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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02. 2022

<열두번째 이야기> 평창의 한달 생활이 만들어낸 모습들

  4주째가 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보다는 기존에 배웠던 것을 숙련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난 주까지 배웠던 도리, 주두, 서까래, 그리고 기둥을 만드는 작업을 반복해서 진행하면서, 기계기구나 각종 손 도구의 사용이나 이들 재목을 만드는 작업에 익숙해지는 수업내용이다. 그래서 새로 배우는 것보다는 기존에 배운 것 중에서 미진한 부분들을 질문하면서, 반복하는 실습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 12평짜리 맞배집과 4각정을 짓는 것이 목표이다. 이 조그만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각종 자재를 수업시간중에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몇 평 안되는 작은 집을 짓는데도, 서까래가 77개나 필요하고, 기둥이나 도리, 보 등 많은 나무들을 치목하고 가공해야 한다. 그것도 단순하게 원목의 나무껍질을 벗기는 수준이 아니라, 외적으로 봤을 때 부드럽고 보기좋게, 그리고 서로 끼워 맞출 수 있도록 정확한 치수대로 깎아내고 가공해야 한다. 

  실습을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들의 생활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목수생활을 해온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댄다. 특히 졸업 후에 목수를 하고 싶은 친구들은 무척 궁금한 것이 많았다. 우리가 이곳 학교에서 치목하듯이, 현장에서도 목수들이 원목 하나 하나를 직접 다듬어야 하는가? 제재소의 좋은 기계들을 이용하면 될 텐데… 

  요즘 현장에서 일할 때는 제재소에서 기계를 이용해서 규격화된 형태의 자재들을 만들어 내기는 한다. 특히 장혀와 같은 4각형의 각재를 만들 때는. 하지만 여전히 목수의 손을 거쳐야만 되는 일들이 많다. 원목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목수들의 피와 땀이 많이 들어가야, 아름답고 튼튼한 한옥집이 탄생하게 된다. 평상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지어진 집에서 살아 왔는데, 원목 하나 하나를 치목하면서 얼마나 집을 짓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면서 생활해야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 집중했던 지난 한달을 되돌아보면서, 나도 한 호흡 쉬어가는 한 주였다. 그래서 그런가? 내 몸 여기저기서 지난 한달동안 힘들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오른 손목, 다리, 허리 등등… 모두 평생 안해오던 일을 감내하려고 하니까 무척 힘든 모양이다. 

  특히 오른 손목에는 아대를 차고 실습을 한 지 이틀이 되었다. 전기 대패나 홈 대패, 전동 톱 등 비교적 무게가 나가는 기계들이 모두 오른손 잡이용밖에는 없다. 자연스럽게 내 오른손이 부담해야할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왼손잡이이기 때문에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반복 작업을 한 덕에, 전동 톱, 기계 대패, 홈 대패 등 기계 공구들이 좀 더 익숙해졌다. 조금씩 목수가 되어 가는 모습이다. 


  어제는 이곳 평창에 첫눈이 내렸다.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바람만 안 불면 그다지 춥지 않다. 그러나 어제는 바람까지 매몰차게 불어대면서, 체감온도가 뚝 떨어졌다. 몇몇 젊은 친구들이 이런 날에는 따뜻한 오뎅국물에 정종 한잔 하는 것이 제격이란다. 그러면서 같이 한잔하자고 부추긴다. 

  수업이 끝난 뒤 그렇게 술자리는 시작되었고, 용현과 유상, 그리고 일연 이렇게 4명이서 순식간에 정종 2병을 비웠다. 그것도 750미리짜리를. 다들 처음에는 한병이면 충분할 것같다고 이야기했지만, 한병은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인근 편의점에서 오뎅대신 사온 어묵을 국물과 같이 따뜻하게 데워서 마시니까, 추운 날씨에 제격이었다. 

  이날 용현, 유상과는 처음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진작가인 용현이가 일본에 유학가서 고생한 이야기, 사진전을 연 이야기 등등… 유상이는 그에 반해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했다. 유상이는 제주에서 연극배우로서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자존감이 낮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옥 대목수반 친구들과 한뼘 한뼘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던 날이다. 나에게는 학교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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