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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06. 2022

<열세번째 이야기> 즐거웠던 야외수업, 기초만들기

  이곳 평창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겨울에 추운 곳이다. 한옥학교가 해발 650미터에 위치해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다 보니까 한옥학교의 겨울 기수들은 내내 실습수업을 실내에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한달 정도를 실내 수업만 진행하다 보니까, 햇빛이 그리워졌다. 때마침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가줘서, 우리는 야외 실습장에서 12평짜리 맞배집을 짓기 위한 기초만들기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초만들기 작업은 기둥이 들어갈 자리를 정한 다음, 땅을 가로 세로 깊이 각각 1미터 크기로 판다. 그리고 시멘트와 흙을 배합해서, 사방 1미터의 구멍에 넣어서 기초를 튼튼히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날 하루 동안 진행된 작업의 스토리이다.

  이렇게 짧게 말하면 쉬운 일같지만, 정교하고 전문적인 영역의 일이면서도 힘든 여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주동안 기둥, 장여, 서까래 등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 기둥만 깎아댄 우리 동료들은, 오랜만에 야외에서 다른 내용의 수업을 진행해서 그런지 신나게 배웠다. 더군다나 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야외 실습 아닌가?이날 일을 거의 마쳐갈 무렵, 쉬는 시간에 사진작가인 용현이가 석양을 배경으로 우리가 쉬는 모습을 찍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재미있는 사진이어서 올려본다.


  기초만들기는 우리가 짓고자 하는 12평형 기준으로 진행되었다. 가로는 3미터 - 3.6미터 - 3미터로 총 9.6미터 길이이고, 세로는 4.2미터 크기였다. 그리고 4개의 직사각형 모서리와 가로변의 중간 중간에 주춧돌을 올리기 위해, 총 8곳에 기초 터파기 공사를 진행했다. 이곳에 주춧돌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먼저 기초를 다질 땅의 직사각형 모양에서, 가로변과 세로변이 서로 평행한지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이 삐뚤어지게 된다. 평행 여부를 체크가기 위해, 2개의 노끈을 사용했다. 각각의 노끈은 가로변 9.6미터, 세로변 4.2미터까지 이을 수 있는 총 13.8미터 길이였다. 일단 2개의 노끈을 기초가 만들어질 직사각형의 가로변과 세로변 위에 놓는다. 가로변 위에 놓여진 노끈에는 3미터, 3.6미터, 3미터의 간격으로 표시를 해놓았다. 이렇게 한 다음 2개 노끈의 가로변끼리, 세로변끼리 평행하게 되어 있음을 검증해봐야 한다. 

  두가지 검증 방법이 있는데, 첫번째는 가로변의 두 개의 노끈 사이에 직각 삼각형을 만들어서, 직각을 이루는 면의 각도가 90도가 되는 지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두번째는 가로변의 한면을 이용해 정삼각형을 그려서, 3면의 길이가 정확히 같고 그중 한 꼭지점이 가로변의 다른 면 위에 위치하는 지를 체크해보는 것이다. 평행한 지 여부를 체크하는 것은 줄자 2개와 각도기를 사용한다. 우리가 만들 기초위의 직사각형은 정확히 평행하게 그려져 있었다. 과거 기수들이 똑 같은 장소에서 실습을 하였기 때문에, 이미 평행한 직사각형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쉽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직사각형이 평행하게 그려져 있는 지를 확인한 다음에는, 8개의 기초 공사를 할 터가 모두 같은 높이에 위치해 있는 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자칫 8개 기초의 높낮이가 다르게 되면, 기초 위에 올라가는 기둥의 크기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땅이 같은 높이인 지 여부는 레벨측정기를 이용해서 측정한다. 2가지의 레벨측정기가 있는데, 오래전부터 작업현장에서 사용해오던 측정기는 수동 기구였고, 다른 하나는 기술이 발전되면서 개발된 레이저를 이용한 측정기였다. 

  먼저 수동 측정기를 땅 위에 안정되게 설치한 다음, 측정기 렌즈를 통해 볼 수 있는 십자선을 가지고 측정한다. 8개 지점에 지면으로부터 수직으로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고, 이 레벨측정기의 십자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 가를 본다. 8개의 측정결과를 비교해보면, 각 지점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또 다른 레벨측정기는 측정기 자체를 안정되게 설치하고 작동시키면, 360도로 녹색의 레이저 선이 나온다. 8개의 지점에서 이 레이저 선의 높이를 측정해보면, 높낮이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터파기 공사를 한 땅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서 8개의 기초지점에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하면서 나온 흙을 가지고, 기초의 전체 면이 비슷한 높이가 되도록 맞추는 작업도 같이 진행해야 했다. 

  8개의 주춧돌이 들어갈 지점의 높낮이를 알게 되면,  측정된 높낮이를 조정하면서 터파기 공사를 해야 한다. 이때는 가로 세로 각각 1미터인 기준틀을 활용해서, 8개의 지점에 가로 세로 깊이 각 1미터 내외의 구덩이를 파낼 곳을 측정한 후, 땅에 직사각형 모양을 그린다. 구덩이를 파낼 직사각형 모양은 나무로 만든 4각형 모양의 틀을 만들어서 그린다. 이때 직사각형의 가운데 지점이 주춧돌의 가운데 지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그려진 직사각형 모양의 기초를 파기 시작했다. 1개의 구덩이를 한 명이 담당하였다. 우리가 기초작업을 만드는 8곳중 4곳은 가파르게 경사진 땅에 접해 있었다. 한옥학교가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기초작업장에 맟닿아 있는 이웃의 밭이 3~4미터 정도 아래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4곳의 구덩이를 파내는 작업은 가파른 경사면에 서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힘든 곳이었다.

  눈치가 빠른 젊은 친구들은 재빠르게 일하기 수월해 보이는 안쪽 기초 지점에서 터파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경사면에 맟닿아 있는 곳에서 터파기 작업을 했다. 그것도 가장 경사가 가파른 직사각형의 꼭지점에서. 하지만 내가 회장을 맡고 있어서, 힘든 자리에서 작업을 한다는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하하하) 그리고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할 자리니까.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전에 거의 2시간동안 땅을 팠다. 아무리 영상의 날씨지만 겨울이기 때문에, 땅의 지면과 가까운 곳은 약간 얼어 있었다. 더군다나 이 자리는 과거 기수들도 똑같이 사용했던 자리여서, 땅을 파헤치자 과거 선배기수들이 만들어놓은 시멘트 블록들 때문에 땅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땅을 파기 시작하니까, 젊은 친구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했던 안쪽 기초 지점은 땅이 너무 딱딱하고, 전 기수들이 만들어놓은 시멘트 블록들이 단단하게 다져 있었다. 아마도 바깥쪽 지점의 땅은 경사가 있어서, 흙이 덜 다져진 것같았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이것을 삽과 괭이로 파내느라고 땀을 뻘뻘 흘렸다. 바깥 지점에서 공사를 하고 있던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 고소해하면서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놀려댔다. 덕분에 우리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바깥쪽 터파기를 먼저 끝낸 동료들이 안쪽 동료들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구덩이를 판 다음,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 10명의 동료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갈 때는, 조별로 두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갔다. A조는 주로 젊은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B조 차량은 나를 비롯한 나이먹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날 우리 B팀은 평상시에 갔던 서울대 식당에 안가고, 인근 콩나물 국밥집으로 향했다. 땀을 흘리면서 일해서 그런지, 다들 막걸리가 땡겼던 것이다. 사실 학교 수업중에는 술을 마시면 안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전에 힘든 작업을 해서 그런지, 모두들 술 냄새가 풍기지 않을 정도로 약간만 마시자는 일탈(?)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콩나물국밥집에 공교롭게도 막걸리가 떨어져서, 우리는 주인 아주머니의 허락하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막걸리 2통을 사다 마셨다. 땀흘리고 난 뒤에 마시는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그래서 시골 어른들이 논밭에서 일하고 새참을 먹을 때는 막걸리 한잔씩 했던 것이리라. 

  

  오후에는 시멘트를 이용해서 오전에 파낸 구덩이에 기초만드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 장소는 내년 후배 기수들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약간의 시멘트만을 섞은 흙을 이용해서 기초를 만드는 시늉만 했다. 그래야 땅이 파내기 어려울 정도로 굳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전에 힘들게 팠는데, 오후에 다시 메꾸려니까 약간 억울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시멘트와 섞인 흙으로 채우기 전에, 내가 판 구덩이에 이 구덩이를 판 삽을 꽂고 기념 사진을 한장 찍었다.


  8개의 구덩이에 시멘트를 이용해서 기초를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구덩이에서 나온 흙을 이용해서 한쪽으로 기울어진 땅을 평평하게 하는 작업도 같이 진행했다. 이 작업까지 마무리된 뒤에 다시 한번, 레벨측정기를 이용해서 8개 포인트들의 기울기를 검증해보았다. 8개 지점중 높낮이가 다른 지점은 흙을 이용해서 그 차이만큼 같은 높이가 될 수 있도록 맞춰 주었다. 

   구덩이에 기초를 만들고, 집이 지어질 전체 면의 높낮이를 맞추는 작업을 하다 보니까, 어느 덧 수업시간이 모두 끝났다. 이번 주중 날씨가 다시 따뜻해지면, 주춧돌 세우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실내에서 실습을 진행할 때는 2명이 한 조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까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끼리 조를 이루어 작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이번 기초만들기 작업은 모두가 한 팀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이에 관계없이 10명의 동료들끼리 서로 농담도 주고받고, 일을 하면서 많이 부대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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