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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04. 2022

<한옥 대목반> 농촌마을의 골프 연습장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한번째 이야기

  “나이스 샷!”

  일현의 드라이버 샷이 250미터를 훨씬 넘긴 페어웨이의 한 지점에 무사히 안착했다. 기분이 좋아진 일현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우리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였다. 다음은 종석이 차례였다. 드라이버를 잡고 몇 차례 연습 스윙을 해보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딱’ 소리와 함께 날아간 골프 볼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가더니, 헤저드 지역에 빠져버렸다.

  “에잇! 오랜만에 치니까, 안되네.”

  종석이가 툴툴거리면서 타석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그 뒤에도 종석이 볼은 주인의 마음과 다르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평창한옥학교에 입학한 지 한달쯤 되는 11월 초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주두(柱頭) 만드는 법을 배웠다. 선생님이 기존에 만들어진 주두를 보여주면서, 만드는 법을 설명해주었다. 

  “이것이 기둥의 머리에 올라가니까, 밑부분은 기둥 크기와 같아야 해요. 반면에 윗부분은 다른 부재와 잘 맞물리도록 십자 모양으로 큰 홈을 파내야 하고요.” 

  우리는 몇 주전에 원목을 주두 크기에 맞게 잘라낸 다음, 실습실 한 켠에 세워놓았었다. 그동안 나무가 마르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 원목의 하단부는 전기 대패를 이용해서 표면을 반반하게 다듬어 주고, 상단부 십자 모양의 홈은 톱과 끌을 이용해서 깎아냈다. 

  한옥학교의 동료들은 각자 한 개씩 주두를 만들었다. 주두는 기둥이나 서까래 등 다른 부재들보다 한결 쉽게 만들 수 있었다. 크기도 작아서, 시간이 훨씬 짧게 소요되었다.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은, 오후 2~3시쯤 벌써 주두를 완성하였다.


  주두 만드는 작업을 빨리 끝낸 종석이와 일현이는, 실습실 한쪽에서 수업이 끝난 뒤에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술자리를 이미 여러 번 가진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놀 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것이 동네에 있는 실내 골프 연습장이었다. 그날은 학교가 일찍 끝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비교적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실내 골프를 치기에 충분하였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나와 종석이, 일현이는 실내 골프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한옥학교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고랭지 배추나 무 등을 수확한 밭을 지나 가야만, 실내 골프 연습장을 만날 수 있었다. 수확하고 남은 배추와 무들이 나뒹굴고 있는 밭들 사이에, 골프 연습장 건물이 있다는 것이 낯설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골프 연습장이 잘 될까?”

  나는 이런 곳에 실내 골프 연습장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동료들에게 물어보았다. 동료들 역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골프 연습장 안으로 들어선 순간, 우리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지은 지 얼마 안되어서 깔끔하게 만들어진 연습장 안의 오른쪽 부분에는 7~8개 정도의 연습 타석이 있었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5개 전후의 스크린 골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들이 있었다. 연습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놀란 것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친구들로 가득 차있는 연습 타석을 봤을 때였다. 모두들 열심히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고, 2명의 코치가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골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안내해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연습하고 있는 친구들이 어디 살고 있나요?”

  그러자 직원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요 옆 전원주택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에요.”

  그제서야 왜 연습하는 학생들이 많은 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전원주택 단지에는 은퇴한 사람뿐 아니라, 재택 근무를 주로 하는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골프를 좋아하는 자녀를 위해서 일부러 이사를 온 사람도 더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골프 연습장과 농촌의 풍경이 어색하다는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었다. 농사는 몸을 사용해야 하는 고된 노동인 반면, 골프는 여가 생활을 채우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삽과 괭이를 들고 농사를 짓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골프를 치는 모습이 자꾸 비교되었다. 옛날 같으면 생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같이 공존하기에는 너무 이질적이었다. 

  귀농 귀촌이 늘면서 농촌의 문화생활도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 놀라운 것은 폐쇄적인 농촌 공동체에 속한 농부들이, 귀농 귀촌인들이 들여온 도시의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농사짓고 있는데 옆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면, 농부들이 경을 쳤을 것이다. 어쩌면 도시 문화의 유입이 농촌에서 삶의 다양성을 만들어줄 수 있지만, 여전히 농부들에게는 이질적이지 않을까? 비록 마음 속으로는 거슬리겠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다.


  두 시간 정도 골프를 친 우리는, 동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내 집으로 갔다. 내 친구가 선물해준 말벌을 담근 술이 마침 집에 있었다. 그래서 아랫집에 사는 정목이도 불러내서, 넷이서 술 한잔씩 했다.

  “옛날에는 농촌에서 농사짓는 사람들만 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까 농촌이 農村이 아닌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것 같아.”

  내가 오늘 골프연습장을 보고 온 느낌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횡성군이 고향이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종석이가 말을 받았다. 

  “이곳 강원도에 수도권에서 귀촌해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어요.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도 이제는 이런 광경에 익숙하고요.”

  강원도는 귀농이나 귀촌하는 사람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관광객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외지인들이 강원도의 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강원도에서 살던 사람들도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어렸을 때 전라도의 한 농촌에서 자란 나에게는 어색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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