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an 30. 2023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 두릅찾아 삼만리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여덟번째 글

   “또 두릅을 따러 가는 거예요? 단체로 하는 작업을 먼저 하고, 개인적인 일은 나중에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갑자기 최선생님 형수가 교장선생님과 최선생님에게 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씨 감자 심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던 다른 동료들의 눈이 이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씨 감자 심는 도구를 챙겨 들었다. 

  4월말 어느 날 오전 10시부터 씨 감자 심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되어 있었다. 감자 밭은 태기산의 8부 능선에 있었기 때문에, 산채마을에서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서 감자 밭으로 이동했다. 감자 밭에 도착한 우리들은 어깨에 메는 통에 씨 감자를 채워 넣기도 하고, 씨 감자가 가득 들어있는 마대자루를 밭의 이곳 저곳에 옮겨 놓기도 했다. 작업 중간에 씨 감자가 떨어지면, 쉽게 보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들이 씨 감자 심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에, 교장선생님과 최선생님은 태기산에 두릅나무가 어디에 있는 지 잠시 살펴보고 오겠단다. 막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는 두 사람을 향해서, 최선생님 형수가 야단을 친 것이다. 


  산채마을 주변에는 두릅나무가 무척 많았다. 두릅은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 사포닌 등의 성분이 많아서, 당뇨병, 위장병 등에 좋다고 한다.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장아찌를 만들기도 한다. 

  교장선생님과 최선생님은 워낙 두릅을 좋아해서, 4월 중순에는 매일같이 아침 일찍 주변 산으로 두릅을 따러 다녔다. 씨 감자를 심기 얼마 전에도 두 사람의 제안으로, 나와 전장군님이 함께 따라 나섰다. 자동차로 태기산 8부 능선까지 올라간 후, 교장선생님이 앞장서서 감자 밭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산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산속에서 각자 흩어져 두릅나무를 찾아보기로 했다. 

  두릅나무는 한두 그루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나는 두릅나무를 발견하는 대로 잎을 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산 자락이 끝나는 지점까지 간 다음에, 다른 길로 우회해서 우리가 출발한 곳으로 향했다. 우리의 차를 주차해 놓은 위치에서 가까운 장소에, 두릅나무가 많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산채마을의 팀장님이 심어놓은 두릅나무들이라고 한다.

  두릅나무에서 새순은 놓아두고 큰 잎들을 따냈다. 두릅을 따본 경험이 없던 나는, 새순은 자라게 놓아두고 큰 잎들을 따서 먹는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내가 딴 두릅나무 잎을 본 동료들이 웃으면서, 두릅은 주로 새순을 먹기도 하고 새순을 따 줘야 다른 새순들이 또 자라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결국 내가 따낸 잎 중에서 작고 연한 잎들만 남겨두고, 크고 질긴 잎들은 골라내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작고 연한 잎은 장아찌라도 담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두릅을 찾아 나섰다. 텃밭이나 공동으로 가꾸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근처의 야산으로 두릅 나무의 새순을 따러 갔다. 교장선생님과 최선생님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두릅을 따는 것도 모자라서, 모두들 쉬는 주말에도 근처 산에 올랐다. 두 분은 그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 퇴임을 하고,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농촌에서의 한가로운 삶을 살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그들은 두릅 따기를 통해서, 자연속에서의 여유 있는 삶을 마음껏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뒤에 우리의 두릅 따기를 멈출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은 팀장님이 준비한 삼겹살로 회식을 한 날이었다. 동료들은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등 삼겹살을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최선생님이 내게 다가와서, 도와줘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산채마을의 텃밭 옆에 자리잡고 있던 큰 엄나무를 잘라내야 한단다. 이 나무의 잎을 따서 요리해먹고, 나무줄기는 나중에 닭을 삶을 때 쓸 거란다. 엄나무가 바로 두릅중의 한 종류인 개두릅이다. 

  엄나무가 워낙 커서 전동 톱으로 잘라야만 했다. 전동 톱은 동료들 중에서 내가 사용할 줄 알아서, 나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바깥쪽의 작은 가지부터 시작해서, 두꺼운 본 줄기를 차례대로 잘라냈다. 엄나무에는 가시가 많이 나 있기 때문에, 모두들 조심하면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전동 톱을 들고 가지를 잘라내는 나는, 여러 차례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삼겹살 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와 교장선생님, 최선생님은 가지를 잘라서 집 뒤쪽의 한 켠에 정리했다.

  그렇게 잘라낸 엄나무 가지에서 잎을 따냈다. 엄나무가 커서, 잎도 그날 하루 만에 다 딸 수 없었다. 여자동료들까지 합세해서, 이틀만에 겨우 잎 따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대표님을 비롯해서 동료들이 모두 나누어 가져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나도 잎을 가져가서 일부는 데쳐서 먹고, 나머지는 장아찌를 담가두었다. 장아찌로 담가둔 두릅은 나중에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할 때, 구운 삼겹살의 풍미를 돋구어 주면서 톡톡히 제 역할을 하였다. 두릅은 순과 잎이 맛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까지 버릴 것이 없었다.

  그 해에 먹을 수 있는 두릅보다 많은 양을 수확하였기에, 나와 동료들은 더 이상 두릅을 딸 필요가 없어졌다. 마을이나 주변 산뿐 아니라 산채마을 앞마당에서 자라던 엄나무를 베어버리고 나서야, 우리들의 욕심은 막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평생 먹었던 두릅보다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었다. 두릅을 찾아 헤매 다니던 기억은 봄날의 즐거웠던 추억으로 자리잡기에 충분하였다.

작가의 이전글 <농촌 체험하기>세종시에서의 전국 발표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