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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3. 2022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 나만의 텃밭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네번째 퇴고 글

  처음으로 나만의 텃밭을 가져보는 것에 대한 기대감인가? 나에게 할당된 텃밭을 보면서, 내가 심은 채소들이 파릇파릇하게 커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즐거움과 함께, 신선한 야채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부풀어 올랐다. 방송이나 신문지상에서 남들이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것을 부러워했던 탓도 있으리라.

  산채마을 뒤쪽에는 오백평이 넘는 밭이 가꾸어져 있었는데, 그중 개인별로 25평의 텃밭을 분배해줬다. 텃밭은 모종이나 씨앗을 심기만 하면 되도록, 이미 검은 비닐로 깔끔하게 멀칭까지 되어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표님이, 교육생들을 위해서 미리 준비해놓은 것이다. 처음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할 때처럼, 검은 멀칭 비닐이 가지런히 덮여있는 텃밭을 보면서 어떻게 그림을 그려나갈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4월 20일 언니네 텃밭에서 오전 교육을 끝내고, 동료들과 같이 둔내면에 있는 ‘둔내 식물병원’에 갔다. 그곳은 각종 야채 모종과 씨앗, 그리고 농사에 필요한 간단한 도구들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우리는 텃밭에 옮겨 심을 모종과 씨앗을 샀다. 가게 밖에 진열되어 있는 모종들은 그 당시에 옮겨 심기에 적합한 채소들이었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 많았다. ‘루꼴라’, ‘콜라비’, ‘오크’, ‘적겨자’, ‘적치커리’ 등등,,,

  둔내면의 여러 개 종묘상 중에 한 곳인 이 가게는,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산채마을에서 왔다고 하니까,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사장님이 산채마을 사모님의 조카였다.) 농사 초보인 우리들이 기초적인 질문을 쏟아내는 데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이 모종은 뭐예요?” “루꼴라를 키울 때, 물은 얼마나 주면 되나요?” “신선초를 키울 때 주의할 점이 뭔가요?”

  젊은 남자 사장님은 우리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을 해주면서, 우리가 주문한 모종이 심어진 포트판을 필요한 수만큼 잘라내었다. 

  나는 일곱 가지 종류의 채소류 모종을 각각 다섯 개씩만 사왔다. 고수, 적상추, 비트, 적치커리, 적겨자, 치커리, 그리고 청경채. 고수나 적상추와 같은 채소는 내가 좋아해서 골랐지만, 나머지는 자주 먹어보지 못했거나 들어보지 못한 채소류들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채소들을 키워보고, 또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채마을로 돌아온 나는 식물병원에서 산 작업용 장화로 갈아 신은 다음, 모종을 들고 바로 텃밭으로 갔다. 오늘 산 모종들을 텃밭에 다 심어놓은 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바로 옆의 동료들 텃밭에는 이미 이런 저런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다. 가족들이 주로 먹는 상추, 대파, 양파나 고추 등의 모종들이 검은 멀칭 비닐의 구멍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텃밭 농사를 처음 짓는 나에게는 어떤 모종을 어느 정도 간격으로 띄어서 심어야 하고, 텃밭의 어느 위치에 어떤 채소류가 좋은 지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다. 모종을 심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멀칭 비닐에 이미 뚫어져 있는 구멍의 넓이(25센티미터)로 모든 모종을 심어나가기로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과채류가 자라고 난 후의 줄기 높이나 옆으로 퍼지는 정도에 따라서, 모종을 심는 간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고추나 토마토와 같이 줄기가 제법 크게 자라는 것들은, 40~50센티 넓이로 모종을 심어주기도 한다. 다행히 그 날 내가 심은 채소들은 기존 멀칭 비닐의 구멍 간격으로 심어도 되는 것들이었다. 

  4월에 심은 여러 가지 채소들은, 별다른 병충해에 시달리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다. 신선한 채소의 잎을 따 먹었을 때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여러 차례 잎을 따먹어도 또 다시 자라서, 다른 잎들을 제공해주는 야채들이 고맙기도 했다. 

  일부 채소들은 너무 자라서 줄기가 굵어지고 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밥상에 오를 수 있는 야채로서의 사명은 끝나는 대신, 자신들의 후손을 위한 씨앗을 남겨주게 된다. (나는 굳이 야채의 씨앗을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오래되어서 먹기 어려운 야채들은 뽑아내고, 그 자리에 다른 야채를 심었다. 브로컬리, 샐러리, 청양고추와 풋고추, 파프리카, 오이, 호박 등등 


  몇 달 후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채소값이 금값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비싼 채소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뜻밖에 텃밭이 나에게 가져다 준 기쁨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즐거움이었다. 파릇파릇하게 채소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느낌이 드는 것에 더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살아있는 생명체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채소들은 내 마음 안에 푸르른 공간을 넓혀주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내 마음 안에 긍정의 공간이 커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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