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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31. 2022

<농촌 체험하기> 헤어짐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스물 네번째 이야기

  내가 만든 엄나무 잎 장아찌와 텃밭에서 딴 야채들을 받아 든, 취중천국 여사장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회사를 경영하던 사람이, 불쑥 시골 텃밭에서 키운 야채들을 들고 왔으니 놀랄 만도 하다. 도시에서 오랫동안 회사를 다녔던 사람이 갑자기 농부가 되겠다고 하니, 이해가 안되었을 것이다. 


  6월 중순경에, 5년이상을 살아왔던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하기로 했다. 이사를 얼마 앞둔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내, 둘째 아들 찬수와 함께 수년 동안 즐겨 찾았던 실내 포장마차인 취중천국에 갔다. 이곳은 인천 연수구의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뒷골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식당은 전라남도 벌교 근처가 고향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사실은 나와 10살 정도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은 분들이다.)

  벌교 꼬막, 문어, 전복 등 남해안에서 나오는 다양한 해산물로 만드는 안주는, 어느 일류 식당에서 만드는 것보다 맛있었다. 항상 바로 전날 직송으로 받은 해산물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싱싱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TV에도 가끔 출연하는 유명인사이면서, 서울지역의 맛있다고 알려진 음식점은 다 찾아가본 미식가인 친구와 함께 이곳에 왔었다. 그때 그 친구가 여사장님의 요리를 먹어보고는, 평가한 말이 기억난다.

  “서울의 유명 요리점을 많이 가봤지만, 이곳만큼 전라남도에서 나오는 해산물을 맛있게 하는 곳은 없었어.”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포장마차와 같은 이곳의 분위기가 더 좋았다. 동료들과 술을 마실 때면, 항상 이곳을 찾았다. 테이블이 불과 5개정도인 작은 식당이어서, 처음 보는 옆자리 손님들과 소주 한잔씩을 나누면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기를 5년이 지나갔다. 사장님 부부는 내가 회사에서 경험한 희로애락을 모두 알고 있었다. 취중천국의 벽에는 내가 회사 동료들과 같이 찍은 사진과 사인들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어느 것은 벌써 5년이 지나서 낡기까지 했다. 사진들을 들여다 볼 때마다, 기쁠 때나 힘들었을 때가 생각나곤 했다. 이렇게 이 식당은 나의 추억이 진하게 배어있는 곳이어서, 자주 찾았다. 

  그런데 내가 서울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이제 쉽게 찾아오기 힘든 식당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는 인생의 한 귀퉁이를 담아냈던 장소가 없어지고 만 것이다. 같이 소주 한잔씩을 기울이면서 맛있는 남도 음식을 해주시던 사장님 부부와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사장님 부부도 언젠가는 충청도나 강원도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단다. 번잡한 도시생활이 벅찬 나이가 되신 것이다. 나는 가능하면 강원도로 이사오라고 권했다. 앞으로 내가 남은 여생을 보내면서, 여사장님의 전라남도 음식 맛을 느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삶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 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웠다.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만났던 사람들과는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의 회사사람들과는 순식간에 연락이 끊어졌다. 공적인 업무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공적인 업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의 공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취중천국 사장님 부부와의 이별이 회사 동료들과의 헤어짐 보다는 더 가슴에 찐하게 다가왔다. 사적인 만남이기 때문인가? 어느 순간 다가온 이별이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겠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인연에 목매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인생에서 헤어짐은 언제나 새로운 만남으로 채워지곤 했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서 삶의 스토리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나의 성장하는 모습도 그려지게 될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매달려 사는 시간보다는 새로운 만남을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채워나가야 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취중천국 여사장님이 이것 저것을 바라바리 싸주었다. 맛있는 김치찌개를 한 솥 끓여 주었고, 아내가 좋아해서 자주 집으로 가져갔던 젓갈로 담은 양념장을 큰 그릇에 가득 담아주었다. 시골에 갈 때마다 이것 저것 몽땅 싸주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렇게 자주 얼굴 보기 어렵다는 아쉬움을 진하게 느끼면서, 사장님 부부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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