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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12.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액비와 물

- 귀농 첫해에 겪은 다섯번째 이야기

  150리터 크기의 플라스틱 통에 지하수 물을 가득 채웠다. 이 물이 따뜻하게 데워지도록, 돼지꼬리 히터를 설치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동영상을 찍어야 하니까.”

  신반장의 아내인 송이씨가 핸드폰으로 미생물 배양액을 제조하려는 우리들을 영상에 담았다. 신반장의 유튜브에 올릴 계획이란다. 

  “친환경 농사를 짓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땅속에 미생물들을 많이 살게 해주는 거예요.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무기물로 분해시켜서, 작물들이 잘 소화시킬 수 있도록 해주거든요.”

  송이씨가 동영상을 찍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반장이 작업 내용을 소개하는 멘트를 했다. 동영상 찍는 것에 익숙해져서, 손발이 척척 맞았다.

  물이 어느 정도 데워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노지 밭 인근의 야산에서 채취해온 부엽토와 으깬 삶은 감자를 양파 망에 넣은 후, 물통에 담궈 놓았다. 부엽토와 감자의 찌꺼기로 인해서 물 호스가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양파 망에 넣은 것이다. 미생물 배양액을 제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2~3일동안 미생물이 풍부하게 생성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미생물 배양액을 만들기 한달전인 지난 2023년 2월 하순부터, 이미 음식물 액비, 깻묵 액비와 잿물 액비, 난각 칼슘 등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음식물 액비와 깻묵 액비는 질소(N) 비료로, 잿물 액비는 칼리(K) 비료로, 달걀 껍질을 이용한 칼슘(Ca)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액비는 충분히 발효시킨 후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 놓아야 한다. 한달정도 발효되면서, 액비의 재료에 따라 다른 모양의 미생물들이 만들어졌다. 깻묵 액비에서 만들어진 미생물들이 만들어낸 모습이 특이하였다. 


  미생물 배양액을 제조하기 위한 작업을 마무리한 우리는, 연수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토양에 배양액을 뿌릴 때는 지하수나 시냇물을 사용해도 된다. 그런데 작물에 엽면 시비를 할 때는 비료나 농약이 작물의 잎에 골고루 잘 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수가 아닌 연수를 사용해야 한단다. 칼슘, 마그네슘, 철분 등 각종 성분이 들어가 있는 경수는 작물의 잎에 잘 묻지 않기 때문이다. 

  산채마을 앞을 흐르는 시냇물, 대표님 집과 신반장 집의 지하수를 표본으로 채취했다. 내가 사용 가능한 물들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표본에 자닮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흔들었을 때 거품이 많이 발생하면서도 물이 맑은 상태로 있으면, 연수로 사용할 수 있다. 신반장 집 지하수와 시냇물은 거품이 많이 발생하지 않은 경수였다. 대표님 집 지하수가 비교적 거품이 많이 발생했는데, 물도 같이 뿌옇게 변했다. 모두들 엽면 시비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물이라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초등학교때 과학 실험시간이 재미있었다. 실험실의 책상 위에 놓인 액체나 가루들을 섞었을 때, 연기가 나거나 거품이 발생하는 현상들을 보면서 박수를 치곤 했었다. 액비를 만들거나 연수 테스트를 할 때는 마치 과학 실험시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액비들의 성분이 각각 달라서, 발효되는 모습도 제각각인 것이 흥미로웠다. 평상시에 아무 생각없이 사용했던 물들의 성분이 다르다는 것도 신기했다. 사람이나 동물보다 내성이 약한 농작물들이 마시고 흡수해야 할 재료들이기에, 좀 더 꼼꼼하게 만들어야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농작물이기에, 이들이 먹고 마시는 재료들의 성분을 충분히 알고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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