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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5. 2023

<초보 농사꾼의 하루> 이웃집 농부

- 귀농 첫해에 겪은 첫번째 이야기

  유공관(有孔管) 설치작업을 마무리하고, 포크레인으로 파냈던 땅을 메우고 있었다. 2022년 10월말 어느 날 오후 4시 30분쯤이었다. 이웃집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함선생님이 나와서 인사를 했다. 강원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정년 퇴임하고 귀농한 분이었다. 원주에 가족이 살고 있어서, 왔다 갔다 하면서 몇 백평정도 되는 밭에 농사를 짓고 있었다.

  “지난 여름 장마 때 물이 밭 옆쪽에 있는 수로를 넘쳐 흘러서, 내 밭까지 피해를 봤어요. 오늘 포크레인이 온 김에 수로를 좀 더 깊이 파내고, 굽어진 수로도 직선으로 정비를 해주세요.” 

  인사를 하면서 나에게 요청을 했다. 그렇게 어려운 작업이 아니어서, 포크레인 기사에게 이야기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작업해 놓은 수로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30분쯤 후에 와서는 다시 요구를 했다.

  “수로를 좀 더 반듯하게 정비해주시고, 넓게 만들어주세요.”

  수로가 산 바로 옆에 위치해서 그런지, 바닥에 큰 돌들이 많이 박혀 있었다. 포크레인으로도 박혀 있는 돌을 빼내기가 쉽지 않은 탓에, 포크레인 기사가 가능한 돌들만 작업을 해 놓았던 것이다. 포크레인 기사에게 좀 더 작업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약간 불쾌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작업을 하고 있는 데, 왜 이웃 사람이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지?


  2023년 농사를 위해서, 동료들과 같이 옥수수를 재배했던 1천평 규모의 밭을 임대하기로 했다. 나와 신반장이 5백평씩 농사를 짓기로 했다. 옥수수를 재배하면서 보니까, 밭에 물이 너무 많았다. 이 밭이 있던 마을의 지형상, 마을 뒷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아지는 곳에 이 밭이 위치하고 있었다. 웬만한 밭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들이 너무 습해서 힘들어했을 정도였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서는 밭의 물기를 줄이는 작업을 해야 했다. 농작물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과습한 곳이니까. 물이 많이 나는 곳을 중심으로 유공관 묻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대표님이 소개해준 포크레인 기사에게 부탁해서, 땅파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지하에 흐르는 물을 원활하게 빼주기 위해서는, 1미터 정도 땅을 파내야 했다. 

  아침 8시부터 작업을 진행했는데, 파내야 할 땅이 많아서 시간이 걸렸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땅 파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한 뒤에 최선생님과 전장군님의 도움을 받아서, 유공관 설치작업을 진행했다. 

  길이 5미터 정도 되는 플라스틱 원통을 최선생님과 둘이서 맞들었다. 내가 잡은 한쪽 끝 부분을 다른 원통에 연결시켰다. 원통과 원통사이에 있는 30~40센티미터 정도되는 연결 관에 끼워 넣는 작업이었다.

  “연결 관에 돌려서 끼워 넣을께요. 원통을 같이 돌려주세요.”

  플라스틱 원통의 표면에는 나사와 같이 둥그런 홈이 파여 있어서, 돌려 끼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최선생님과 함께 적당한 깊이까지 플라스틱 원통을 연결관 안으로 돌려 넣었다. T자형으로 파낸 땅에 총 22개의 유공관을 설치하였다. 설치된 유공관을 부직포로 싸맸다. 흙이 유공관의 구멍을 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유공관 설치가 끝나자, 포크레인으로 파낸 흙을 다시 덮는 작업을 진행했다. 포크레인 작업을 끝내기로 한 5시가 가까워진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웃집에 사는 함선생님이 나와서, 수로 정비 작업을 요청한 것이다. 그것도 두차례나. 


   2022년 옥수수가 한참 자라고 있을 때, 나와 동료들은 옥수수 잎에 진드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는 진드기를 죽이기 위해 농약 살포작업을 해야 했다. 어른 키보다 커버린 옥수수 위쪽을 향해서, 분무기로 농약을 뿌리고 있을 때였다. 이웃집에 사는 함선생님이 나와서 큰 소리로 불평을 했다. 

  “내가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데, 토양 검사에서 농약이 검출되었어요. 결국 생산한 농산물도 판매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이 밭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와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농약이 자기 밭에 날아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날아가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막는다는 말인가? 미안하기도 했지만,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뒤부터는 농약치는 것을 가급적 자제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장마로 인해 쓰러진 옥수수들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다시 나와서 항의를 했다. 자기 밭에 심어진 아로니아 나무들을 누군가가 베어냈다는 것이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신반장과 나는 금시초문이어서, 우리가 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신반장과 나는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그 분에게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까 동료인 교장선생님이 옥수수 밭으로 넘어온 아로니아 나무 줄기들을 잡초로 잘못 알고 베어낸 것이다.) 

  토착농민들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이라서, 농사로 인한 갈등이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귀농한 사람들과는 간혹 이런 갈등이 생긴다고 한다. 특히 함선생님은 마을 사람들과 그다지 접촉도 없고, 이기적인 요구가 많아서 평판이 썩 좋지 않았다. 농사를 처음 지어본 나는 이웃집 농부가 와서 불만을 터트리는 것을 처음 겪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논밭이 접한 이웃끼리는 이런 갈등이 생길 수 있겠구나.’하는 것을 경험했다. 귀농하면 내가 겪어야 할 갈등 중 하나일 것이다. 


  기사는 연신 시계를 보면서, 함선생님이 요청한 작업을 진행하였다. 5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작업을 하기로 되어 있단다. 작업이 끝나자 마자 그는 부지런히 포크레인을 트럭에 싣고 떠나 버렸다. 유공관을 묻으면서, 노지 밭의 평탄화 작업도 일부 진행하였다. 덕분에 밭이 말끔하게 바뀌었다. 이 땅에 심어질 농작물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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