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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3. 2022

<농촌 체험하기> 닭잡는 날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 여섯번째 이야기

  비가 오는 날이면 농촌은 농사 일을 멈출 수밖에 없다. 농부들이 일하기도 힘들 기 때문이다. 우리가 키우던 닭을 처음 잡던 날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주룩 주룩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나와 남자 동료들이 닭의 내장을 떼어내고 몸통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산채마을 바로 앞에 흐르는 냇물이 비로 인해 약간 불어나기는 했지만, 닭을 씻는 작업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닭을 잡아본 경험이 있는 최선생님이 내장을 떼어내면, 내가 받아서 여전히 붙어있는 작은 내장과 피를 깨끗이 씻었다. 씻어낸 닭 몸통을 신반장에게 주면, 신반장이 닭 다리를 분리해서 몸통과 다리를 따로 담았다. 


    5월초 동료들은 닭장을 만들고, 닭 36마리를 사다 놓았었다. 백봉, 청계, 오골계를 포함해서 일반 닭까지 다양한 품종들이었다. 이중 수탉은 7마리에 불과하였고, 나머지는 모두 암탉이었다. 우리는 매일 수십 개의 계란을 먹는 꿈을 꾸면서, 닭을 키웠다.

  닭을 키우자는 아이디어를 최선생님이 냈고, 마침 최선생님의 숙소가 닭장에서 가까웠다. 그래서 동료들은 최선생님을 ‘닭 부장님’으로 직책을 주면서, 닭을 키우는 책임을 맡게 했었다. 둔내 장날 시장에 가서 닭을 사온 것도 최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도록 닭들이 계란을 낳을 생각을 안했다. 8월 중순에야 겨우 몇 개씩 달걀을 맛볼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동료들 사이에서는 계란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는 대신, 닭을 잡아먹자는 의견이 비등해졌다. 더군다나 6개월 과정이 불과 2개월도 남지 않은 8월부터는 닭을 빨리 잡아먹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매일같이 나왔다. 어차피 6개월 과정이 끝나면, 닭을 키울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9월초 태풍 힌남노로 인해 며칠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농사 일을 못하게 된 우리는, 그 동안 키워온 닭 중에서 제법 자란 아홉 마리를 잡기로 했다. 어차피 쉬는 날이기 때문에, 회식을 하기로 했다. 그 동안 동료들이 닭을 잡아 먹자는 의견을 낼 때마다 반대를 해오던 최선생님도, 드디어 닭을 잡자는 의견에 찬성을 했다. 

  

  남자동료들이 닭을 잡아서 털을 벗기고 내장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기로 했고, 여자동료들은 준비된 닭을 삶아내기로 했다. 최선생님을 제외한 남자동료들은 닭을 잡아본 경험이 없어서, 최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닭을 잡기 시작했다. 나와 전장군님이 닭장 안에서 이리저리 도망가는 닭을 잡아서 최선생님과 교장선생님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면 두 사람이 닭을 기절시키고 나서, 고통없이 죽이는 과정을 진행하였다. 다들 처음 하는 일이라서 서툴렀다. 

  나는 이리 저리 도망가는 닭을 쫓아가기만 할 뿐, 어떻게 잡아야 하는 지도 몰랐다. 결국 동료 두세 명과 같이 닭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서, 닭의 날개 죽지를 낚아채야만 했다. 젊은 신반장은 닭을 고통 없이 죽이기는커녕, 죽이는 광경도 지켜보기 어려워했다. 

  소란스럽게 닭을 잡은 후에, 닭 몸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닭 털을 부드럽게 뽑기 위해서였다. 남자동료들은 비를 피해서 사랑채의 처마 밑에서 닭 털 뽑는 작업을 진행했다. 알몸이 된 닭을 들고, 산채마을 바로 앞 냇가로 가서 내장을 빼내고 몸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깨끗해진 닭을 펄펄 끓는 물에 담갔다. 미리 엄나무를 넣고 물을 끓여 놓았었다. 엄나무가 간 기능 개선이나 관절 강화 효과 등 여러 가지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닭 냄새를 제거해줘서 좋았다. 1시간 이상 닭이 삶아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우리들은 화로 옆에서 막걸리를 한잔씩 기울였다. 비가 쏟아지면서 나뭇가지나 지붕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 사이로, 닭을 삶는 물이 ‘보글 보글’하면서 끓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서로 화음이 잘 어우러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불멍’이 아니라 ‘비멍’, ‘물멍’인가! 

   그날 우리는 캄캄해진 밤 9시가 지나서야 헤어졌다. 일찍부터 시작한 탓에 거의 5시간 정도 회식이 이어졌다. 모두들 거나하게 취했다. 나도 모처럼 필름이 끊길 정도로 취했다. 다음 날 아침에 모두들 모여서, 전날 만들어놓은 닭죽으로 해장을 하기로 했다. 아침에 만난 동료들이 한결같이 나를 보고 웃으면서, ‘잘 잤냐’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전날 내 덕분에 재미있었다는 감사 인사를 한마디씩 했다. 

  내가 술이 취해서 전장군님과 러브 샷을 수도 없이 했고, 이런 저런 농담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 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주당 1호’로 등록이 되었다. 여자동료들이 회식에서 제일 술이 많이 취한 순서대로 ‘주당’이라는 명칭을 붙여준 것이다. 그날 남자 동료 4명이 ‘주당 1호’부터 ‘주당 4호’까지 만들어졌다. 내가 그렇게까지 취했다는 것은, 그만큼 동료들이 편안해진 것이다. 하긴 벌써 5개월가까이 같이 지낸 동료들이니까. 


  비오는 날 닭을 잡는 것은 고역이다. 처음 닭을 잡는 날도 닭을 잡고 깨끗이 씻어내는 동안, 동료들의 옷이 모두 젖었다. 아니 비에 빠져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몇몇 동료들은 비옷을 입고 있었지만, 장대비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옷이 젖은 채로 삶은 닭을 먹었지만,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면서 그 열기로 옷을 다 말린 것 같다. 아니 동료들과 만들어낸 수많은 웃음 속에서, 비에 젖은 내 몸을 의식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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