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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6. 2022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장아찌 홀릭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여섯번째 글

  명이나물 채취 작업을 마치고 산채마을로 돌아와서, 교장선생님 부부와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식탁 위에는 명이 나물과 곰취 나물 장아찌를 비롯해서, 다양한 채소들이 올라왔다. 특히 장아찌를 담근 명이 나물로 쌈을 싸먹으니까, 너무 맛있었다. 내가 너무 맛있다고 하니까, 교장선생님 형수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맛있죠? 얼마 전에 팀장님이 담가놓았던 거예요. 팀장님한테서 그 요리법을 공유 받기로 했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한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농촌에서 내 손으로 키워내는 다양한 야채들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채들이 소비자의 식탁으로 올랐을 때의 맛뿐만 아니라, 그 과정도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평생 라면밖에 못 끓이던 내가, 농촌에서 나오는 다양한 농산물들을 가지고 요리를 해보자는 결심을 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장아찌 담그기부터 요리 배우기가 시작되었다. 

  

  4월말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 산채마을 뒷산에 있는 명이 나물 밭으로 향했다. 우리를 태운 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려서, 뒷산인 태기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태기산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는 풍력발전기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왔다.

  비료를 전혀 안주고 친환경으로 지은 명이 나물 밭이었다. 비료를 안 줘서 그런지, 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자란 명이 나물은 전체 밭의 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들은 팀장님으로부터 명이 나물 수확하는 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명이 나물의 잎이 2개 이상 나온 줄기를 잘라줘야 한다. 잘라낸 명이 나물의 줄기를 한쪽 방향으로 향하도록 봉투에 담아야, 나중에 쉽게 묶어서 팔 수 있단다. 

  우리는 두 명이 한 조가 되어서, 한 고랑씩을 담당했다. 동료들은 각 고랑에서 명이 나물이 잘 자란 지점을 중심으로 따기 시작했다. 그렇게 따기 시작한 지 2시간쯤 지났을까? 우리는 다섯에서 여섯 개 정도의 커다란 파란 비닐봉투에 명이 나물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20kg 정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비싸다는 명이 나물을 이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진행된다. 나는 목요일 과정이 끝나자마자, 인천에 있는 가족들한테 달려갔다. 인천에서 장아찌를 담아볼 요량으로, 그날 수확한 명이 나물을 차에 실었다. 

  인천에 도착하자 마자, 팀장님이 카톡방에 올려준 요리법 대로, 간장, 식초, 물, 소주, 설탕 등의 비율에 맞춰서 큰 솥에 넣은 다음에 끓였다. 장아찌 소스가 끓는 동안, 명이 나물을 한장 한장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모든 농산물이 그렇듯이, 요리를 하기 위해서 농산물을 깨끗하게 세척하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밥상에 올라가기 어려운 것이다.

  내가 장아찌 소스의 양을 잘못 계산한 것일까? 끓여놓고 나니까 터무니없이 적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간장과 설탕, 식초 등을 좀 더 많이 넣어서 다시 끓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아찌 소스에, 씻어놓은 명이 나물을 담가 놓았다. 장아찌 소스를 만들 때 단맛이나 신맛 등 선호하는 맛을 좀 더 강하게 하려면, 설탕이나 식초를 좀 더 타면 된다. 청양고추와 마늘, 그리고 사과를 넣어서 맛을 내기도 한다. 


  “명이 나물 장아찌에 삼겹살을 싸먹으니까 맛있네요!”

  명이 나물 장아찌를 담근 지 몇 주가 지난 후에, 장아찌를 처음 개봉하는 날이었다. 명이 나물로 싼 삼겹살을 입으로 가져가는 둘째 아들이, 너무 맛있다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그리고는 곧바로 또 다른 명이 나물 장아찌를 한 겹 벗겨 내더니, 잘 구워져 있는 삼겹살을 감싸 들었다. 야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둘째 아들에게도, 명이 나물 장아찌는 맛있는 모양이다. 

  처음 담근 명이 나물 장아찌의 맛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맛에 매료되면서, 나는 가시오가피 잎, 엄나무 잎 등을 연달아서 장아찌로 만들었다. 산채마을 주변에서는 무농약으로 키운 이런 야채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명이 나물 장아찌보다 맛있다는 가시오가피와 엄나무 잎이 잘 조려져서, 또 한번 행복한 경험을 할 시간이 기다려졌다. 


  명이나물 장아찌 요리에 이어, 산채마을 텃밭에서 수확한 여러 가지 야채들로 요리를 해보고 있다. 고수 무침, 배추 겉절이, 노각오이 무침, 알타리 무우 김치, 고구마 줄기 무침 등등… 전적으로 요리 블로거와 여자 동료들, 그리고 아내의 조언에 따르고 있지만, 차츰 야채 자체의 싱싱함과 함께 갖가지 양념들간의 조화가 어떤 맛을 만들어내는 지를 어렴풋이나마 느껴가고 있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요리였는데, 이제는 점차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야채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즐거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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