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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10. 2022

<농촌 체험하기> 한계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마흔번째 이야기

  “자기가 전부 다 할 수 있다고 해놓고, 손님들이 한참 오는 시간에 가버리면 어떻게 하죠?”

  여자 동료 한 명이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감자전 부쳐서 막걸리랑 같이 팔 수 있도록 설치해놓은 큰 천막 아래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다른 여자 동료와 같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속초의 딸 부부가 손녀를 봐달라고 부탁해서 갔단다.


  산채마을에서 처음으로 마을 축제를 개최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생들뿐 아니라 횡성군의 여러 마을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들고 와서, 같이 축제를 준비했다. 우리 교육생들은 2~3일 전부터 축제때 판매할 감자, 토마토, 꽈리고추를 비롯해서 다양한 농산물들을 수확했다. 그리고 감자전과 토마토 주스 등도 같이 판매할 준비를 했다. 다른 마을에서는 목공예 체험, 천연 모기 퇴치제, 양말목 공예품 등 다양한 아이템을 준비해와서, 매대를 꾸몄다. 

   4일전인 7월 26일날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서 중복잔치를 한데 이어, 산채마을 축제도 30일에 개최되었다. 우리 동료들은 일주일 동안 두 개의 큰 이벤트를 준비해야만 했다. 그 전주부터 이 이벤트들을 준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두 개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아침 일찍부터 모여서 준비를 했지만, 저녁에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동료들의 얼굴에서는 피로가 쌓여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축제날에는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7월말 휴가철인데다가 인터넷을 통해 산채마을 축제(삽교마켓)에 대한 홍보를 많이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금년에 유난히 가격이 뛰어오른 농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기대감도,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데 한 몫 한 것 같다. 휴가철이어서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온 부부 등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넓은 산채마을의 잔디마당에서 뛰어 놀면서, 우리가 준비한 다양한 체험행사를 즐겼다. 

  손님이 많으면, 이것을 준비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할 일이 늘어난다. 동료들은 손님을 맞아들이는 데 정신이 없었다. 팔려고 준비한 재료들이 너무 빨리 떨어지는 바람에, 다음 손님들을 위해서 감자를 갈아서 전을 부칠 준비를 하고, 토마토를 갈아서 주스 만들 준비를 하고. 

  여자 동료 2명이 진행하기로 했던 감자전과 막걸리 판매 부스에서, 빠져나간 한 명의 여자 동료대신에 신반장이 함께 하기로 했다. 하지만 두 사람만 가지고는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최선생님까지 감자를 가는 작업에 동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정신 없이 감자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판매하는 작업을 하는 동안, 판매대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했다. 빠져나간 한 사람의 여자 동료 때문인가 보다. 그만큼 연이어서 두 번의 큰 이벤트를 치루다 보니까, 다른 동료를 이해하고 보듬어주기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이제 곧 손님들이 올 텐데, 방울 토마토를 먼저 따놓아야 되는 것 아닌가요?”

  “손님들이 오면 그때 방울 토마토를 수확해서 주면 되지요.”

  축제 이튿날 아침에 나와 교장선생님 사이에 오간 대화였다. 농산물 판매대를 담당하고 있던 우리 두 사람은 첫째 날 거의 다 팔린 방울 토마토를, 이튿날 아침 일찍 수확해서 준비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아침 일찍 펜션에 묵었던 손님이 감자 100킬로그램을 주문해서, 교장선생님은 그것을 포장하느라 분주했다. 감자 포장 때문에 방울 토마토를 수확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약간 화가 났다. 

  ‘방울 토마토가 첫째 날에도 제일 인기 있었기 때문에, 둘째 날도 수요가 많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미리 준비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토마토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로 향했다. 그리고는 거의 두시간 동안 방울 토마토와 완숙 토마토를 땄다. 내가 혼자 토마토 수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동료들이 알고 있을 텐데도, 아무도 와서 도와주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도 남을 도와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피로가 쌓여있던 나도 역시 동료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크지 않았다. 

    이틀에 걸친 마을 축제가 막을 내리고, 대표님과 동료들은 가볍게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 모두들 피로에 젖어 있어서 그런지,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어했다. 아니 축제를 열면서 동료들 마음에 자리잡았던 다른 동료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기에, 빨리 헤어지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파티는 한 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축제의 후유증은 그 다음 주에도 이어졌다. 서울 집에 갔던 최선생님 부부가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30대의 젊은 신반장 부부도 감기 몸살에 걸렸다. 연이어서 전장군님 형수님과 교장선생님 형수님, 그리고 선미씨도 몸이 아프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몸이 온전한 사람은 교장선생님, 전장군님, 나 이렇게 세 명 밖인 셈이다.

  두 번의 큰 이벤트를 치르면서,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동료들이 나가 떨어졌고 때로는 신경질도 냈다.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조직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우리 교육생 10명은 이제 만난 지 겨우 3달이 지났고, 5명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반절이상이 60대이다. 그만큼 팀웤이 단단해지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두 번의 큰 이벤트를 연달아 치르기에는 육체적으로 힘들어할 수 있는 여성들과 60대 동료들이 많았다. 그런 점을 간과한 무리한 스케줄이었다.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면 팀웤도 좋아지고 조직의 내성도 생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이든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각 개인의 역량에다가, 구성원들간의 시너지를 합하면 조직 역량의 총합이 나올 것이다. 개인간 역량은 단기간 내에 커지기 어려운 요소이고, 시너지의 성장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된 우리 동료들간의 시너지도 기대할 만큼 성장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동료들간의 팀웤의 한계가 드러난 두 번의 큰 이벤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관점으로는 서로의 한계를 알게 됨으로써, 향후에는 팀이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스케줄로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팀이나 조직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면, 오히려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팀이나 조직의 힘을 서서히 키워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두 번의 축제는 우리 동료들에게 오히려 좋은 보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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