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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8. 2022

<농촌 체험하기> 가뭄과 장마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서른 한번째 이야기

  6월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장미씨와 나의 개인 텃밭에 심어놓았던 홍감자가, 예쁜 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일반 감자는 하얀 꽃을 피운다.) 홍감자를 두 이랑 심어놓았는데, 너무 잘 자라서 옆 이랑의 다른 작물까지도 덮을 정도였다. 

  이 날 홍감자에 지주대를 세우는 작업을 했다. 홍감자가 자라는 고랑 양쪽 끝 지점에 기둥을 세우고, 감자 줄기의 높이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맞게 노끈으로 양쪽 기둥을 연결해주었다. 비바람이 불어올 때, 홍감자 줄기가 쓰러지지 않게 잡아주기 위해서이다. 홍감자 옆쪽 이랑에서 자라고 있던 고추들도 나무마다 한 개의 지주대를 박아주고, 줄기가 꺾이지 않도록 지주대에 줄기를 양말목으로 묶어주었다. 

  어제 대표님이 장마철에 대한 대비를 서서히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장마철이면 이곳 둔내면 삽교리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다. 그래서 삽교리의 뒷산인 태기산에는 풍력발전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다. 강한 바람은 작물들을 부러뜨리거나 쓰러뜨린다. 그다지 줄기가 높게 자라지 않는 감자조차도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고추나 가지와 같이 줄기가 위로 뻗어나가는 작물들은 바람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장마철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주대를 세우는 작업을 하는 한편, 가뭄에 대비해서 대표님 감자밭에 관수로를 만드는 작업도 요청을 받았다. 사실 지난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면서, 전국적으로 가뭄이 심한 상황이었다. 남부지방에서는 논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이 심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둔내면은 산으로부터 내려오는 개울물이 마르지 않아서, 가뭄에도 잘 견디고 있었다. 가뭄이 지속되는 상황을 대비해서, 감자밭에 관수로를 설치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표님과 동료들은 태기산 바로 밑에 있는 대표님의 감자 밭으로 갔다. 개울가 바로 옆에 있는 감자 밭에 관수로를 만드는 장비들을 내려놓았다. 굵은 주 호스는 이미 밭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적절한 위치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보조 호스를 연결해야 하는 위치에, 구멍을 뚫어 나갔다. 보조 호스에 연결되는 스프링쿨러가 양쪽으로 7고랑씩 총 14고랑에 물을 뿌릴 수 있기 때문에, 보조 호스도 14개 고랑씩 띄워서 주 호스에 연결해주었다.

  보조 호스는 한 고랑의 길이에 따라 여러 개를 연결시키고, 보조 호스간 연결점에 스프링 쿨러를 설치하였다. 여러 번 해본 작업이라서 동료들간에 각자의 담당 분야가 자연스럽게 나눠졌고, 그것에 맞추어서 착착 작업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대포 스프링 쿨러를 몇 개 고랑에 설치하였다. 이것은 물줄기가 20~25미터가 나가는 대형 스프링 쿨러이고, 하나의 값이 70만원이나 나가는 고가란다. 

  관수로를 모두 설치한 다음,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를 이용해서 스프링 쿨러가 작동되는 지 시험을 해보았다. 그런데 바로 옆 개울의 물량이 충분하지 않아서, 모터에 가까이 설치된 2~3고랑의 스프링쿨러에서만 물이 나오는 데 그쳤다. 테스트도 물량이 풍부해지면 다시 해야 했다. 


  사실 이날 세운 관수로는 금년에 한번도 써먹지 못했다. 금년 장마철에 유난히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다. 개울가에 접한 감자 밭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면서, 우리가 연결해놓은 몇 개의 관수로가 떠내려갈 정도로 많은 비였다. 그렇지만 장마와 함께 가뭄을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농사꾼이다. 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던가! 자연의 변화에 최선을 다해서 대비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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