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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11. 2022

<농촌 체험하기> 첫 수확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서른 세번째 이야기

  내가 산채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동료들이 이미 꽈리고추를 다 따온 뒤였다. 꽈리 고추는 잘 자라서, 싱싱하고 예뻐 보였다. 그날 수확한 꽈리고추는 3개월동안의 작업 끝에 만들어낸 첫 번째 작품이어서, 애착이 갔다. 변하지만 않는다면, 먹거나 팔지 않고 영구 보존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6월 말에 접어들면서,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내내 비 예보가 있었다. 그래서 동료들은 오전 9시에 모여서, 날씨 상황에 맞게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었다. 비가 오게 되면 고추 수확과 같은 외부 작업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부 일정을 진행해야 한다. 일찍 아침식사를 한 뒤 잠시 쉬고 있는데, 7시 30분에 주차장에 모여서 고추를 따러 간다는 문자가 떴다. 나는 원주에서 부지런히 나섰지만, 갑자기 일정이 변경된 터라 둔내면 삽교리에 8시 30분쯤에나 도착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새벽 5시부터 교장선생님 부부가 고추를 따기 시작했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땄단다. 그렇게 두어 시간 동안, 고추 4킬로짜리 3박스 분량을 수확했다. 뒤늦게 합류한 나는 동료들이 따온 고추를 포장하는 작업을 함께했다. 


  포장된 4킬로짜리 박스 세 개중에서, 한 박스는 신반장이 사기로 했고 나머지 두 박스를 태사유통과 농협에 각각 출하해보기로 했다. 태사유통은 산채마을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농산물 유통회사인 반면, 농협은 농어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큰 기업이다. 

  태사 유통 사무실에 가니까, 책상 위에 전날 전국 각 지역에서 열린 농산물별 경매 결과가 놓여 있었다. 꽈리고추는 여러 지역으로 출하되는 데, 청주지역이 한 박스에 32,000원으로 가장 가격이 좋았다. 그래서 우리는 청주로 보내달라고 했다. 다음 날 메시지로 27,000원으로 낙찰되었다는 결과를 받았다. 우리가 고추를 약간 늦게 따는 바람에 너무 큰 것들이 섞여있어서, 가격이 낮았을 것이라는 대표님의 설명이었다. 

  반면 농협에 가서 전날 경매가를 보니까, 2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태사유통에 비해서 너무 낮은 가격이었다. 농협은 보통 대규모 물량을 출하하는 데, 대규모로 매입하는 중간상들이 사가기 때문에 가격이 싸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어디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소규모 박스의 경우 인천쪽으로 많이 보낸다고 한다. 우리도 인천쪽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 받은 우리 꽈리고추의 경매 결과는 역시 2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농산물을 사먹는 내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싼 것을 찾았다. 이제 농산물 공급자 입장에 서니까,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우리의 첫 출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협은 일반적으로 민간 유통회사보다 경매가격이 낮게 형성된다. 우리와 같은 소규모 출하를 하는 농업인한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그 뒤 우리의 유통망에서 농협을 제외하게 되었다.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농산물 유통망중에서, 우리가 경험한 첫번째 유통망이 바로 태사유통과 농협이었다. 그 뒤 수확한 다양한 농산물을 판매해 보니까, 농협보다는 민간 유통회사가, 민간 유통회사보다는 온오프라인을 통한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직거래가 가장 낮은 가격에서 살 수 있는 구조이다. 경매를 통하면 중간 유통과정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지게 된다. 소비자 가격이 비쌀 때는 경매가격의 거의 2배 가까이 높게 형성될 때도 있었다. 

  직거래가 소비자와 농부간 win-win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반면 직거래 구조는 농산물의 품질 보장이 관건이다. 경매는 전문가들이 농산물의 품질과 수급량에 따라서 가격을 결정하는 반면, 직거래는 소비자가 품질을 판단해야 한다. 결국 소비자의 농산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품질평가체계가, 직거래 활성화의 관건이다.

  꽈리고추의 첫 수확 이후 다양한 농산물을 출하하면서, 적절한 유통망을 찾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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