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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8.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 농사 공부

- 귀농 첫해에 겪은 세번째 이야기

  “동시에 뽑아 올리는 거야. 하나, 둘, 셋”

  신반장과 내가 비닐하우스의 반원형 뼈대를 하나씩 뽑아냈다. 비닐을 씌웠던 쇠파이프들이었다. 한 겨울에 땅이 얼어서 그런지, 쉽게 뽑히지 않았다. 때로 같이 작업하던 전장군님과 최선생님까지 달려들어야, 겨우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십개의 비닐하우스 쇠파이프들을 분해해 나갔다.

  2022년 12월초 대표님의 요청으로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이 산채마을에 모였다. 이웃집 농부가 사용하지 않는 비닐하우스 한 동을 해체하기 위해서이다. 영하 15도 가까이 떨어진 날씨 탓에, 모두들 두꺼운 잠바를 입고 털모자와 귀마개까지 단단히 무장을 하고 왔다.

  우리는 하우스의 양쪽에 달린 문을 먼저 제거하고, 반원형의 파이프를 분해하였다. 나와 동료들은 처음해보는 작업이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분해 순서도 잘 모르는 우리들을 위해서, 대표님이 계속해서 작업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오후 3시쯤 최선생님과 전장군님 형수들이 산채마을에서 삼겹살과 김치, 소주를 준비해서 나타났다. 우리가 몸을 녹이기 위해서 피워 놓은 장작불 위에 불판을 올려놓고, 삼겹살과 김치를 굽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구워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들이켜니까, 얼어붙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새참이기도 하다. 문득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 새참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날도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은 서로의 근황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눴다.


  횡성읍에 새로 전원주택을 신축한 전장군님은 아직 입주를 못하고 있었다. 준공허가가 나지 않아서, 하수도 설치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단다. 횡성군의 준공 승인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당분간은 건축업자가 빌려준 이웃집에서 지내야만 했다.

  역시 횡성읍에 주택을 구입한 최선생님은 집 수리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하수관의 배관이 엉망이어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집 바로 옆에 있는 60평정도 되는 텃밭도 관리가 안되어 있어서, 정리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존에 심어져 있던 작물들을 뽑아내고, 마사토 흙을 덮어주는 작업을 진행했단다. 

  신반장도 산채마을의 펜션들을 이용한 민박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펜션들 중에서 가장 좋은 각시취의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한단다. 횡성군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년농부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작업도 같이 하고 있었다. 모두들 본격적인 횡성에서의 첫 해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밭에 어떤 작물을, 얼마만큼 심을 거예요?”

  김대표님이 옆에 있던 나에게 물었다. 나의 농사 준비작업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토마토, 고추, 감자를 1백평씩 심고, 나머지는 가족이 먹을 것들을 심을까 해요.”

  “유기농 비료와 농약을 어떻게 준비할 지를 생각하고 있나요?”

  나는 실패해도 좋으니까, 처음부터 유기농법을 적용해서 농사를 짓고 싶었다. 하지만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가 배운 것도 별로 없는 상태였다. 김대표님은 그런 내가 걱정이 된 모양이다. 

  “각종 유기농 액비 제조나 농약 만드는 법 등을 책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유기농 하시는 분에게 물어보기도 하고요.” 

  정작 6백평의 밭을 임대해놓고 나니까,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대표님을 비롯해서 이웃 농부들에게 물어보면서 농사를 짓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들도 비슷한 시기에 자기 밭에 농사를 짓느라 바쁠 것이다. 더군다나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서 친하지도 않은데, 기초적인 것부터 모든 것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나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다. 농림부 등 정부와 민간기관에서 나온 주요 농산물에 대한 책뿐 아니라, 유튜브나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산채마을은 고랭지인데다가 밤낮 온도차가 심한 곳이다. 이곳에서 주로 재배하는 작물이 감자, 토마토, 고추, 옥수수 등이다.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서 재배를 해본 작물들이다. 이들 작물을 중심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밭에 기비(基肥)를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작물의 파종과 정식, 수확까지, 해야할 일의 리스트를 시기별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유기농 비료 및 농약 만드는 법과 사용법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했다. 미생물 배양부터 음식물 액비, 깻묵 액비, 잿물 액비, 작물의 잔사 액비 등등… 각종 비료를 만드는 법도 공부했다. 작물에 따라 이들 비료중에 어떤 것들이 적합한 것인지도 알아야 했다. 각종 병충해를 예방하거나 방제할 수 있는 유기농 농약 제조법과 사용법도 공부해 나갔다. 유황, 오일, 은행 열매 달인 물 등등… 친환경 농약으로 흔히 쓰이는 것들이나 제조할 수 있는 원료를 미리 구매했다.

  공부하면 할수록 식물도 동물과 비슷한 조직체계와 성장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배고프다는 표현을 한다. 병충해에 시달리면, 잎이나 줄기, 열매에 아프다는 표현을 한다.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 닥치면, 빨리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생식성장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종족보존의 본능이 작동되는 것이다. 농작물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익히는 것이, 좋은 농부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우스의 비닐을 말아 올리는 긴 가로 철봉을 중간 중간 잘라냈다. 반원형모양의 쇠기둥들은 한쪽에 모아 놓았다. 새로이 비닐하우스를 지을 산채마을의 텃밭으로 옮기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다. 철거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오후 5시를 훌쩍 넘겼다. 며칠 뒤에 다시 한번 모여서, 산채마을 안에 비닐하우스 짓는 작업을 도와 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오랜만에 동료들과 만나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실 수 있는 시간이 즐거웠고, 비닐하우스 철거하는 법을 새롭게 배워서 좋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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