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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8. 2023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 농촌의 진화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아홉번째 글

  “한옥집 짓는 법을 배운 적은 없어요. 첫번째 집을 지을 때는 혼자 공부해가면서 작업을 해야 해서 힘들었죠. 세번째, 네번째 집을 지으면서, 차츰 익숙해지더라구요.” 

  한옥집 앞마당에 동료들이 한옥집을 지은 송사장님을 둘러싸고 서있었다. 파란 하늘과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한 멋들어진 한옥집이었다. 가장 최근에 완성한 한옥집이었다. 

  “나 혼자 이 집을 짓는 데 일년정도 걸렸죠. 무거운 원목을 나르거나, 가공한 뒤 제 자리에 설치할 때는 포크레인을 많이 이용했어요.”


  나와 동료들은 차 두대에 나눠 타고, 산채마을을 가로지르는 왕복 이차선 마을도로를 달렸다. 마을도로를 따라 태기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개천을 이루고 있었다. 일년내내 마르지 않는 이 시냇물은 주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예쁜 전원주택과 밭들이 개천과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지막한 산들이 주택과 밭들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었고, 노란색, 분홍색으로 물들여진 봄꽃들이 아름답게 산을 수놓고 있었다.

  10분정도 달렸을까?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마을 도로로 접어들었다. 양 옆으로 펼쳐진 밭들을 지나서 오 분쯤 가니까, 집이 한채씩 눈에 들어왔다. 마을 도로 여기 저기에 전원주택 단지를 건설하고 있다는 푯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아늑하고 살기 좋은 산속 마을이었다. 

  마을 뒤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으로 오르기 직전에, 예쁜 한옥집들이 여러 채 나타났다. 지은 지 얼마 안된 듯 외관이 깔끔하였다. 한옥집 앞에서 60대로 보이는 어느 여자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와 같이 온 산채마을 팀장님과는 친한 사이 같았다. 서로 오랜만에 만난 듯이, 큰 소리로 반갑다고 인사를 하면서 얼싸안았다. 가끔 만나서 술 한잔씩 하는 사이란다. 여자분의 안내로 주차를 하고 있으려니까, 남편이 나타났다. 송사장님이라고 불리는 분이었다.

   나와 동료들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횡성군 둔내면의 농가들 중 모범적인 선도농가들을 찾아가서 교육을 받았다. 그날은 펜션을 활용한 민박사업과 축산을 같이하고 있는 농가를 방문하였다. 2022년 5월중순 무렵이었다.


  이들 부부는 30여년전에 귀농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덮인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자식들을 키우면서 수천평의 밭에 농사를 지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백평 정도로 규모를 줄여 나갔다. 대신 한옥집을 지어서, 민박사업을 하고 있었다. 한옥집 네 채 중 한 집은 부부의 살림집으로 쓰고, 나머지는 펜션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터지기전에는 제법 손님들도 많았다고 한다. 

  한옥 펜션 사업과 함께 60마리 정도의 한우를 키우고 있었다. 한우 축사의 지붕에는 태양광을 설치하고, 한전에 전기를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밭농사를 짓기 힘들어지자, 민박사업과 축산, 전기 판매로 업을 바꾸어 나갔다. 자신의 연령대에 맞는 일을 하면서, 수입을 창출해가는 현명한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득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농촌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조상때부터 벼농사를 주업으로 살던 곳이었고, 소와 돼지 등 가축들도 키웠다. 목돈이 필요하면 키우던 돼지나 소를 팔았다. 쌀 가격이 어떻게 변할 지, 한우나 돼지의 가격이 어떻게 변할 지, 어떤 농부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해에는 적당한 강수량과 일조량으로 꽤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가뭄이 들어서 흉작이 되거나 지나치게 수확량이 늘어나 가격이 폭락하면서, 재료비도 건지기 힘든 해도 있었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면서, 자연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농촌이었다. 

  이곳 강원도의 농촌 모습은 내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 많이 달랐다. 날씨 변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농산물 생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활용한 민박사업, 고랭지 기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작물을 활용한 대규모 농업, 농산물 가공 사업이나 유통 등등… 농업의 영역을 농산물 생산뿐 아니라 가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이곳 횡성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시골에는 비닐하우스나 비닐 멀칭한 밭이 없었다. 노지재배가 주류였다. 그런데 요즘 농촌에서는 비닐 멀칭이나 비닐하우스가 보편화되어 있다. 덕분에 변덕스러운 날씨에 따른 어려움을 이겨내서, 이전보다 긴 기간동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비닐하우스에 각종 센서나 기계 장비를 설치해서, 스마트 팜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제 핸드폰에 깔린 앱을 이용해서,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농촌에서도 기술 발전에 따른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농촌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옥집 외벽은 모두 비싼 황토 벽돌로 감쌌고, 지붕의 서까래들도 비슷한 두께로 치목(治木)을 정성스럽게 하였다. 창문도 전통 한옥과 같은 십자형 창살위에 한지를 발랐다. 외부를 둘러본 우리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서 넓은 거실을 덥혀주고 있었다. 큰 방 두개와 화장실 하나를 갖춘 집이었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마을 앞산의 풍광이 고즈넉해 보였다. 

  우리는 송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한옥 짓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제대로 된 한옥 목수 교육을 받지 않은 분이었다. 더군다나 무거운 원목을 가공하고 조립하는 작업을 혼자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만큼 힘들게 한옥을 지었으리라 상상이 된다. 일 머리와 일 근육을 타고 나신 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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