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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Oct 08. 2022

<농촌 체험하기 퇴고 글> 첫 회식과 노인회장님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다섯번째 글

  수돗가에 둘러 앉은 여자 동료들의 손과 입이 바쁘다. 손으로는 언니네 텃밭에서 캐온 야채와 가시오가피 나무를 씻으면서도,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시끌벅적한 여자 동료들 옆에서 남자 동료들은, 조용히 화로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씻어낸 가시오가피 나무를 큰 솥에 넣고, 가시오가피 물이 우려 나올 때까지 끓였다. 저녁 회식을 위해서 닭 열다섯 마리를 삶아야 했다. 동료들은 어느 누가 역할을 나누지 않았는데도, 서로 제 할 일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막힘 없이 준비를 해나갔다. 만난 지 몇 주가 지나면서, 이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 손발이 잘 맞는 것이리라. 가시오가피 나무의 물이 어느 정도 배어 나오자, 닭을 집어넣고 1시간 30분가까이 또 끓였다. 


  6시가 가까워지자, 저녁 회식에 참석하기로 한 손님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을 시작하면서, 마을 분들을 모신 첫 번째 회식이었다. 산채마을 이장님, 노인회장님, 그리고 ‘농촌에서 살아보기’ 1기 선배님 등.

  산채마을 김대표님이 귀농한 지 벌써 25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이장도 여러 해 맡으면서, 귀농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작년 산채마을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1기 선배님뿐 아니라, 현직 이장님도 정착단계에서 김대표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첫 회식에, 마을의 리더 분들이 모두 참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김대표님의 도움을 그만큼 많이 받아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오늘 회식에는 우리 교육 동기들을 포함해서 열 다섯명 정도가 참석했다. 서로 인사하고 소개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잘 익은 백숙이 식탁 위에 올라왔다. 톱풀, 원추리풀 등 야채, 그리고 배추김치 등 반찬들도 옆에 함께 놓여졌다. 


  모두 자리에 앉아서 닭백숙을 먹기 시작했을 때, 마을 어른들이 모이면 흔히 있는 건배사 시간이 있었다. 노인회장님, 이장님, 그리고 우리 2기 교육생을 대표해서 교장선생님이 차례로 짤막하게 인사를 했다. 제일 먼저 노인회장님이 말을 꺼냈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변하신 노인 모습을 하고 계셔서, 의례적인 인사말만 하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산채마을에서 진행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두 번째로 진행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여러분들의 귀농이나 귀촌에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산채마을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새로운 인력을 수혈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죠.”

  6개월동안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농부로 탄생하기를 바란다면서, 필요한 주제를 조리 있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놀랬다. 일반적인 농촌의 노인회장님과는 많이 달랐다. 귀농 귀촌인이 많은 강원도 농촌마을의 특성상, 직책자들도 내가 어릴 적에 경험했던 전통적인 농촌과는 상당히 달랐다. 시골의 노인회장님은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직책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능력 있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구성원들이 대부분 도시생활을 경험하였고 아직 농사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직책을 맡긴 것 같다. 


  이곳 횡성군 둔내면 산채마을 주변에는 100여 채의 집이 있다고 한다. 그 중 20여채는 주말 별장으로 사용하는 집이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살고 있단다. 주민 상당수는 귀농이나 귀촌을 한 사람들이란다. 내가 평창 한옥학교에 있을 때 살던 평창군 용평면의 동네도 마을 사람 중 60%이상이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강원도가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수도권에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농촌마을에 귀농 귀촌한 사람들의 비중이 높은 것 같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다 보니까, 아직 신체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흔히 농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마을은 활기가 있었고, 농기계를 활용한 대규모의 농사를 짓는 경우도 많았다. 산채마을의 김대표님도 2만평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다. 


  백숙은 맛있게 익어 있었다. 잘 익은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먹는 맛은 일미였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나는 노인회장님, 이장님, 그리고 대표님들이 앉아있는 자리로 이동해서, 술 한잔씩을 따라 드리면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같이 있던 이찬슬 사무장, 젊은 신반장 부부와 같이 마케팅, 유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산채마을의 첫 번째 회식이 마무리되었다. 깊어가는 밤 하늘에서는, 별들이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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