아주다가 퇴근한다. 린다는 퇴근이 아홉 시지만 한 시간 정도는 수지 혼자 둔다. 수지의 활보 이용 시간이 하루 4시간이라 어쩔 수 없다. 이용인과 보호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해주는 게 활보의 일이다. 린다는 수지의 안전한 귀가만을 강조했다. 수지의 가방을 받아 드는 순간부터 퇴근할 때까지 수지와 보낼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수지가 학원에 가 있는 동안의 대기 시간이 지루하진 않겠느냐고 묻기는 했다. 오드리는 어디든 엉덩이 붙일 자리와 폰만 있으면 대기 한두 시간쯤은 끄떡없었다. 집에 와서 수지와 놀아주는 게 오드리 최대의 숙제였다. 놀아준다는 건 수지의 세계에 첨벙 하고 몸을 던지는 일이다. 그러려면 수지의 감정이나 행동부터 이해해야 하는데 미처 파악이 안 된 초기에는 많이 헤맸다.
수지네 집 비번은 1111이다. 초등학생 때는 수지가 헷갈려해서 아예 잠그지 않았다고 한다. 문을 열고 수지네 집에 들어서면 일단 좁고 빽빽한 공간이 오드리를 압도한다. 둘이 앉아서 놀 만한 바닥 공간이 없기 때문에 수지는 침대에 올라가고 오드리는 작은 휴대용 의자에 앉아 수지와 마주 본다. 수지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오드리를 보고 있다. 오드리는 저 기대를 어떻게 채워줄지 몰라 막막하다. 우선 주변의 어수선한 물건들부터 치우려니 수지가 만지지 말라고 하며 "놀아줘, 놀아줘." 했다. 오드리가 "놀아주세요, 해야지." 하면 수지는 곧장 "놀아주세요, 놀아주세요." 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렇게 바로잡아 주어도 다음날이면 또 놀아줘 놀아줘 했다.
오드리가 "그럼 우리 뭐 하고 놀까?" 물으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했다. 수지는 팔짱을 끼고 오드리가 어떤 제안을 하는지 기다린다. "수지는 뭐 좋아해?" 물으면 "몰라,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한다. 수지는 모른다는 말이 자신의 전유물인 듯 쉴 새 없이 몰라 몰라를 쏟아냈다. 나도 모르겠는데 어쩌냐, 오드리는 암담했다. '몰라' 다음의 무기는 '싫어'이다. 오드리가 눈에 띄는 놀잇감을 가리키며 이거 할까? 하면 싫어, 저거 할까? 싫어, 그럼 텔레비전 볼까? 싫어, 유튜브는? 싫어 싫어 싫어 하며 뭐든 퇴짜를 놓는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거부만 할 거야,라고 작정한 아이 같다. 오드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너도 모르는 네 마음을 알아내라는 말이잖아. 손 안의 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맞춰보라던 폭군이 생각난다.
한 번은 클로이까지 합세하여 놀아 달라고 오드리를 들볶았다. 오드리를 괴롭히는 것이 그 애들한테는 놀이였던 셈. 시달리던 오드리는 "나도 몰라" 하며 바닥에 엎드려 버린다. 머리가 지끈지끈 터질 것 같았다. 수지와 클로이는 이때라는 듯 오드리의 등과 엉덩이, 다리를 마구 밟고 짓이겼다. "그만해!" 오드리는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희들이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버릇없이 굴면 안 돼. 노는 것도 좋지만 쉬지 않고 계속 놀아줄 수는 없어." 오드리는 눌러 왔던 말을 다 쏟아냈다. 아이들 앞에서 울음이 터질까 봐 꾹 참는다. 클로이는 눈치가 빨라 뒤로 물러났는데, 수지는 여전히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키득키득 웃었다. 수지가 악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라는 뜻이다.
"수지야, 선생님이 화내서 미안해. 하지만 수지도 잘못이 있어. 선생님을 힘들게 했잖아. 그러니까 수지도 미안하다고 말해 줘." 클로이가 먼저 "네 선생님 죄송해요." 했다. 수지는 입을 내밀고 가만히 있다. "수지야, 너도 클로이처럼 죄송해요, 해주면 안 돼?" "싫어!" 수지는 폭발 직전의 표정으로 변한다. 오드리는 출구가 없는 밀실에 갇힌 기분이다.
오드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문다. 두 아이도 서로 눈을 굴린다. "선생님 저 갈게요." 클로이는 더 있어봐야 나올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집으로 가버린다. 클로이는 그 뒤 활보선생님이 수지를 혼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녔다. 클로이가 가고 나자 수지는 천진한 얼굴로 "선생님 놀아요, 선생님 놀아요." 한다. 오드리는 야단을 쳐놓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수지는 전혀 타격이 없는 것 같다.
"그래, 뭐 하고 놀까?" 오드리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또 반복이다.
수지가 책이나 그림 같은 걸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이라면 목이 부을 때까지 읽어줄 수 있고 색칠 그림도 얼마든지 같이 그려줄 수 있다. 하지만 수지는 관심이 없다. 일단 수지네 집에 쌓여 있는 놀잇감들을 하나하나 건드려본다. 블루마블 같은 보드게임, 같은 과일 다섯 개 나오면 종 치는 카드 게임, 우노 게임 등 종류는 많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깨알 같은 설명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게임 룰을 이해하기 어려워 포기한 것들도 많다. 수지도 규칙에 맞춰 노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하다가 맘에 안 들면 수지 맘대로 규칙을 바꿨다. 수지가 승부에 민감하다는 걸 알고 오드리는 무조건 져주었다. 어쩌다 오드리가 이겨버리면 수지는 밥상을 엎듯이 게임하던 걸 흩트려버렸다.
방학 때는 학원을 오전으로 당기는 바람에 오드리가 오후의 4시간을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 중간에 밥도 한번 챙겨 먹인다. 인스턴트 음식은 멀리 하기로 린다와 합의했기 때문에 계란 프라이 하나라도 오드리가 직접 해서 먹이려고 한다. 십 평 남짓한 원룸은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싱크대에서 뭘 하나 하기도 불편하다. 밥상을 펼 만한 공간도 없어 수지는 침대에서 쟁반에 받친 밥을 먹는다.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수지가 일반 식단을 받아들일 리 없다. 기껏 해줘도 안 먹고 한쪽에서 식어가는 경우가 많다. 먹어야 놀 거라고 엄포를 놓아도 수지한테는 먹히지 않는다. 수지가 먼저 싫어 싫어!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면 끝이다. 오드리는 선의를 갖고 한 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때마다 상처를 받는다. 반복된다고 무뎌지지는 않는다.
중2부터 '마루'에 간다는 결정이 났을 때 오드리는 안도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1 여름, 겨울방학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뜻이다. 수지는 끝을 모른다. 무조건 계속하자고 한다. 놀이를 하나 마치고 나면 한숨 돌려야 하는데 그걸 다 치우기도 전에 수지는 "이젠 뭐해요 쌤?" 그러고 있다. 그 맑은 눈빛은 어린 뱀파이어의 그것과 닮아 보였다.
오드리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렇게 진을 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청소나 설거지라면 할 수 있다. 수지의 변덕과 심술과 비위를 맞추며 계속 놀아준다는 것은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5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 시간이 있는데 말이다. 거기에 번뜩 생각이 미치자 오드리는 한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30분 놀고 30분 쉬기.
"수지야 선생님이 목이 아파서 계속 말을 할 수가 없어. 사람은 누구나 힘든 일을 하고 나면 쉬어줘야 돼. 수지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 있잖아. 그러니까 30분 놀고 나면 30분은 쉬어줘야 해. 쉬는 시간은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폰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그냥 쉬거나 뭐든 해도 돼. 대신 선생님 쉬는 걸 방해하면 안 돼. 쉬고 나서 더 재미있게 놀자."
수지는 물론 반발했고 저항이 심했다. 왜 쉬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수지는 에너지가 넘친다. 웬만해선 피곤한 줄을 모른다. 오드리는 몇 번이고 며칠이고 계속 설명했다. 어느 순간 수지도 납득하는 듯했다.
"이 바늘이 5에 가면 다시 노는 거야. 다섯 시 되면 말이야."
오드리의 말에 수지는 턱을 괴고 탁상시계만 보고 있다.
"수지야 다른 거 해. 그 시간 되려면 한참 남았어."
"아니야."
수지는 고집스레 시계만 본다. 그 모습이 짠해서 그냥 놀아 줄까 싶다가도 오드리는 눈을 질끈 감는다. 수지가 겨우 인정한 규칙인데 그걸 깨면 안 된다.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으면 규칙이 아니다. 수지는 납득하기까지 그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규칙이 정해지고 나면 누구보다 잘 지킨다. 수지는 뭔가 패턴이 정해지면 그걸 반복하는 데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하여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수지가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놀이가 세 개 정도 자리를 잡는다.
첫째는 편의점 놀이다.
엄마 린다가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수지는 바코드 찍는 걸 좋아하여 항상 편의점 주인 역할이다. 오드리는 손님이다. 바꿔서 놀자고 해보아도 수지는 주인만 고집한다. 수지는 입으로 '삑, 삑' 소리를 내면서. 바코드만 열심히 찍는다. 나머지는 오드리의 원맨쇼에 달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거 살게요. 얼마예요? 아 삼천 원이요? 네 여기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수지는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소리만 한다. 오드리는 방금 산 과자를 냠냠 먹는 척한다. 그러고 나면 더는 할 게 없다. 다시 손님이 되는 수밖에는.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거 살게요. 얼마예요? 아 삼천 원이요? 네 여기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타임루프에 빠진 것처럼 계속 반복이다. 수지는 싫증을 내지 않는다. 몇십 분 떠들고 나면 목이 깔깔해진다. 물을 홀짝인다. 30분 규칙을 정하기 전에는 일부러 물을 천천히 자주 마시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수지야 이번에는 네가 손님 할래?"
"싫어 싫어." 수지는 절대 망하지 않는 편의점 사장이다. 수지가 내는 삑, 삑, 삑 소리는 저 혼자 신이 나 있다. 이왕 하는 놀이이니 수지한테 돈을 가르쳐보면 어떨까, 싶어 게임용으로 나온 가짜 돈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만 원짜리를 주면서 삼천 원이니까 칠천 원 거슬러 주세요, 하는 식으로. 천 원 오천 원 만 원의 차이만 정확히 알아도 성공이다. “칠천 원은 오천 원 한 장이랑 천 원 두 장을 주면 돼.” 오드리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일러주어도 수지는 조금 집중하나 싶더니 바로 싫다며 헤집어 버린다. 빈 손을 내밀며 여기요, 네, 하며 주는 척 받는 척하는 게 더 편하니까.
두 번째는 병원놀이다.
처음에는 배가 아픈 수지를 진찰하고 약을 처방하는 간단한 진료로 출발했지만 수지는 점점 심각한 환자가 되어 갔다. 수지는 유튜브에서 본 심폐소생술 장면에 꽂혀서 한동안 그것만 했다. 누워있는 오드리의 가슴을 힘껏 짓눌렀다. 무방비 상태에서 수지가 온몸으로 내리치는 힘을 받고 오드리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수지는 힘 조절이 어려우니까 역할을 바꾸기로 했다. 그 뒤로 수지는 응급실 중환자 역할만 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되는 환자다. 배가 아파요, 소리라도 하던 때가 그리울 정도로 수지는 의식 없는 환자에 몰입했다. 인형들을 세워놓고 환자와 간호사를 시켰다. 토끼 간호사, 너구리 환자 등 이름도 붙여가며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그 모든 인물들의 대사와 진행은 모두 오드리 몫이었다. 오드리는 바이탈 체크나 복부 초음파 같은 의학 용어를 지피티한테 물어보며 따로 공부했다. 손가락에 끼워서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는 기구의 이름은 '펄스 옥시미터'이다. 수지는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를 쓰면 더 좋아했다.
세 번째로 가장 오래 한 놀이는 엄마아빠 놀이이다.
처음에는 수지도 엄마나 아빠 중 하나를 맡아서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임산부 역할을 하다가 아기를 낳은 후로는 아기 역할만 했다. 아기는 중환자처럼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면 된다. 귀찮게 말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다는 걸 터득한 것이다. 오드리 혼자 밥하고 출근하고 아기 우유 먹이는 등 온갖 일상의 모습을 떠들어야 한다. 인형이 맡은 아빠 몫의 대사도 오드리가 해야 한다. 몇 초라도 소리가 멈추면 수지가 실눈을 뜨고 째려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무슨 말이든 지껄여야 한다. 오드리는 자기 아이 키울 때는 옹알이도 쑥스러워서 잘 못했는데 수지 앞에서는 그러고 있다. 수지가 너무 반응이 없어 "자니?" 하고 물으면 수지는 곧장 "아니." 한다. 수지는 아기인 척 누워 있으면서 오드리의 일인극을 즐긴다. 오드리는 몇 가지 레퍼토리를 만들어두고 돌려가며 써먹었다. 맨날 같은 얘기 한다고 수지가 지겨워하지 않는 것은 신의 한 수이다.
그렇게 열심히 놀아줬으니 수지랑 친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수지는 다음날이면 감정이 초기화되듯 냉랭해진다. 한 번은 갑자기 비가 왔다. 수지는 우산이 있었지만 오드리는 없었다. 수지는 끝내 같이 쓰자는 말을 안 했다. 뻔히 비를 맞는 오드리를 보면서도 수지는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었다. 수지의 특성을 참작해도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지는 먹을 게 넘쳐나도 오드리한테 좀 먹어보라는 말이 없다. 장난으로 하나 달라고 하면 인상을 쓴다. 그러다 한 번은 손을 쓱 내밀어 오드리한테 과자 하나를 주었다. "정말? 나 먹으라고?" 오드리는 한 번 더 확인까지 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때 먹은 마이쮸는 감동의 아이콘으로 오드리 마음에 새겨졌다.
수지가 어쩌다 한 번 과자를 주었듯 마음도 그렇게 열어 주겠지. 어쩌다 한 번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지 마음의 전부니까. 수지는 계산으로 사람을 대할 줄 모른다. 표현이 즉각적이고 직설적이다. 그 순간의 감정은 그걸로 백 퍼센트니까 그거 한 번이면 족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