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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4. 2022

<한옥 대목반>그랭이질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세번째 이야기

  “윙 윙 윙” “딱 딱 딱”

  이재현 선생님이 기둥 밑동에 그려진 곡선을 따라서, 전동 톱으로 잘라내고 끌로 깎아내고 있었다. 옆에서는 동료들이 둥그렇게 둘러서서, 선생님의 작업을 진지하게 지켜보았다. 기둥 밑동에는 기초석으로 사용된 자연석의 표면 굴곡에 맞춰서, 꾸불꾸불한 형태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삐뚤삐뚤한 곡선 모양을 따라, 전동 톱으로 거침없이 나무를 잘라나가는 모습에 우리 모두는 감탄을 했다. 딱딱한 원목을 곡선으로 잘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2월 중순 평창한옥학교 야외실습장에서는, 동료들이 기둥 세우기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기초 만들기를 한 후, 한달 정도 만에 야외 실습장에 나온 것 같다. 그 동안 평창의 매서운 겨울 날씨가, 우리를 실내 실습장에 가둬놓았다. 갑갑한 실내 실습장에서 치목(治木)밖에 할 수 없었던 동료들은, 오랜만에 따뜻한 햇빛이 내려 쬐는 야외실습장에 나와서 즐거워했다. 잡담과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날 세워야 할 8개의 기둥을 지게차로 실내 실습장에서 실어 냈다. 그 중 가장 길이가 짧은 기둥을 골라서, 기둥이 세워질 자리 중 한 곳에 세웠다. 8개의 기둥 높이를, 가장 짧은 기둥의 길이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기둥이 워낙 무겁기 때문에, 4~5명의 동료들이 같이 작업을 해야 기둥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항상 열심히 하는 일현이와 종석이가 기둥 밑동을 잡고, 힘센 호림이와 유명이가 기둥 위쪽을 잡고 옮겼다. 

  기둥의 중심부가 기초석의 중심부에 위치할 수 있도록, 기둥과 기초석에 그려진 십반선을 맞췄다. 그리고 선생님이 균형 추로 기둥이 똑바로 서있는 지를 체크하면서, 위치를 알려주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서, 기둥을 잡고 있던 종석이와 호림이가 기둥을 기초석의 중심점에 맞췄 나갔다.


  기둥이 자리를 잡은 후에, 선생님이 한쪽에 볼펜이 끼워진 콤파스를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초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콤파스였는데, 한 쪽에는 뾰족한 다리 대신에 낡은 볼펜이 키워져 있었다. 선생님은 기초석 위에 콤파스의 뾰족한 다리를 대고, 볼펜 부분으로 나무 밑동에 기초석의 표면 굴곡에 따라 선을 그려 나갔다. 전동 톱과 끌로 잘라내야 할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자연석인 기초석의 불규칙적인 모양을, 그대로 기둥 밑동에 옮겨 그리는 작업을 ‘그랭이 질’이라고 한다. 그랭이 질 한대로 기둥을 잘라내는 작업은, 숙련된 목수만이 할 수 있는 고난도의 기술 중 하나였다. 25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선생님도, 나무 밑동을 그려진 그림대로 잘라내고 파내는 데 한참이나 소요되었다. 특히 기둥 표면과 안쪽의 모습을, 모두 기초석의 표면 모습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어려웠다. 

  잘라내는 기둥 밑동과 기초석의 표면 모습을, 수십 번을 번갈아 비교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오는 데도, 선생님 얼굴에는 땀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윽고 그랭이 질을 끝낸 기둥을 다시 기초석 위에 세워보니까, 깎여진 밑동과 기초석이 일체화되었다. 신기하게도 기둥은 버팀줄이나 우리의 도움 없이도, 혼자 기초석 위에 단단하게 서 있었다. 


  조선시대까지는 일반 백성이 집을 지을 때 자연석을 기초석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벼슬이 높은 사람들은 잘 다듬어진 돌을 기초석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법적으로 기초석으로 쓸 수 있는 돌의 형태가 정해져 있었을 뿐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은 잘 다듬어진 돌을 살 돈도 없었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사용하다 보니까, 기둥의 밑동을 자연석의 표면 굴곡에 맞춰서 깎아내야만 했다. 전동 톱과 같은 기계 장비가 없던 옛날에는, 까다롭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기둥 밑동의 따내기와 다듬기를 반복하면서, 물성이 다른 돌과 나무가 융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서로 맞물린 기초석과 기둥은 튼튼해서, 큰 바람이 불거나 지진이 일어나도 처음 모습 그대로 버티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백성들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 자연석이었지만, 오히려 더 튼튼한 기초석이 된 것이다.


  그랭이질을 마친 기둥을 기초석 위에 고정시키기 전에, 두 가지 작업을 추가로 해주었다. 기둥의 밑동에 6미리미터 내외의 크기로, 바깥으로 향하는 숨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기둥 안쪽이 썩는 것을 방지해주는 동시에, 기둥 속으로 기어든 벌레가 나가도록 유도하는 구멍이다. 그리고 주춧돌 중앙부에 소금을 한 움큼 올려 놓았다. 기둥의 뿌리가 이 소금을 빨아들여서, 기둥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해충이 기둥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도 막아서, 기둥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마무리 작업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첫 번째 기둥이 세워진다는 것은 한옥집을 짓는 첫 단계 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함과 동시에, 앞으로 완성해나갈 집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첫 번째 기둥이 세워지면, 기둥 앞에 음식과 막걸리를 놓고 제사를 지냈다. 선생님이 제일 먼저 절을 한 다음에, 기둥을 감고 있던 줄에 돈을 꽂아 넣었다. 그런 다음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큰 절을 했다. 


  그날 그랭이질을 하면서 서로 물성이 다른 나무와 기초석이 일체화되었듯이, 우리 동료들도 함께 무거운 기둥을 옮기고 잘라내면서 한 팀이 되었다. 기둥뿐 아니라 10명의 동료들도 그랭이질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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