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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4. 2023

<농촌 체험하기>세종시에서의 전국 발표회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쉰 다섯번째 이야기

  나는 짧은 시간에 쫓기면서, 발표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강원도 지역 발표회를 끝난 직후에 가질 수 있었던 만족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우리 프로그램의 내용은 고사하고, 그냥 목차만 소개하고 나온 느낌이었다. 너무 건조하게 발표를 할 수밖에 없어서, 감동도 없고 내용 전달도 충분하지 못한 발표였다. 하지만 다른 팀들도 똑같이 5분이라는 발표 시간의 제한이 있었기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발표를 한 탓에 나빠진 기분을 추스르고 싶었다. 발표장을 빠져나온 나는, 건물 한 귀퉁이로 가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서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마음 속의 불만족감을 뿜어 내기라고 하듯이, 빗 속으로 담배연기를 연신 내뱄었다. 


   강원도 지역 발표회에서 1등을 하면서, 세종시 본선에 올라가게 되었다. 불과 3주뒤에 세종시 발표회가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본선에서의 발표시간이 5분에 불과해서, 기존 20분짜리 발표자료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반장 부부가 귀국하자 마자 같이 작업에 참여했다. 그렇게 발표자료에 대한 수정 작업을 여러 차례 거친 뒤, 주관하는 농정원에 최종본을 제출하였다.

  우리의 목표가 최우수상이었기 때문에, 발표를 맡은 나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국에서 지역별 발표회를 통해 뽑혀온 5개 팀이 경합을 벌이도록 되어 있었다. 119개 마을에서 선발된 팀이니만큼, 프로그램 내용도 충실할 것이고 발표 자료를 작성하는 수준도 높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진인사 대천명(䀆人事 待天命)이라고 했던가! 일단 최선을 다한 뒤에 결과를 기다릴 수 밖에. 

  세종시 발표 당일인 11월 22일에 거의 대부분의 동료들이 응원차 세종시까지 왔다. 다같이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에 있을 발표를 기다리는 나에게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동료들과 함께 도착한 발표회장은 농정원 건물 1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10층정도 되는 아담한 건물이었다. 세종시의 정부청사들이 지은 지 얼마 안된 것처럼, 농정원 건물도 새 것이어서 깔끔했다. 

  1층 복도에는 농정원이 진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는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Smart Farm test-bed 사업부터 시작해서, 농촌 지원사업들에 대한 집행 현황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농림수산부의 농촌지역에 대한 여러가지 지원 사업들을, 주로 농정원에서 집행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농업이나 농촌 활성화를 위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1층에는 여러 개의 회의실과 조그마한 편의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위치해 있던 편의점에서는, 다른 편의점과는 다르게 세종시 인근 농촌에서 만들어내는 농산물 가공품을 같이 팔고 있었다. 다양한 곡물류나 빵 같은 것들이었다. 1층을 둘러본 나는 그 날의 발표회장인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150명 전후의 참가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날 발표회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5개 마을뿐 아니라, 40세미만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에 대한 결과 발표도 같이 진행되었다. 전북 완주, 충북 제천, 서귀포 등 다양한 지역에서 참석하였다. 본선에 진출한 5개 마을 중에서, 강원도는 내가 속해있던 횡성군 산채마을뿐 아니라 양구군의 약수마을까지 2개팀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5개팀중에서 2개팀이나 본선에 진출해서 인지, 양구군과 횡성군의 담당 공무원뿐 아니라 강원도청의 담당 공무원들도 발표회장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5개팀이 발표하고, 뒤이어서 청년들의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 8개팀이 발표했다. 참여한 그룹들이 많았고, 5분 내외의 짧은 시간마다 발표팀이 바뀌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발표회를 준비한 농정원측의 진행이 미숙하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실패하였다. 일부 팀들의 발표 자료는 미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회를 맡았던 농정원 담당자도 진행을 처음 맡아보았는지 실수도 많이 했다. 

  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5개팀중에서 제일 늦은 순서로 발표를 진행했다. 5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준비했던 동영상도 최소한의 분량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5분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땡! 땡! 땡!” 

  제한시간 5분이 끝난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났다. 하지만 발표를 다 마무리하지 못한 나는, 2~3분의 시간을 더 써야만 했다.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탓인지, 발표 내용에 만족할 수 없었다.

  모든 팀들의 발표가 끝난 뒤, 30여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복도나 건물 밖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발표장에 있던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긴장감 탓에 답답했던 회의장의 분위기를 벗어나,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실컷 들이 마셨다. 비가 오고 있는 탓에, 참가자들이 건물의 처마를 따라서 줄지어 서있었다. 자연스럽게 방금 끝난 발표회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발표가 시작되기 전에 빔 프로젝터가 제대로 작동되는 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30분이 넘게 소비하면서도, 발표는 5분밖에 못하게 하니까 화가 나네요.”

  “왜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을 발표할 때는 10분이 넘게 시간을 주면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발표 시간은 5분이라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죠?”

   몇몇 마을에서 온 참가자들이 큰 소리로 불만을 쏟아냈다. 농정원측의 미숙한 진행에 대한 불만이었다. 하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빗소리와 함께 묻혀 버렸다. 


  이윽고 최종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참석자들이 모두 착석하기를 기다린 후, 사회자의 발표와 함께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대한 시상식은 장려상부터 우수상, 최우수상 순으로 발표되었다. 장려상이 3팀, 우수상이 1팀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남은 팀이 자연스럽게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나와 동료들은 장려상과 우수상 팀이 호명될 때마다, 제발 산채마을 이름이 발표되지 않기를 빌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우수상 수상자로 횡성군 둔내면 산채마을이 결정되었다. 나와 동료들은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마을의 참가자들도 축하 인사를 건네 주었다. 

  김대표님이 연단으로 나가서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하고 난 후, 동료들은 모두 연단으로 나가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최우수상의 부상으로 상금 1백만원도 같이 받았다. 목표했던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나와 동료들은 불만족스러웠던 발표당시의 감정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나와 동료들은, 미리 예약해 놓은 일식집에서 방어회를 배불리 먹었다. 이전에 나와 같은 직장에 다녔던 후배가 운영하고 있는 일식집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후배는 우리 일행들을 위해서, 신선한 대방어를 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동료들은 최우수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을 자축하면서, 흥겹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모두들 얼큰하게 취한 뒤에는, 근처 노래방에서 노래도 실컷 불렀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멋있게 장식할 수 있어서, 더 없이 기분좋은 하루였다. 지난 6~7개월동안 운영진과 교육생들이 고생하면서 채워 나갔던 프로그램이 가장 우수했다고 인정받은 날이어서, 더 없이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세종시 근처에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펜션에서 그날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인근 식당에서 맛있는 콩나물 국밥까지 배불리 먹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이제 6개월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동료들도 같은 느낌인 모양이다. 그 동안 매일같이 봐왔던 동료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모두들 섭섭해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우리들은 계모임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2달에 한번씩 만나기로 하고, 장미씨를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즐거운 추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동료들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만큼 지난 6~7개월동안의 추억이 즐거운 경험으로 아로새겨졌던 것이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동료들의 인생에서 잊혀지지 않는 한 페이지를 만들었던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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