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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6. 2022

<농촌 체험하기> 중복잔치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서른 아홉번째 이야기

  삼계탕을 맛있게 먹은 마을 주민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몰려드는 손님들이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하자, 동료들은 풀솜대 밖의 나무 데크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를 해주었다. 주민들은 서로들 오랜만에 만난 듯, 이야기 꽃이 끊이질 않았다. 

  풀솜대가 주민들로 가득 찼을 때, 교장선생님을 필두로 우리 동료들이 무대에 나란히 서서 주민들에게 인사를 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이 시작된 이후, 우리를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다. 삼계탕을 맛있게 먹고 난 후여서 그런지, 음식을 준비한 우리들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7월 26일 중복날, 교육생들은 마을 주민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였다. 산채마을에는 110가구 정도가 사는데, 중복 날에 80명이 넘게 오셨다. 그렇게 많은 주민들이 모이는 것은 참 드문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산채마을의 여러 건물들 중에서 풀솜대가 유일하였다. 풀솜대 안쪽에는 넓은 나무 마루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대규모 인원의 식사나 이벤트를 진행할 때 유용하였다.

  중복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서 동료들은 전날부터 풀솜대 청소부터 시작해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테이블과 의자들을 닦고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남자동료들은 큰 화덕 두 개에 불을 피우고는, 닭 80마리를 삶았다. 옆에서 여자동료들은 김치를 담고, 떡과 과일을 준비했다. 물론 맥주, 소주, 막걸리 등 주민들이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술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가져다 놓았다.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100여개의 의자와 테이블을 닦고 말리고 배치하는 일이며, 90인분의 김치를 만드는 일 등등…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에 작업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간단한 막걸리 파티 시간이 있어서, 더 좋았다. 함께한다는 것의 즐거움에 너무 취해 있어서, 내년부터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조차 싫었다. 혼자 일을 한다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과정일 것 같았다.


   중복 날 아침, 잔치 준비를 주관하고 있는 팀장님 주재로 미팅이 열렸다. 서로의 R&R을 명확히 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이 정해졌고, 나와 젊은 신반장은 손님들 테이블에 미리 각종 술과 음료수, 그리고 김치와 떡 등을 가져다 배치하는 작업을 맡았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오시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에, 10시 30분까지는 배치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서 풀솜대 안과 밖의 데크에 놓인 테이블 위에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되었다. 그러자 노인회장, 부녀회장을 비롯해서 마을의 리더들이 먼저 도착했다. 뭔가 도울 일이 있는 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11시가 되면서 마을 분들이 한명 두명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중복잔치가 시작되었다. 

  손님들로 풀솜대가 가득 차서 삼계탕을 드시는 시간이, 오히려 나와 동료들에게는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별다른 서빙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동료들은 잠깐 풀솜대 밖의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막걸리로 마른 목을 축였다. 우리는 아침 8시부터 한시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막걸리를 들이키던 대표님이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금년에 처음 본 사람들이 많이 왔네요. 주로 귀촌하신 분들은 얼굴 뵙기가 어려워요. 농사짓는 사람들과 생활리듬이 달라서요.”

  그러면서 몇몇 마을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까 안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분이 있는데, 유명 건설회사 사장님을 지내셨지요. 그런데 처음마을로 이사 왔을 때 이런 마을 모임이 있으면, 꼭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곤 해서, 다른 사람들이 곤혹스러워 했죠.”

  “바깥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분은 마을 회관 옆집에서 살고 있어요. 이분은 걸핏하면 경찰서나 군청, 면사무소에 민원을 넣어서, 마을 사람들이 다 피하고 있지요.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바로 신고를 하는 거예요.” 


  중복잔치에 사람만 모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과 함께 그 사람의 흔적이 같이 따라온 것이다. 그날 대표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마을에서도 기피인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외지에서 들어온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외지에서 이사온 사람들을 터부시 하는 모양이다.

  사람은 어디에 머물든,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모여서 그 사람의 삶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스토리는 마을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농촌은 특히 공동체 삶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이사온 사람들 중에서는, 간혹 도시의 경쟁과 자기중심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농촌의 협력과 배려를 통한 공동체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도시에서 지냈던 부와 권력은 다 내려놓고,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삶의 환경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갔고, 산채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과 마을 지도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교육생들과 같이 막걸리 한잔씩을 하면서, 게이트 볼도 즐겼다. 우리들은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서, 그냥 농사짓는 이야기나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농촌에서의 삶에 젖어 드는 시간이 되었다. 하루 종일 잔치 준비하느라 피곤한 동료들의 심정을 아는 지, 어느 덧 마을 주민들과 둘러앉은 테이블에 석양이 비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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