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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2.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 농업 분업체계

- 귀농 첫해에 겪은 네번째 이야기

   “고추는 400주만 육묘해주면 될 것 같은데요. 이 정도 수량이면, 어떤 품종을 심는 것이 좋을까요?”

  2023년 2월초 둔내면에 있는 식물병원에서 사장님과 마주 앉았다.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젊은 사장님이었다. 식물병원에서는 각종 농작물의 씨나 모종, 농약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작년에 고수, 고추, 파프리카, 샐러리, 청경채 등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사가곤 했었다. 이번에는 텃밭이 아니라 몇 백평의 밭에 심을 모종을 주문하러 왔다. 

  “관리의 번거로움이나 한번 수확했을 때의 수량, 그리고 시장 판매가격 등을 감안해서 결정해야 돼요. 400주 정도면 한가지 종류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400주 정도에서 한 박스 이상의 출하량이 나오려면, 한가지 종류가 나을 것 같단다. 청양고추를 권했다. 나는 원래 4가지 종류의 고추 중에서 2가지 정도를 생각했었다. 꽈리고추, 오이고추, 청양고추, 당조고추. 그러나 꽈리고추는 수확을 자주 해줘야 해서, 시간 소비가 많았다. 오이고추나 당조고추는 시세가 좋지 않거나 가격변동이 너무 심하단다.


  나는 아직 육묘장이 없기 때문에, 육묘를 맡겨야만 했다. 특히 고추는 육묘에 80~90일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도저히 내가 육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2023년에 심을 여러 작물 중에서 주 작물인 토마토와 고추는 수백주씩 육묘를 해야 한다. 토마토를 심을 비닐하우스와 고추를 심을 노지 밭의 크기를 재보니까, 토마토 590주, 고추 400주의 모종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식물병원장은 향후 육묘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귀촌을 해서 텃밭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소량의 모종을 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육묘 요청을 많이 한단다. 육묘를 하려면 농한기인 겨울에도 작업을 해야할 뿐 아니라, 날씨가 추워지면 난방비도 많이 들어가야 한다. 농부가 직접 육묘를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식물병원장은 둔내면 석문리에 땅을 더 사서, 육묘를 위한 비닐하우스를 추가로 지었다고 한다. 농사도 이제 육묘 전문가와 재배 전문가로 나뉘는 추세인 모양이다. 


  토마토와 고추 육묘를 주문하고 며칠 뒤,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을 산채마을의 카페에서 만났다. 우리가 먹을 표고버섯 재배를 위해서, 태기산 자락에 있는 참나무를 자르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최선생님과 전장군님이 퇴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횡성읍의 집 주변에 있는 밭을 임대하기로 했단다. 작물을 심기전에 퇴비를 뿌려줘야 하는데, 둔내에 있는 퇴비 판매상에게서 구입을 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둔내의 퇴비 판매상은 횡성읍까지 운반해주기는 어렵단다. 너무 멀기 때문이다. 

  “류선생, 혹시 3월중 시간이 가능한 날이 있나요?”

   대표님 트럭을 빌려서 횡성까지 운반하기 위해서는, 트럭의 수동기어를 운전할 줄 아는 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한 포에 20kg인 퇴비 250포를 운반해야 해서, 둔내면과 횡성읍 사이를 여러 번 왕복을 해야 했다. 3월 1일에 작업하기로 하면서, 유기농 퇴비 이야기를 이어갔다. 

  “퇴비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가 따로 있고, 둔내의 퇴비상은 판매만 하는 거예요.”

  대표님이 퇴비와 관련된 사업분야를 소개했다. 퇴비를 발효시키려면 부숙 창고가 필요하고, 우분이나 계분, 돈분 등 동물의 배설물을 포함해서 톱밥, 볏짚 등 다양한 유기질 재료를 주기적으로 섞어줘야 한다. 대규모 설비를 갖춘 사업자에게 유리한 과정이었다. 반면 퇴비 수요자인 농부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판매업자는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었다. 퇴비 생산과 퇴비 판매가 분업화되어 있는 것이다.

  농업이라는 산업분야를 크게 분류해보면 농산물 재배/생산, 가공, 유통사업으로 나눌 수 있다. 둔내에도 농산물 가공을 하는 청태산 농장, 생산된 농산물을 전국적으로 유통시키는 태사유통 등의 업체가 존재한다. 더 세분류로 들어가면 퇴비 제조업자, 마사토 판매업자, 비닐하우스 제조업자, 농기계 판매상 등 농업분야에도 수많은 직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의 귀농 귀촌 유도 정책에 따라서, 교육과 컨설팅 서비스부분도 새로이 확장되고 있는 농업의 영역이다. 산업 규모가 커지고 귀농 귀촌 인구가 증가하면서, 분업화 구조가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트럭과 트랙터를 끌고 뒷산인 태기산 자락으로 향했다. 전동 톱을 여러 개 가지고 갔다. 먼저 도착한 대표님이 참나무 몇 그루를 베어냈다. 나와 최선생님이 전동 톱으로 참나무를 표고버섯 기르기에 적당한 길이로 잘라냈다.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참나무 건조작업, 균주 입봉 작업 등을 앞으로 진행할 것이다. 이것은 판매용이 아니라 우리가 먹기 위해서 하는 자급자족식 농사라서 모두 직접 진행하는 것이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2기가 ‘아농회’(아기 농사꾼의 모임이라는 의미)라는 계 모임을 만들면서, 같이 해보는 공동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기획된 것이다. 금년말이면 맛있는 표고버섯을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벌써부터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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