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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3. 2022

<농촌 체험하기> 길 바닥에 누워버린 장미씨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서른 두번째 이야기

  송사장이 트럭에 우리 동료들의 점심식사를 싣고 도착했다. 둔내면 근처의 중국집에서 자장면, 짬뽕, 볶음밥 등을 사왔다. 동료들은 밭 바로 옆의 포장도로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각자 주문한 것을 먹기 시작했다. 모두들 배가 고팠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기만 했다. 벌써 이틀째 송사장의 2천여평 밭에 옥수수를 정식했다. 동료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에 찌든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내 옆에서 장미씨가 조용히 식사를 했다. 평상시 장미씨는 동료들 중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만큼 쾌활했다. 말 한마디 않고 밥만 먹을 정도로 장미씨는 힘들어 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동료들은 도로 주변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씩 마시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밥을 먹던 돗자리 위에, 장미씨가 벌렁 누워버렸다. 더 이상 힘들어서 일을 못하겠다는 듯이.


  6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나와 동료들은 산채마을 근처의 송사장네 밭으로 향했다. 5월 중순에 방문했을 때에는 토마토 모종을 키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얼마나 토마토가 자랐는 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송사장 밭을 방문한 우리의 행보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리가 송사장 밭에 도착했을 때는 뙤약볕이 한참 내려 쬐는 오후였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송사장 부부와 젊은 태국인 부부, 그리고 70대 노모도 함께 브로컬리를 수확하고 있었다. 햇볕이 뜨거울 때에 브로컬리를 따게 되면, 브로컬리가 싱싱하지 않을 뿐 아니라 품질의 내구성도 떨어진단다. 그래서 보통 대낮에는 브로컬리 수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납품 기일이 정해져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5시부터 시작했지만, 일손이 부족해서 대낮에 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송사장에게 브로컬리를 수확하는 방법을 듣고 있는데, 송사장 어머니가 다가왔다. 5월 달에 이미 인사를 한 사이여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브로컬리 수확을 하느라 힘들지만 농사가 잘 되어서 그런지, 피곤한 얼굴 위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머니는 옥수수 정식을 해야 하는데, 일손이 없어 큰일이라면서 걱정을 했다. 이번 주에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모가 커버렸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다는 어머니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의 힘들었던 옥수수 정식 작업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6시 30분부터 우리의 옥수수 정식작업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진행된 밭은 양상추를 수확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양상추 잔해물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멀칭 비닐들이 대부분 처음 설치한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들은 여러 차례 사용해본 감자 정식 도구로, 2인 1조가 되어서 옥수수 정식작업을 진행했다. 교장선생님이 허리가 아파 못나와서, 나는 교장선생님 형수님과 한 조가 되어 일을 했다. 형수님이 정식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은 프로급이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정식을 해나갔다. 옥수수 모를 정식 도구에 넣어주던 내가,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우연히 지나가던 송사장도 형수님의 옥수수 정식하는 속도를 보고 놀랬다. 수십년간 정식작업을 해왔던 마을 사람들하고 비슷한 속도라면서, 감탄을 했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많은 옥수수를 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밭에서 정식작업을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한 우리는, 기분 좋게 송사장의 두 번째 밭으로 향했다. 그런데 두 번째 밭은 첫 번째 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업환경이 열악하였다. 산 꼭대기 바로 밑에 위치해 있어서, 밭의 경사도가 심했다. 보습력이 떨어지는 땅이어서, 흙이 딱딱해져 있었다. 옥수수를 정식하는 도구가 흙 속으로 파고 들기가 어려웠다. 모종을 심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밭과 다르게 말라 비틀어진 양상추가 이곳 저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칫 양상추가 발에 걸려서,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밭을 보면서 불안해하던 동료들의 모습이 현실로 나타났다. 첫 번째 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우리의 작업 속도가 더뎠다. 첫 번째 밭 작업할 때에 나오지 못했던 교장선생님과 장미씨가 작업에 합류했다. 나는 오랜 만에 장미씨와 한 조가 되어서, 작업을 진행했다. 

  장미씨는 몸이 약한 편이라서, 농사 일을 힘들어했다. 작업속도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오전에는 작업속도가 제일 빠른 교장선생님 형수님과 작업을 했던 나였기 때문에, 장미씨와 작업하는 것이 수월했다. 장미씨의 활달한 성격 탓에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힘들다는 생각이 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덧 점심식사 시간이 되면서, 옥수수 정식 첫째 날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그날 오후에는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송사장네 옥수수 정식은 다음 날 진행하기로 하였다. 


  신반장이 옥수수 정식 이튿날 아침 6시까지, 동료들이 아침 식사로 먹을 김밥과 컵라면을 사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내가 지내고 있는 원주 아파트 근처에 김밥 집이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요청한 것 같았다. 그런데 새벽부터 문을 여는 김밥 집이 아파트 근처에 없어서, 컵라면만 편의점에서 사서 둔내면으로 향했다. 마침 둔내면에 6시에 문을 여는 김밥 집이 있었다. 김밥 10인분을 사 들고,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송사장네 두 번째 밭으로 향했다. 동료들은 이미 아침 5시부터 일을 시작한 상태였다. 내가 사온 김밥과 컵라면을 먹기 위해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동료들이 맛있게 먹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두 번째 밭의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고, 석문리에 있는 세 번째 밭 정식작업까지 오전 중에 끝내기로 했다. 모두들 어제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작업 속도가 느렸다. 그때 어디선가 트로트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시골 장터에 온 기분이었다. 토로트를 좋아하는 최선생님이 틀어놓은 것이다. 

  최선생님 부부는 꼼꼼하게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만, 작업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었다. 꼼꼼한 사람들의 눈 높이에서는, 대충 대충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해놓은 것에 만족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선생님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작업해놓은 곳에서 보완 작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송사장이 사온 점심식사를 마친 뒤, 세 번째 밭의 정식작업을 마무리해나갔다. 그날 예보대로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남아있는 모종을 빠르게 심어나갔다. 빗줄기가 굵어지기 전에, 송사장의 마지막 밭에서 옥수수 정식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틀 동안의 옥수수 정식작업을 하면서, 사람마다 타고난 talent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손이 유난히 빨라서 프로급의 속도로 정식을 하는 교장선생님 형수님, 느리지만 꼼꼼하게 작업을 해나가는 최선생님 부부, 몸이 약해서 농사 일은 서툴지만 쾌활한 성격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장미씨…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talent를 가지고 있고, 각자의 talent에 맞는 역할들이 있다. ‘농촌에서 살아가기’ 2기 동료들도 역시 각각의 장점에 적합한 역할을 공동체에서 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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