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잘알못 AI 담당자의 상념
세상에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것들도 '생존을 위해' 혹은 '환경에 의해'라고 생각하는 편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쓰는 언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티브 천국이다. 어렸을 적 '꿈'이라는 단어에 집착했다. 모두 알고 있듯이 꿈은 '잠자는 동안에 일어나는 정신현상'과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모두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문제는 꿈을 뜻하는 영어의 'Dream'도 독일어의 'Traum' 그리고 다른 언어에서의 수많은 '꿈'들에서도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미래에 바라는 소망이 무의식에 가까운 허무맹랑한 이야기와 같다는 범세계적 인식일까? 아니면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을 꿈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생각의 꼬리를 물면 끝이 없다. 다만 언어에 대한 호기심은 나름의 재미가 있다. 특히 어원 찾아보기는 특별히 재미가 있는 분야이다.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다양한 단어를 쓴다. 꿈은 대표적인 단어이다. 이외에도 목표, 골(Goal), 비전(Vision)등이 있다. 물론 각각의 뜻이 다를 것이고 꼼꼼한 사람이라면 모든 단어의 의미를 구분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할 것이다. 다만 아주 평범한 사람 기준에서는 뜻만 통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기분에 따라 느낌 있는 단어를 골라쓸 뿐이다. 그 느낌적인 느낌으로 비전이라는 단어가 다른 것과는 다르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소리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비전(Vision)의 어원이 [vis - 보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보는 행위는 오감 중 하나로 실생활을 영위하는데 매우 실용적인 감각이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실재한다고 인지하기 때문에 '본다'라는 어원으로 시작하는 비전이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실재에 가깝다. 영어 사전에 비전을 찾아보면 1. 시력 2. 환상 3. 환영 4. 예지력 등의 의미로 설명이 되는데 모두 보는 것들에서 파생된 의미다. 따라서 비전은 단순한 미래에 대한 의지가 아닌 실재적 감각을 통한 판단으로 미래의 방향성을 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비전이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질문은 나의 현재 환경에 대한 것들이다. '그 회사는 비전이 어때?' '그 직무는 비전이 좀 있어?' 나아가서는 '너의 인생의 비전이 뭐니?' 등이 있는데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질문받는 사람은 그리 달갑지 않은 질문일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 비전이 너무 안 보여서 혹은 고민해 볼 여유가 없어서 등 비전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진지한 것으로 느껴진다.
글머리 부제에 적힌 것처럼 나는 AI를 잘 모르는 AI담당자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어떤 특정 산업분야에 AI를 적용하기 위해 산업 담당자로서의 고민을 하는 도메인 전문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이러한 직무가 회사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다만 회사에서는 도메인 전문가에 대한 필요성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겸사겸사 시험적으로 운영해보는 것 같다. 평소에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커리어 자체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있던 나에게는 아주 괜찮은 선택지였다. 오늘은 이러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매일 보고[vis] 있는 것은 도메인과 AI이다. 도메인은 내가 기존에 행했던 직무와 연결되어 확장의 의미를 지닌다. 결국 아는걸 조금 더 많이 파고 더 쉽게 남에게 설명해 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따라서 도메인에 대한 확장은 내가 나침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의 페이스에 따라 잘 진행이 되는 것 같다. 문제는 AI라는 녀석인데 일단 그 단어가 주는 울림 자체가 웅장하다. 가깝게는 알파고의 바둑이 떠오르고 멀게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까지 생각하게 되는 묘한 분야이다. 모르는 분야는 일단 독서로 먼저 접근하는 편이다. 독서를 통해 접한 AI는 기계의 모습보다는 데이터의 합이다. 내가 잘 이해했는지 아직도 의심이 가지만 이해한 바를 풀어쓰자면 AI는 활동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 기록(데이터)을 바탕으로 활동 주체의 메커니즘, 즉 작동하는 원리를 알아내는 과정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간다'라는 활동이 있다면 아침에 물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 기록을 시작한다. 가끔은 화장실에 먼저 가는 날도 있다. 아니면 일어나자마자 양치부터 할 수도 있다. 뭐 어찌 되었든 기록이 된다. 그 기록이 무수히 쌓이면 AI는 이 사람은 98%의 확률로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마시고 화장실로 가는 사람으로 판단한다. 그 판단이 뭐가 중요할까?
판단을 가지고 가치로 만드는 것은 도메인의 영역이다. 어느 날 내가 일어났는데 화장실도 안 가고 물도 안 마시면 AI는 '이 녀석이 뭐가 문제가 생겼나?'라는 질문을 핸드폰 화면에 내뱉는다. 물론 지인에게 알람도 준다. 헬스케어 영역이다. 이 사람이 보통 마시는 물이 300~350ml 정도였고 화장실에서 내리는 물은 약 1L 정도 되더라. 그러한 데이터를 1개의 도시의 사람 수만큼 모을 수 있다면? 공공정책 영역이다. 손발이 잘 움직이고 사람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만들었는데 어떻게 더 사람같이 만들 수 있을까? 아 그 녀석처럼 일어나서 물 마시고 화장실에 가게 하면 되겠다. 물론 약 1%의 확률로 양치를 먼저 하게 하면 더 사람 같을 것 같아. 우리가 무서워하는 로보틱스의 영역이다. 설명으로 하니 뭔가 거창한 기술처럼 보이는데 핵심은 '기록하고 판단한다'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핵심은 공업화였다. 기존에 손으로 하던 일들을 지치지 않는 기계를 통해 이행하게 되었다. 물리적 노동력에 대한 대체재였다. 손으로 하던 단순 작업에 대한 생산성은 산업화된 설비의 생산성을 따라오기 어려웠고 이에 맞춰 세상이 변했다. 이때부터 설비를 가지고 사업을 펼치는 일, 설비 유지를 관리하는 일, 설비를 돌아가게 하는 일, 설비가 이행하지 못하는 영역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 등으로 일이 구분되었고 순서대로 소득이 급격하게 낮아진다. 갑자기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력 대체제의 등장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였는지 곱씹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판단력 대체제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판단한다'라는 말은 과거에는 지도자의 역할이었다. 우스갯소리지만 과거의 회사일 수록 회의는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상무님이 최고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결정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산업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우리 상무님들의 인사이트가 크게 빛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이라는 질문을 정량적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그 질문은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데이터로 볼 수 있을까요?'이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아! 좋은 생각이네요. 그래서 데이터는?', '어제 그거 데이터 좀 볼 수 있을까요?'등의 말은 사무실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산업혁명은 공업화로 대표되지만 당시의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도 포괄한다. 결국 사회를 공업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노동의 효율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기술이 빛을 본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데이터로 이야기하는 다음 세대로의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덧붙여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그 데이터는 이전과 다르게 사용하기 좋게 생산되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가 있다면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AI에게 당장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아직 사람이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차갑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람이 대단해서라는 이유는 아니다. 사람은 경험으로 쌓아온 내 안에 축적된 데이터를 무의식적으로 결정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축적해온 노하우라는 데이터를 AI가 학습하게 된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사회영역에서 전방위로 일어나는 기술의 혁신은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다가도 하나로 합쳐지면 무서운 속도로 전진한다. 따라서 언제쯤 어떤 기술이 상업화될까에 대한 고민은 예언에 가깝다. 다만 방향성은 오래전부터 잡혀있고 환경은 AI에게 유리해져 간다. AI는 인간의 판단을 정조준한다. 아주 쉬운 판단부터 어려운 판단까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AI가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게, 다시 말하면 상품으로 원활하게 팔릴 수 있게 고민하는 직업도 존재한다. 아마 도메인 전문가라는 직업이 그런 목적도 포괄하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을까 싶다. AI를 대체재가 아닌 보완제로 먼저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결국 AI가 신기술로써 각 산업에 부담스럽지 않게 자리 잡게 하고 그 맛을 본 산업은 조금 더 좋은 상품을 찾을 것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오퍼레이션이라는 단어를 흔하게 사용한다. 일련의 과정이 주어져있고 그 주어진 반복을 문제없이 해내는 일이다. 보통 기계가 없거나 혹은 기계로 하기에는 인간의 판단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면 오퍼레이션 조직을 구성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업무를 오퍼레이션인지 아닌지로 판단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어떤 극단적인 사람들은 본인의 일은 오퍼레이션이 아니어서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런데 AI가 상용화되고 사업에 깊게 침투하면 과연 어디까지가 오퍼레이션일까? 그리고 오퍼레이션이 아니라고 자부하던 사람의 직장은 괜찮은 걸까?
판단은 고귀한 지적 활동의 산물로 여겨져 과거부터 판단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보상을 부여했다. AI는 판단하는 사람을 정조준한다. 최상위의 판단은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최상위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자본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본인들이 AI 설비를 운영할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지 않은 판단들, 특히나 중간 관리의 판단들은 가장 먼저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그림은 극단적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도구로써의 AI가 일단 침투하게 되면 중간 관리의 1인당 효율성이 급격히 증가되고 그 직장의 수가 서서히 줄어들거나 더 높은 스펙을 요구하게 된다.
모르는 AI라는 분야를 설명하다 보니 글이 길어진다. 다시 비전으로 돌아오면 나의 비전의 긍정적인 면은 아직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AI라는 것 근처에 있을 뿐이지 깊게 이해하고 어떻게 써야 할지는 더 고민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AI가 가져올 변화라는 측면에서 뭔가 뒤통수가 싸한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눈 크게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좋든 싫든 곧 변화는 도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