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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08. 2022

<농촌 체험하기 퇴고글> 감자 정식(定植)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일곱번째 글

  신반장의 아내가 감자 심는 도구의 몸통 안으로 씨 감자를 던져 넣었다. 씨 감자가 플라스틱 몸통 안에서 ‘주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굴러 내려 갔다. 도구를 잡고 있던 신반장이 밑동을 벌렸다가 닫아주면, 씨 감자가 흙 속으로 사라진다. 밑동 주변 이랑의 흙이 씨 감자를 덮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신반장 부부의 움직임을 따라서, ‘주르륵’, ‘딱’, ‘주르륵’, ‘딱’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역시 젊은 부부답게, 다른 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씨 감자를 심어 나갔다.

  “야, 감자 심는 알바 아주머니들만큼이나 잘 하네!”

  여기 저기서 다른 동료들이 감탄하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감자 정식하는 도구는 우산 모양으로 생겼다.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있는 넓은 입구 부분이 있고, 반대쪽은 뾰족한 형태여서 이랑의 땅속으로 잘 파고 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물론 땅을 파고드는 부분에도 작은 구멍이 있어서, 씨 감자가 땅속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예전에는 앉아서 일일이 손으로 심어야 했지만, 이 도구를 이용하면 서서 작업을 할 수 있어서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 도구의 손잡이를 포함한 뼈대부분만 스테인리스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서 가벼웠다. 장시간 반복적인 작업을 해도 몸에 무리가 적게 가도록 제작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만든 도구이고 값도 싸지만, 농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기구였다. 

  

  

  4월과 5월은 이곳 횡성 농가들이 제일 바쁜 시기이다. 거름을 주고, 로터리작업을 하고, 고랑을 만들고, 비닐 멀칭 작업을 하고, 제초제도 뿌리고, 씨나 묘목을 심고… 끝없이 일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일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코로나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얼굴을 보기 어렵다. 그나마 우리나라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부분 도시의 공장을 선호한단다. 급여도 많고, 주말에는 쉬고, 근무 환경도 좋기 때문이다. 이곳 산채마을에서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드물었다. 

  감자가 이곳의 주산물이어서, 대규모로 감자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았다. 외국인 근로자를 대신해서 알바 아주머니들이, 여기 저기 감자 밭에서 감자 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동료들은 알바 아주머니들의 감자 심는 속도를 보면서 놀라곤 했다. 하루에도 수천 평의 밭에 감자를 정식한다고 한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2기 동료들이 우리들의 공동농장에 감자를 정식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씨 감자 열일곱 포대를 트럭에 싣고, 공동 농장으로 갔다. 차로 오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공동 농장은 평지가 아닌 산 밑자락에 위치해 있어서, 약간 경사진 밭이었다. 

  공동 농장으로 사용할 밭은 네 군데로 나뉘어져 있었다. 감자 밭이 칠백평 정도 되었고, 고추를 심을 밭은 그것보다 작은 삼백평 크기였다. 고추밭 바로 옆에 삼사십평 정도 되는 작은 밭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땅콩을 심을 계획이다. 그리고 감자 밭에서 조금 더 산 중턱으로 올라가면, 비탈진 밭이 또 하나 있었다. 팔백평은 족히 되어 보였는데, 이곳에 단 호박과 고구마를 심는단다. 

  감자 밭에 씨 감자를 모두 옮겨놓은 후에, 대표님이 씨 감자 심는 법을 알려주었다. 두 명이 한 팀이 되어서 작업을 진행했다. 동료들은 네 개의 감자 심는 기구를 가지고 네 팀이 동시에 감자를 심고, 남은 두 명은 정식하는 팀들에게 씨 감자를 날라주었다.

  나는 신반장 부부가 빠른 속도로 씨 감자를 심어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씨 감자를 정식하는 기구를 처음 보았다. 이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내가 어려서 농촌에 살 때도 그런 기구를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하긴 내가 살았던 전라도는 감자를 재배하지 않고 주로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그런 기구를 사용한 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다.

  네 팀이 20분씩 교대로 작업하다 보니까, 두 시간도 안되어서 작업을 다 마무리할 수 있었다.


  씨 감자를 정식하는 작업에서도 사람들의 성격이 나타난다. 젊은 신반장 부부는 속도를 내는 데 주력한다. 젊어서 운동신경과 근력이 좋은 탓도 있지만, 빨리 작업을 마무리하고 쉬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반면 최선생님과 같이 꼼꼼한 분들은 차근차근 작업을 진행하였다. 밭이랑의 구멍 안에 집어넣은 씨 감자에, 흙이 충분히 덮였는 지를 하나 하나 확인하였다. 흙이 덜 덮이게 되면, 손으로 주변의 흙을 모아서 덮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까 작업 속도가 신반장 부부보다 느렸다.

  나는 동료들의 씨 감자가 떨어지면, 밭 가장자리에 놓여진 감자 자루를 가져다 주는 역할을 맡았다. 씨 감자가 부족한 지를 알기 위해서는, 동료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동료들을 관찰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면, 지루한 줄을 몰랐다. 더군다나 다른 동료들과 농담도 주고 받고, 음악도 들으면서 작업을 하면 그다지 힘든 줄을 모른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 하는 것이 훨씬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씨 감자 심는 도구와 같이 서서 일할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는, 몸도 덜 힘들었다. 내가 어릴 적에 농촌에서 살 때만 해도, 대부분의 농사일이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까 대부분의 농촌 사람들이 무릎이나 허리에 질병을 달고 살았다. 요즘은 서서 일할 수 있는 도구나 장비들이 개발되면서, 작업이 훨씬 수월해진 것 같다. 

  씨 감자를 심는 작업을 하면서, 농사 일을 재미있고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한 것 같다. 여럿이서 즐겁게, 그리고 허리와 무릎 활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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