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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17. 2022

<농촌 체험하기> 힌남노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물길을 내줘야 될 것 같아요. 작물들이 잠겨있어서 큰 일이네요.”

  장미씨가 반쯤 물에 잠긴 텃밭을 보면서 걱정을 했다. 이미 비옷을 입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있었다. 텃밭을 같이 경작하고 있는 내가 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나는 삽을 찾아 들고, 텃밭으로 갔다. 미처 비옷을 준비 못한 나는 비를 쫄딱 맞을 수밖에 없었다. 텃밭 한 가운데에 새로 만든 물길을 따라서, 물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 보고서야 일을 끝마칠 수 있었다.


   6월말에 시작된 장마는 이후에 발생한 힌남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힌남노는 위력적이었다. 수십 년간 자연재해가 없었다던 횡성군에서 조차, 산에서 흙더미들이 밀려 내려와서 집을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횡성읍의 많은 논들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산채마을에서도 김대표님의 감자 밭 일부가 떠내려갔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냇가는, 산채마을 바로 옆에 위치한 김대표님의 감자 밭과 접해 있었다. 평상시 물의 높이는 제방높이에 비해서 1/10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힌남노에 동반된 폭우로 인해서 이 냇가가 흘러 넘친 것에 그치지 않고, 바로 옆 대표님의 감자 밭 일부를 떼어가 버린 것이다.

  삽교리의 밭들은 대부분 산을 끼고 있어서, 경사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폭우가 쏟아져도 물 빠짐이 비교적 좋은 지형이었다. 덕분에 힌남노로 인해서 작물이 물에 빠지는 피해는 적었지만, 밭 자체가 떠내려가는 사고는 피할 수 없었다.


  폭우로 인한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비가 그친 직후에는, 작물들이 이런 저런 병들에 시달리기 쉽다. 우리나라 여름철의 전형적인 날씨인 고온 다습한 환경 때문이다. 땅이 너무 습하기 때문에, 작물들이 숨쉬기 힘들어한다. 결국 작물이 물러져 죽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비가 그치고 난 직후에는 농부들이 바빠진다. 작물들이 병 피해를 입지 않도록, 비료와 살충제, 살균제를 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태풍이 물러가자 마자, 비료와 농약을 준비해서 밭으로 향했다. 비료와 농약 살포는 남자 동료들의 몫이었다. 남자 동료들끼리는 각자 맡은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전장군님이 맨 앞에서 농약 분무기를 이용해서 농약을 살포한다. 그 뒤에서 기계에서 농약 분무기까지 연결되는 긴 호스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교장선생님과 최선생님이 맡고 있다. 그리고 나와 신반장은 농약 살포 기기를 이용해서, 농약의 양을 관리한다. 처음 농약을 뿌릴 때 우연히 정해진 역할이었는데, 6개월동안 이렇게 굳어져 버렸다.

  맨 앞에서 분무기로 농약을 살포하는 전장군님이 제일 고생이다. 농약이 몸에 좋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살포하는 역할을 누구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 불평없이 분무기를 잡고 농약을 뿌리는 전장군님을 볼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힌남노를 포함해서 긴 장마기간을 겪으면서, 문득 김대표님이 언젠가 교육생들의 카톡방에 올린 글이 생각난다. 

  ‘농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겁니다. 하늘이 지어주는 농사에 농사꾼의 정성이 거드는 거지요. 농사꾼들은 자연을 받아들이며 산답니다. 자연 앞에서 순응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즐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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