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Sep 08. 2022

<농촌 체험하기> 새참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어서 와서 해물파전에 막걸리 한잔 하세요!”

  밭에서 옥수수 모종을 심고 있는 동료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벌써 1시간이 지났나? 시계를 쳐다보니, 일을 시작한 지 어느 덧 1시간 30분이 흐른 뒤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한 시간에 한번씩 쉬자고 약속을 하고 밭에 들어갔었다. 그런데 일에 하다 보면, 하던 일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다른 동료들이 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휴식시간을 갖자는 이야기를 하기가 어렵다. 신반장이 큰 소리로 고함을 쳐서 불러들여야, 겨우 쉬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밭에서 빨리 나오라고요! 쉬면서 하자고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하기 전에는 새참은 고사하고, 식간에 군것질도 잘 하지 않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을 시작하고, 1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온다. 새참을 먹지 않고 계속 일을 할 때는, 2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열명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빈틈없이 일을 잘하고, 누구는 동료들이 고단할 때 웃길 수 있는 유머를 가지고 있고, 빠른 손놀림으로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보다 배 이상의 일을 해내는 우수한 교육생도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는, 최선생님 형수님이 최고이다. 이 형수님은 음식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공부도 많이 했고, 어린이 집과 초등학교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도 했단다. 

  형수님은 새참으로 해물파전, 감자전, 잡채 등 각종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하곤 했다. 동료들이 준비해온 여러 가지 새참 중에서도 내 입맛에 잘 맞는 음식들이었다. 새참은 보통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준비하기도 하고, 조금씩 가져와서 나눠먹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은 구수한 유머와 여유를 가져온다. 여기에 막걸리는 새참의 분위기를 띄우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막걸리가 배도 부르게 하지만, 약간의 알코올 기운이 피로를 가시게 하기 때문이다. 새참을 먹을 때는 일하면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면서, 편안하게 농담을 건네며 농사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었다. 농사 초보들인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일을 하면, 특정 부위의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게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10명의 농사꾼들이 어떻게 협업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논의도 한다.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으면, 고생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힘들어하는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4월을 지나 5월에 접어들면서, 새참 먹는 시간을 잊고 지나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너무 바쁘게 일상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감자, 옥수수, 고추, 호박,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을 3천평의 넓은 밭에 정식해야 하고, 각자 개인 텃밭을 가꾸는 시간도 필요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어려워지자, 마을 분들이 일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여기 저기서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마을 일이기 때문에, 우리도 가능하면 도와주곤 했다.

  새참은 커녕, 점심때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를 준비할 에너지마저 고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점심식사로 자장면을 시켜 먹기도 하고, 햄버거와 피자를 주문하기도 한다. 내가 있는 삽교리는 둔내면에서도 10분이상 떨어져 있어서, 배달되는 메뉴도 햄버거나 피자에 국한되어 있고 그나마 배달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동료들이 식사 주문을 하면, 대부분 신반장이 둔내면에 나가서 사오곤 했다.


  새참을 건너뛰거나 간단히 먹는 것은 6월에 접어들어서 더 두드러졌다. 6월이후에는 필요할 때에 작물에 맞는 비료나 약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내는 작업 등 관리하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한가하였다. 상대적으로 한가할 때는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풀어지는 것인가? 

  농사 일이 한가해지면서, 새참의 메뉴가 차츰 간단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커피나 빵, 찐 옥수수, 감자 등등. 그다지 힘들지 않은 일을 하니까 피곤을 덜 느끼고, 그래서 새참도 이전보다는 간단하게 준비하게 되는 가 보다. 여하튼 그래도 잠깐 쉬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긴 시간을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불과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요즘은, 새참을 같이 먹고 농담을 주고 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내년 나의 모습을 그려보곤 한다. 내년에는 동료들도 없이 나 혼자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다. 비록 작은 규모의 밭이겠지만. 새참은 커녕, 나 혼자 식사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날 그날의 농사 일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식사시간이 불규칙적일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상상하게 되는 나의 일상은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다.

  나는 굳이 힘들게, 그리고 피로에 찌들도록 농사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가진 제2의 삶을 만들고 싶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농사 일을 통해서 소출을 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로 혼자 농사를 짓다 보면, 그 즐거움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만 같다. 내년에는 어떻게 농촌에 살면서 즐거움을 찾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숙제로 남아있는 질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옥 대목반> 농촌마을의 골프 연습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