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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1. 2022

<열네번째 이야기> 양미리를 구워먹게 만든 주춧돌놓기

  엊그제 수요일에 3차 코로나 백신주사를 맞았다. 2차를 맞은 지 5개월여 가까이 지나기도 했지만, 델타변이가 무서웠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인천에 있는 우리 가족들이 감염될 가능성이 크고, 평창한옥학교도 난리가 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병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쉽게 줄 수 있는 전염병이라는 것이 코로나의 나쁜 점이다. 남을 위해 내가 조심해야 하는 부담감을 주는 병이다.

  평창군 대화면에 있는 동네 내과에서 주사를 맞았는데, 주로 도시에서 생활한 나로서는 이런 시골 병원은 처음이었다. 아침 일찍 들어선 병원에서는 나보다 일찍 온 몇몇 동네 아주머니들과 간호사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농사짓는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등… 마치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삶의 여유와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백신주사를 맞으면 이틀동안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wife와 함께 그동안 인터넷으로만 찾아봤던 강원도 전원주택중 월세집을 둘러보았다. 전원주택을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전월세를 살면서 경험해보라는 귀촌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을 팔려고 내놓은 매물은 숱하게 많았다. 그런데 전세나 월세 매물은 그다지 많이 없었다. 그것도 전세 매물의 가격은 거의 매매 가격이나 비슷했다.

  전원주택을 짓거나 사서 살게 되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사는 사람도 있지만 5년내에 팔고 이사가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한다. 전원주택이 아파트의 편리함을 못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집을 관리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변에 대형 마트나 영화관, 병원 등의 편의시설이 없다는 것도 전원주택 생활의 불편함이다. 그러다 보니까 굳이 다시 돌아와 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전세나 월세보다는 매매를 선호하는 것같다.    

  Wife와 횡성과 원주에 있는 3군데 집을 둘러보았는데, 그다지 마음에 드는 집이 없었다. 그나마 횡성에 주인집과 같은 건물을 쓰지만, 입구는 따로 쓰는 집이 다른 집보다 나아 보였다. 넓은 방이 2개이고 거실도 꽤 컸기 때문에, 그나마 wife가 마음에 들어 했다. 하지만 내가 입주할 수 있는 날짜가 이곳 한옥학교 과정이 끝나는 4월이나 될 것이기 때문에, 계약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인연이 닿으면 계약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포기했다.


  전날 둘러본 전원주택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인가? 오늘 아침 학교 가는 길은 허허로웠다. 그런 내 마음에 공감을 하는 지, 하늘도 잔뜩 찌뿌려 있었다. 마치 금방 비를 쏟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밭에 쓸모없이 버려진 배추들, 무우들이 더욱 더 외롭고, 비참한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자연스럽게 내 마음까지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자연이 위대한가 보다. 이곳 평창의 자연이 보여주는 감정의 변화가 도시에 비해서 훨씬 뚜렷하기에, 사람의 마음에 다가오는 깊이가 다르다. 아파트나 빌딩 등의 무심한 얼굴로 치장한 도시보다는 산과 들로 만들어진 자연은, 그날 그날 자신의 기분을 잘 드러낸다. 힘들 때는 바람을 세차게 날리거나 비를 내려서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기분좋을 때는 따스한 햇빛으로 인간사에 지친 사람들을 어루만져 준다. 자연이 자신의 감정의 변화를 매일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이 담아내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서, 이곳 평창의 자연에게 너무 감사하다.


  오늘은 지난 월요일에 했던 기초만들기 작업에 이어, 두번째 야외수업을 진행하였다. 기초가 될 초석을 놓고, 시멘트로 초석을 고정시키는 작업까지 진행하였다. 초석이 놓여질 위치와 높이가 정확하지 않으면 집이 기울어지거나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면서도 정확한 측정을 통해서 놓여져야 한다.

  먼저 기준자 역할을 할 조그만 나무 기둥을 초석이 놓일 8군데에 박아 넣었다. 지난 월요일 기초를 만들기 위해 땅을 팔 때 만들었던, 가로 세로 1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모양의 바깥쪽 꼭지점 자리에 2개씩 세웠다. 집의 4곳 모서리에 놓이는 초석 자리에는 정사각형의 두 면이 바깥쪽과 접하기 때문에, 각각 2개씩 총 4개의 기둥을 꼽았다.  그리고 동일한 높이에 초석이 놓일 수 있도록, 레벨측정기를 이용해서 기둥에 표시를 하였다. 그런 다음에 표시된 곳을 나일론 선을 이용해서 연결하였다. 나일론 선들이 같은 높이로 연결되도록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는 그 높이에 가로로 나무기둥을 연결하였다. 나일론 선으로 표시된 높이를 나무로 고정시킨 것이다.


  그리고 나서 각 기초석이 위치할 중심점을 잡기 위해, 기초 만들 때 사용했던 정사각형 모양 위에 십자선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8개의 십자선의 중심점이 같은 높이에 위치해 있고, 다른 십자선들과 평행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레벨측정기를 이용해 만들어놓은 나일론 선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각 면의 길이(가로 3.0 – 3.6 – 3.0미터로 총 9.6미터, 세로 4.2미터)에 맞게 중심점을 잡아야 한다. 이미 기초를 만들 때 사용했던 정사각형 모양이 있기 때문에, 중심점을 잡는 것이 비교적 수월하였다.


  이렇게 각 기초석의 위치마다 십자선이 만들어지면, 중심점이 정확히 정사각형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다른 기초석의 십자선들과 서로 평행한 지 여부를 다시 한번 검증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난 월요일에 진행했던 두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직각삼각형의 길이와 직각 여부, 그리고 정삼각형 3변의 길이가 같은 점을 이용해서, 기초석의 중심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기초석의 위치와 높이가 정확히 만들어진 다음에는, 기초석을 나일론 십자선에 맞추어 설치하는 작업을 한다. 이때 기초석으로 자연석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 높낮이가 기초석마다 달랐다. 그래서 기초석의 윗면이 나일론 선에 닿을 듯 말듯한 높이까지, 벽돌 등을 이용해서 높이를 조정해주는 작업을 했다.

  조선시대까지는 일반 백성이 집을 지을 때 자연석을 기초석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계급에 따라 법적으로 제한이 있었을 뿐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이 잘 다듬어진 돌을 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그것에 맞춰서 자연석을 기초석으로 사용해서 실습을 진행하였다.

  8개의 기초석들이 제자리를 잡으면, 시멘트를 발라서 기초석을 고정시키는 작업을 한다. 자연석으로 기초석을 쓰는 것을 덤벙기초라고 하는데, 자연석의 생김새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정한 모양으로 깎인 기초석보다 고정시키기가 더 어렵다. 따라서 기초석의 모양에 따라 하단부에 시멘트가 많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곳 학교에서는 내년 기수들이 또 다시 기초만들기 수업을 같은 자리에서 해야하기 때문에, 시멘트가 굳은 후에도 쉽게 깰 수 있도록 시멘트를 조금만 섞었다. 그래도 이런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시멘트 섞는 방법까지도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야 했다.


  이렇게 기초석을 놓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에 대화면 5일장에서 사온 양미리, 소라 등 물고기들을 불판위에 얹어놓고 구웠다. 사실 교장선생님이 얼마 전부터 학교안에서 이러한 취식을 금지시켰다. 전 기수까지도 가끔 야외에서 물고기를 구워먹곤 했단다. 그런데 물고기만 먹으면 좋은데, 꼭 술을 함께 먹었기 때문에 금지시킨 것이란다. 외부적으로는 주변 산에 불이 붙을 가능성을 염려해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조용 조용하게 불판구이를 해먹었다. 더군다나 몰래 사온 소주까지 마시다 보니까, 꼭 우리들이 고등학교때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 같은 일탈행위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스릴보다는 일주일간 힘들게 작업하면서 느꼈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 더 좋았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주말을 기다리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기초만드느라 고생한 교수님과 학생들이 금요일 오후를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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