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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8. 2023

<한옥 대목반>한옥학교의 예술가들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일곱번째 이야기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은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

  술 취한 동료들은 나무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면서 떼창을 부르고 있었다. 어느 덧 밤 10시를 넘어서면서, 평창 시골마을은 고요하였다. 옆집에 살고 있는 주인 어르신 부부도 이미 자고 있을 터였다. 내가 목소리를 좀 낮추라고 손짓을 했지만, 이미 취한 동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학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골목길 선술집에서 젓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곤 했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 인가 나는 한옥학교 동료들과 즐길 수 있는, 다음 주의 이벤트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 평창 한옥학교에서의 생활을 그만큼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행복한 제 2의 삶을 준비하는 시기부터, 순간 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대목반 동료들이 그만큼 좋기도 했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인 데다가, 서로 다른 인생 스토리를 경험해온 친구들이기에.

  2021년 12월 중순 어느 날 고추잡채를 먹으면서 술을 곁들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요리사 출신인 종석이가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추잡채를 만들 수 있다고 거들었다. 고추잡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종석이가 고추잡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파프리카, 청고추, 돼지고기, 양파, 마늘, 잡채 등등... 종석이가 사는 횡성의 인근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일부 품목은 내가 조달하기로 했다. 주말에 인천 집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꽃빵과 고량주를 사왔다.

  종석이의 고추잡채 요리는 예술이었다. 재료에 따라 익히고 데치는 기술에 능숙할 뿐 아니라, 수십년 동안 요리를 하면서 만든 자신만의 특제 소스까지 가미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내 집으로 일현을 비롯한 다섯명의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동료들은 고추잡채가 나오기 무섭게 먹어 치웠다. 방안에서는 동료들의 고추잡채 먹는 소리만 났다. 고추잡채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고추잡채가 너무 맛있다 보니까, 고량주보다 고추잡채가 먼저 떨어졌다. 유명이가 근처 편의점에서 사온 과자를 안주 삼아서 남아있던 고량주를 마저 마셨다. 웃고 떠들던 중 유명이가 제주도에서 노래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유명이는 제주도의 한 TV 드라마에 나온 적이 있는 신인 배우였다. 연극을 하지만, 노래도 수준급이었다.

  유명이는 30대인데도 불구하고 김광석, 이문세 등 옛날 가수들을 좋아했다. 처음에는 유명이의 노래를 듣기만 하던 동료들이 따라 불렀다. 고추잡채 먹을 때 사용했던 나무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나무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 부른 것 같다. 

  이렇게 고추잡채 프로젝트의 1차는 요리사인 종석이가, 2차는 연극배우인 유명이가 주도하였다. 예술인들의 재능이 그대로 발휘된 시간이었다.


  고추잡채 프로젝트를 진행한 다음날, 술을 많이 마신 여파로 유명이는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 조퇴를 했다. 술자리에 참석했던 동료들도 숙취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침 날씨가 좋지 않아서, 실내에서 치목(治木) 작업을 진행했다.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창방 등 각목재(角木材) 만드는 작업을 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가로는 5치(15센티미터)부터 9치(27센티미터)까지 목재가 허락하는 두께를 감안해서 잘라내고, 세로는 3치(9센터미터)로 했다. 길이는 10자(3미터) 이상으로 최대한 길게 만들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사진작가인 용식이가 동료들이 작업하는 사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휴대폰으로 무엇인가를 검색하고 있는 정목이를 둘러싼 동료들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넷 검색 내용을 궁금해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용식이의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빛의 음영을 이용한 흑백사진이어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흑백사진은 현란하지 않고 안정적이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용식이는 흑백사진을 고집하는 모양이었다. 


  10명의 한옥학교 동료들 중에 배우, 사진작가 등 전문 예술가들이 있어서, 6개월과정을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다른 동료들도 역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인생의 예술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은퇴를 하고 취미활동으로 하던 목공 일을 전문적으로 해보고자 하는 친구, 한옥에서 살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고 싶어서 들어온 친구, 현재의 직장이 아닌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을 찾고자 하는 친구 등등... 제 2의 삶을 만들고자 찾아온 동료들의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서로 다른 향기가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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