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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07.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 비닐하우스

- 귀농 첫해에 겪은 두번째 이야기

  비닐 하우스 앞에 트럭을 주차하고, 싣고 온 계분 포대를 내리기 시작했다. 한 포대에 20kg이니까 무게가 꽤 나갔다. 잘 숙성된 유기질 비료였지만, 그래도 닭 똥 냄새가 약간 났다. 손수레를 이용해서 계분 포대를 하우스 안으로 실어 날랐다. 총 56포대가 1백평의 하우스 바닥에 깔렸다. 한번에 3~4포대를 날랐으니까, 하우스와 트럭 사이를 20번정도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계분 포대 나르는 작업을 시작한 지 한시간쯤 지났을까? 제법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부는데도 등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2022년 10월말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전국 발표회를 마지막으로, 6개월간 진행된 프로그램이 막을 내렸다. 이제 2023년에 대한 설계를 해야 할 차례였다. 9명의 동료들과 같이, 3천평의 밭에 다양한 작물을 심어봤다는 것이 농사에 자신감을 갖게 했다. 동료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6개월간의 기억도 즐거웠다. 이런 경험이 나로 하여금 2023년에 농사를 지어 봐야 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게 했다.

  사실 향후 10년간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 전부터 시작되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년정도는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강원도로 귀촌하는 것만으로는 10년을 채워 가기에 허전했다. (아내와 강원도로 귀촌하는 것은 일찌감치 합의를 본 상태였다.) 뚜렷하게 하는 일없이 취미로만 하루 하루를 채워 가기에는, 아직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조금은 바쁜 삶을 살고 싶었다. 

  친환경 농법으로 농산물을 재배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나와 가족의 건강에 좋은 농산물을 소비자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귀농의 벽은 높았다. 귀농은 결심만 가지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배하고자 하는 여러 작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농촌 문화에도 적응해야만 한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선뜻 결심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을 각오를 하고, 2023년에는 자그마한 밭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어 보기로 했다. 내가 농사를 재미있어 하는 지, 농촌 문화에 적응을 잘 하는 지 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김대표님의 도움으로 비닐하우스 1백평과 노지 밭 5백평을 산채마을에서 임대할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 주인인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2022년에 토마토와 고추 농사를 지은 모양이다. 임대한 비닐하우스안에는 다 말라버린 토마토와 고추 줄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년 농사를 위해서 이 토마토와 고추 줄기들을 뽑아내고, 지주대와 멀칭 비닐도 제거해야 했다. 이것이 초보 농사꾼으로서 비닐하우스의 밭 준비를 위한 나의 첫번째 작업이 되었다.

  고추와 토마토의 줄기와 지지대를 뽑아내는 작업은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지주대와 줄기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땅이 단단하게 굳어서 잘 뽑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비닐하우스에 유기물과 미생물을 충분히 공급해주지 않아서, 땅이 단단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땅에서 작물의 뿌리가 제대로 뻗어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토마토를 심기전에 충분히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야겠다.

  지주대, 토마토와 고추 줄기를 뽑아서 하우스 밖의 한쪽에 쌓아 나갔다. 한참 작업을 하고 있으려니까, 주인 할아버지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다가왔다. 심한 당뇨로 다리를 절단하는 바람에,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의 한쪽 구석에 앉아서, 내가 작업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셨다. 

  “지주대가 잘 뽑히지 않으면, 저기 있는 스패너로 돌려서 뽑으면 쉬울 거야.” 

  하우스 한쪽에 놓여있던 스패너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과연 스패너로 지주대를 돌리니까, 쉽게 뺄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초보라서 가르쳐주고 싶은 심정도 있겠지만, 대화 상대가 필요해 보였다. 불편한 다리로 인해 집에만 갇혀 있는 생활을 해서 갑갑하셨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주인 할머니가 나타나셨다. 오전에는 외부에 나가서 일을 하고, 오후에 주로 집에 머문 단다. 할머니 역시 연로하셔서, 2023년에는 텃밭정도만 농사를 지을 생각이란다. 부직포를 걷어내는 작업을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농사 짓는 법을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주로 직장에 다녔고, 할머니가 집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다음 날 산채마을 근처 두원리에서 계분과 돈분이 섞인 유기질 퇴비를 100포대 사왔다. 1포대에 20kg이니까, 2톤의 무게였다. 1톤짜리 트럭에 2톤의 비료를 싣고 운전하다 보니까 조심스러웠다. 자신의 한계 용량보다 무거운 짐을 싣고 있어서, 트럭이 버거운 듯 보였다. 특히 회전 구간에 접어들 때면, 엉금엉금 기어가듯이 운전을 해야만 했다. 조심스럽게 운전해온 트럭을 비닐하우스 앞에 주차시켰다. 퇴비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긴 후, 전체적으로 흩뿌려주어야 했다. 나중에 작은 트랙터를 이용해서 로터리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우스안에 뿌릴 비료를 모두 운반한 뒤에,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한숨을 돌렸다. 한참 힘을 쓰고 나니까 슬슬 배가 고파왔다. 동료들과 같이 작업할 때는 이맘때쯤 새참을 먹는 시간이었다. 여자동료들이 요리해오는 간단한 요기거리와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나면 힘이 나곤 했다. 이제 혼자 작업하다 보니까, 누구도 새참을 준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지난 6개월동안 동료들과 같이 작업할 때가 그리워졌다.

  하우스 안으로 옮겨 놓은 비료를 흩뿌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 새참대신 음악을 틀어 놓고 작업을 시작했다. 비료 포대의 한쪽을 잘라낸 다음, 퇴비를 골고루 뿌리기 시작했다. 규모가 큰 밭에서는 퇴비뿌리는 작업을 농기계로 진행한다. 그런데 겨우 백평정도 밖에 안되는 비닐하우스여서, 직접 몸을 써야 했다. 

  퇴비는 숙성이 잘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냄새가 심하게 나지 않았다. 퇴비를 뿌린 다음에 쇠칼퀴로 골고루 흩뿌려 주었다. 오후 4시 30분쯤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거의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초보 농사꾼으로서 나의 첫번째 비닐하우스 정리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동료들 없이 혼자 작업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1년 농사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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