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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0. 2022

<농촌 체험하기> 수확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 다섯번째 이야기

  “처음에는 꽈리고추를 너무 자주 따야 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일 효자종목이라고 생각하니까, 수확하는 것이 즐거워요.”

  “단호박이나 옥수수 수확을 해보니까, 꽈리고추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알겠더라고요. 별다른 병충해없이 잘 커준 꽈리고추에게 감사해야죠.”

  바로 옆 고랑에서 고추를 따고 있던 최선생님과 전장군님 형수님간의 대화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같은 의견이었다. 꽈리고추는 그 성장속도가 하도 빨라서,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수확해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추가 너무 커져서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삼백평이나 되는 큰 밭에 고추를 심어놓은 탓에, 한번 수확할 때마다 3~4시간은 꼬박 고추를 따야 했다. 그것도 10명이서. 한번에 4kg짜리로 평균 30~40박스를 수확했으니까, 그 양이 얼마나 많은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너무 자주 수확해줘야 하는 꽈리고추를 원망했었다. 너무 일이 많았던 것이다. 어떤 동료는 고추나무가 건강하지 않거나 가지가 너무 많아서 걸리적 거리면, 뽑아버리거나 가지를 잘라버리기도 했다. 그 동료가 지나간 자리에는 잘라진 가지들이 수북이 쌓이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동 밭의 고추는 너무나 잘 자라주었다. 이웃 농가들은 병충해 때문에 고추 농사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를 부러워했다. 나중에는 우리 동료들이 꽈리고추를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가 온 마을에 퍼져나가기도 했다.


  반면에 사백평 가까이 심었던 단호박과 땅콩호박은 실패작이었다. 우리가 비료를 제때 주지 못해서 그런지, 다들 크기가 너무 작았다. 특히 단호박은 장마 비에 썩어 문드러진 것들도 꽤 있었다. 

  8월말 어느 날 남자 동료들끼리 호박을 따서, 포대자루에 담았다. 호박이 가득 찬 포대자루를 호박 밭 아래쪽에 주차해놓은 트럭으로 옮겨 실었다. 심하게 경사진 밭이어서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힘들었다. 등산하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호박이 가득 들어있는 포대자루는 무거워서, 두 개 들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주로 젊은 신반장과 내가 수십 번을 오르내리면서, 무거운 포대자루를 트럭으로 옮겼다. 다른 남자동료들은 허리가 아파서, 무거운 것을 들기 어려웠다. 호박 수확을 한 다음 날에는 허벅지가 뻐근하게 땅기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이틀 정도 작업한 끝에 단 호박과 땅콩호박을 모두 수확할 수 있었다.

  수확한 호박을 가득 싣고, 트럭을 몰아 산채마을로 향했다. 여자동료들이 지하수가 나오는 수도 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박의 껍질에 묻은 흙이나 나뭇잎 등을 닦아내기 위해서이다. 여자동료들이 깨끗하게 닦아낸 호박을, 남자동료들이 산채마을 앞마당의 중앙무대 위에 옮겨서 펼쳐 놓았다. 

  하루 정도 지나서 다 마른 단 호박을 10kg 박스에 포장해서 출하를 해봤다. 경매 결과, 한 박스에 6천원밖에 안되었다. 꽈리고추가 4kg 한 박스에 최고 6만 1천원까지 나왔던 것과 비교해서, 형편없는 가격이었다. 몇 주 뒤에 대표님 밭에서 출하된 단 호박이 한 박스에 1만원이 넘었던 것과 비교해도 우리의 호박 농사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6개월 과정이 다 마무리된 뒤, 우리가 심었던 농작물들의 매출을 산출해보았다. 꽈리고추 1,500만원, 감자 6백만원, 옥수수 5백만원, 호박 2백만원, 고구마 1백만원… 반면 이들 작물을 심은 평수는 꽈리고추 3백평, 감자 7백평, 옥수수 1천평, 호박 4백평, 고구마 3백평이었다. 평당 매출을 보면, 꽈리고추가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만큼 꽈리고추가 우리의 매출을 올려주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다.

  우리가 심은 농작물마다 매출 규모는 달랐지만, 수확하는 동료들의 마음은 모두 같았다. 수확한 농산물을 출하할 때는 자식을 시집 보내는 마음이 들었다. 그만큼 동료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결실로 자란 농산물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상태의 농작물을 수확할 때는 그 기쁨이 배가되었다. 건강하게 자라준 것에 대한 감사이다. 하지만 호박과 같이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썩어버린 것들을 발견할 때는 마음이 아팠다.


  동료들은 꽈리고추 수확을 자주하다 보니까, 박스 포장을 할 때는 각자 담당하는 작업과정이 생기게 되었다. 신반장과 선미씨는 박스 포장작업을 담당하고, 나는 수확한 고추 포대들을 트럭으로 싣고 와서 내리고, 포장된 박스를 차에 싣는 역할을 주로 했다. 다른 동료들은 고추를 펼쳐서 말리고, 다 마른 고추를 박스에 담았다. 그날도 각자 맡은 작업을 진행하고 포장이 완료된 박스를 한 켠에 쌓아나갔다. 작업을 하면서 최선생님이 매번 하듯이, 그날 몇 박스가 나올 지에 대해 의견을 말했다. 

  “오늘은 45박스가 넘을 것 같은데. 지금까지 수확한 것 중에서 제일 많아요.”

  “오늘은 50박스 가까이 될 것 같아요. 벌써 40박스를 포장했는데도, 고추가 이렇게 많이 남아있잖아요.”

포장작업을 하던 신반장이 포장이 완료된 박스 숫자를 세어 보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날 우리는 6개월동안 꽈리고추를 수확한 것 중에서 가장 많은 50박스를 출하할 수 있었다. 고추 박스를 가득 실은 트럭을 운전하고 있던 나와 조수석에 앉아있던 신반장은, 들뜬 마음으로 농산물 유통회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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