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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5. 2022

<한옥 대목반> 추억의 방어회식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세번째 이야기

  방어회가 두 개의 밥상 위를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저녁 회식이었는데도, 밥을 찾는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방어회로 배를 채우겠다는 듯이, 모두들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하였다. 회를 먹는 데 집중하는 바람에 어떤 부위를 먹는 지 또 맛은 어떤 지 느낄 사이도 없었다. 소주 한잔씩을 들이키고 나서야, 회식의 즐거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평창 한옥학교 38기 동료들은 2022년 1월에 두 번째 회식을 진행하였다. 지난 첫 번째 회식은 우리 10명의 동료들이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나는 회장으로써, 두 번째는 서로간에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회식으로 만들고 싶었다. 또한 동료들에게 인생에서 간직하고 싶은 추억 중 하나가 되는 이벤트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방어 회식이다. 동해안에 인접한 강원도의 주산물이 생선이고, 그 중 방어가 제철이었기 때문이다.

  1월은 방어가 비교적 값이 싼 시기이고 몸집도 크기 때문에, 10명이 먹을 회를 떠와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단 하나의 어려움이 있다면, 누군가가 동해안의 수산시장으로 가서 회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일은 나와 총무인 종석이가 맡았다. 우리는 오전 수업만 참가하고 조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동해안 수산센터 중에 제일 큰 주문진 항으로 차를 몰았다. 평창IC부터 대관령을 넘어서 주문진으로 향하는 영동고속도로는 해발 고도가 700미터에 달한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해발 700미터대에서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량이 증가해서 피로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사람과 동식물이 가장 살기 좋은 고도란다. 그래서 그런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심신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문진 수산시장에서 파는 주종 어류는 방어였다. 방어는 1년 내내 잡히기는 하지만, 가장 맛있는 시기가 겨울이다. 이 시기의 방어는 산란기를 앞두고 크기도 커지고 몸 속에 지방도 많아서, 살이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보통 8~10kg짜리 대방어 한 마리만으로도 15~20명이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온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방어는 보통 5kg이상, 중방어는 3~5kg, 소방어는 3kg미만이다.) 


  그날 주문진 수산센터에서는 대방어보다 약간 작은 것이 10만원, 중방어보다 약간 큰 것이 6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한달 뒤에 주문진 수산센터에서 중방어의 가격을 물어보니까, 10만원이 넘었다.) 우리는 중방어보다 약간 큰 것을 두 마리 샀다. 그러자 주인 아주머니가 쥐치 등 작은 물고기들을 서비스로 주었다. 

  주문진 수산센터 한 켠에는 전문적으로 회를 썰어주는 가게가 있었다. 두 마리의 방어가 워낙 컸기 때문에, 회로 만드는데 30분가까이 소요되었다. 근처의 대형 마트에서 생선지리탕과 닭도리탕을 끓이는 데 필요한 야채와 햇반 등을 샀다. 이렇게 대방어 회와 탕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입하는 데, 거의 2시간이 소요되었다. 

  곧바로 집으로 가서 준비를 해야, 동료들이 학교 끝나고 올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석이와 나는 부지런히 내가 사는 집으로 왔다. 다른 동료들이 살고 있는 집보다 내가 사는 집이 학교에서 가까웠고 거실이 상대적으로 넓어서, 회식장소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 마자 닭도리탕과 생선지리탕을 끓였다. 요리사 출신인 종석이가 요리를 착착 진행했고, 나는 옆에서 종석이가 요구하는 대로 양파와 대파를 다듬고, 깻잎과 상추를 씻었다. 거의 준비가 끝나갈 무렵인 5시 20분쯤 동료들이 들이닥쳤다. 모두들 방어회를 무척이나 기다렸는지, 학교가 끝나자마자 출발했단다. 막 상을 펴놓은 상태라서, 먼저 도착한 동료들이 우리가 준비한 회와 김치, 상추와 깻잎, 그리고 초장과 생와사비, 쌈장 등을 밥상 위에 늘어 놓았다.


  이날 회식을 위해서 호식이가 꼬냑을, 내가 싱글몰트 위스키를 한 병씩 희사하였다. 우리들은 방어회와 함께 고급 술을 마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회식 분위기는 처음부터 그 열기가 뜨거웠다. 10명이 둘러앉은 상위에서 놓여있던 두 병의 고급 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어회뿐 아니라 술 맛도 기가 막혔다. 

  “방어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네요?”

  자칭 서울 촌놈이라는 막내 정원이가 연거푸 방어 몇 점을 먹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이 방어의 기름기가 올라와서 제일 맛있을 때야. 큰 놈으로 잡아왔으니까 실컷 먹어. 하하하”

  강원도가 고향인 종석이가 자랑하듯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용식이가 한마디 거들고 나왔다. 

  “저는 방어보다도 싱글몰트가 더 맛있네요. 오랜만에 맛보는 것 같아요.”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용식이는 결국 혼자 싱글몰트 위스키를 거의 반병 가까이 마셔버렸다. 술 자리가 무르익어갈 무렵, 제주도의 가수라고 불렸다는 유명이가 김광석 노래중에서 ‘서른 즈음에’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볍게 떨리면서 이어나가는 유명이의 노랫소리를 감상하던 동료들은, 어느 덧 어깨동무를 하고 떼창을 하였다. ‘거리에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의 노래가 연이어 나왔다. 그렇게 우리들의 떼창은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섭렵하면서 한참을 이어갔다. 

  종석이가 닭도리탕과 생선 지리탕을 내놓고 나서야, 겨우 우리들의 노래 소리는 잦아들었다. 회를 못 먹어서 입맛만 다시고 있던 유명이가, 닭도리탕을 먹어보더니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그야말로 맛있는 음식의 연속이었다. 그날의 회식에 모두들 만족해 했다. 방어회도 일품이었고 이어서 나온 닭도리탕과 생선 지리탕도 맛있었다. 곁들인 술과도 잘 맞았다. 떼창으로 한껏 흥이 오른 동료들은 꼬냑과 싱글몰트 위스키로 끝나지 않고 20병짜리 소주 한 박스를 거의 다 마셔 버렸다. 어떻게 술자리가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기 저기서 동료들이 잠들어 있었다. 거실에 놓여있는 소파 위에서 잠든 친구도 있고, 거실 한쪽 구석에서 웅크린 자세로 자는 동료도 있고… 즐거웠던 방어 회식의 잔재들이었다. 교육기간 내내 동료들은 방어 회식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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