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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8. 2023

<한옥 대목반> 옹이선생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네번째 이야기

  “옹이가 단단해서, 나무가 잘 깎이지 않네. 끌을 박아놓고 세게 내려치면 되겠지?”

  나는 옆에서 같이 작업하던 일연이에게 물어보면서, 큰 끌을 옹이 부분에 대고 망치로 내려쳤다. 나무가 두꺼우니, 옹이도 크고 단단했다. 잘 깎여 나가지 않았다.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옹이를 보고는, ‘누가 이기나 보자.’라는 똥 고집에 나는 힘껏 끌을 내려쳤다. 그 순간, ‘뚝’하는 소리와 함께 끌이 두 동강 나버렸다. 나와 옹이의 싸움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동료들이, 순간 ‘푸하하’하고 웃어 버렸다. 


  12월초 대들보 가공 작업을 한 날은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화목난로 주위에 둘러서서,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감상하였다. 자연스럽게 평창의 겨울 분위기에 젖어 들어갔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가수 김광석 노래를 틀어놓고 막걸리를 마시곤 했었다. 그날도 술 한잔이 생각났다. 옆에 있던 용기와 유명이도 술이 생각난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그날 오후 조촐한 술 모임이 정해졌다. 

  우리가 모여있던 화목난로 옆으로, 선생님이 대들보 머리의 견본을 가지고 왔다. 우리가 작업할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교보재였다. 한옥학교에 입학하고 지난 2개월여 동안은, 서까래나 기둥과 같이 원목을 깎아내고 다듬는 치목(治木) 작업을 주로 했었다. 그날은 처음으로 가공 작업을 해보는 날이었다. 그 동안에 주로 했던 작업에서는 톱이나 전기대패 등을 이용했다면, 그날은 끌을 주로 사용하는 섬세한 작업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 새로운 형태의 작업에 대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옥집을 지을 때 가장 두껍고 무거운 부재가 대들보이다. 대들보는 기둥 위에 올라가는 부재로, 지붕의 무게를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세로로 놓여지는데, 가로로 놓여지는 장혀, 도리와 십자 모양으로 기둥 위에서 짜맞춰진다. 집의 규모가 클 때는 대들보 위쪽에 중보, 종보 등의 작은 보들이 대들보와 평행하게 자리잡게 된다.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전날 사각형으로 치목(治木)을 해놓은 대들보 부재를 각자의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먼저 보가 기둥과 장혀, 도리와 만나야 하는 지점에 밑그림을 그렸다. 밑그림을 따라서, 톱으로 필요한 깊이까지 잘라냈다. 이어서 끌을 사용해서, 섬세하게 깎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가공했던 나무에서는 옹이가 여러 개 나타났다. 옹이가 있는 부분에 끌을 박아놓은 다음에, 힘껏 망치로 내려치면서 옹이를 깎아 나갔다. 처음에는 날카롭게 갈아져 있던 끌 날의 이빨이 군데 군데 빠지기 시작했다. 옹이의 단단함을 무쇠 끌이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끌의 목 부분이 부러지고 말았다. 

  작업하는 것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동료들의 웃는 소리에 내 작업대로 왔다. 두 동강이 난 내 끌을 살펴보면서, 옹이를 가공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옹이 가공은 톱으로 하는 것이 제일 좋죠. 톱이 들어가기 어려운 자리는, 끌로 옹이 주변의 나무를 먼저 깎아낸 다음에 작업하면 수월해요.” 

  그 뒤에도 내 나무에서는 옹이가 여러 개 나왔다. 보 위에 올라갈 장혀와 도리 자리를 만들 때도, 보 머리를 둥근 끌을 이용해서 가공할 때도. 선생님이 이야기한대로 옹이를 가공할 때는 주변부터 깎아내서, 단단하게 박혀 있는 옹이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작업부터 진행하였다.

  옹이가 나올 때마다 내 주위에서 작업하고 있던 일연이와 종석이가 와서 놀려댔다. 

  “형님은 이제 옹이 가공에는 박사가 되겠네요.”

  “그럼 앞으로 옹이선생이라고 불러야겠네요. 하하하”

   그날 이후 나는 ‘옹이선생’이라고 불렸다. 사람도 역시 상처가 생기면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단단해진다. 그 상처가 쉽게 잊혀지지도 않는다. 옹이와의 싸움의 결과로 무쇠 끌이 부러져 버린 것은, 동료들 사이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그 뒤부터 동료들은 가공을 하다가 옹이가 나오면, 나에게 옹이가공을 부탁하곤 했다. 


  나무는 상처가 생기면, 송진을 내보내서 스스로를 치료한다. 옹이는 송진이 절여져서 만들어진 것이라서, 톱이나 끌로 파내기 쉽지 않다. 옹이는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나무가 썩어도 옹이는 썩지 않을 정도로 오래간다.

  한옥을 지을 때는 나무가 자란 방향대로, 나무의 뿌리부분이 땅을 향하도록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무의 뿌리부분과 줄기 윗부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뿌리 부분이 내구성과 내수성이 강해서, 빗물이 닿거나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위치에 활용하는 것이 좋다. 원목의 위아래를 구분할 때, 옹이나 나이테의 모양을 이용한다. 옹이는 보통 ‘Y’자 모양으로 자라서 위쪽 모양이 넓어지게 된다. (나이테의 간격은 좁은 쪽이 위쪽이다.) 

  

   대들보는 한옥집 내부의 천장을 이루는 부분이기에, 눈에 잘 띄는 부재이다. 그만큼 가공을 잘 해야 한다. 나와 동료들은 섬세한 조각을 처음 하는 것이어서, 긴장감을 가지고 집중을 해야만 했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우리들은, 그날 수업을 모두 마무리하고 난 후 화목난로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었다. 

  그 사이에 용기가 점심시간에 장평 장터에서 사온 감자전과 메밀전, 그리고 막걸리 몇 병을 펼쳐 놓았다. 유명이는 유튜브로 김광석 노래를 크게 틀어 놓았다. 우리는 밖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보 머리 가공을 나름 멋있게 마무리한 것을 자축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감자전과 메밀전이 맛있어서 그런지, 막걸리 5병이 금방 동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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