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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Nov 02. 2022

<농촌 체험하기> 세대 차이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서른 여덟번째 이야기

  “요즘 꽈리고추를 딸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솟아나요~ 처음에는 자주 따야 해서 귀찮기만 하더니.”

  “이것이 우리의 효자 종목인데, 감사해야죠!”

  고추를 수확하면서 나눈, 최선생님과 전장군님 형수님 사이의 대화 내용이다. 꽈리고추를 주 2~3회 수확을 해야 하고, 한번 수확할 때마다 동료 10명이서 3~4시간 정도를 작업해야 했다. 4킬로그램 단위로 30박스 전후를 수확해야 했으니까, 그만큼 번거롭고 고된 작업이었다.

  4킬로그램 한 박스에 1만 5천원 전후에서 형성되던 경매가격이, 어느 날 6만 1천원까지 올라갔다. 그러면서 힘들게만 느껴지던 동료들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30박스 수확하면, 최고 180만원까지도 매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동료들의 발걸음이 저절로 고추 밭으로 향하곤 했다. 


  꽈리고추가 왕성하게 자라는 7, 8월달은 장마철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꽈리고추 따기가 힘들다. 비에 옷이 젖는 것뿐 아니라, 땅도 질어서 엉덩이 방석에 앉아서 작업하더라도 옷이 금방 더럽혀지곤 했다. 더군다나 고추를 따낼 때마다, 비를 머금고 있던 고추나무가 비를 우리 얼굴과 몸에 흩뿌리기까지 했다.    

  “오늘은 11시까지만 따고 내려가시죠.”

  8월초 어느 날 비가 잠깐 그친 사이에 올라와서, 고추를 따고 있는 동료들에게 젊은 신반장이 소리쳤다. 9시쯤에서야 따기 시작했으니까, 11시는 고사하고 12시가 되어도 다 따내지 못할 것이 뻔했다. 그런데도 신반장은 11시에 작업을 끝내자고 한다.

  “11시면 너무 짧지 않아? 너무 커버린 고추들은 맛이 없으니까, 가능하면 더 크기 전에 다 따내야 하지 않을까?”

  옆에서 최선생님이 작업시간을 늘리더라도 다 따고 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자 신반장이 웃으면서 대답을 했다. 

 “수확을 즐기면서 할 것인가? 힘들지만 수확하는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하하하” 

 젊은 신반장다운 이의 제기였다. 즐겁게 사는 삶이 제일 행복한 것이기에, 농사도 즐겁게 해야 지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일반적인 농사꾼들이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이다. 각종 농작물을 심어놓고서 제때 수확하는 것이, 농사꾼의 당연한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거면, 왜 농사를 짓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것도 세대차이인가? 아니면 초짜 농사꾼의 섣부른 호기인가?


  우리는 이날 11시 30분까지 작업을 하고 마무리했다. 미처 따 내지 못한 고추들이 있었지만, 다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더 이상 작업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날 30대의 신반장과 60대의 최선생님 사이의 꽈리고추 수확에 대한 의견 차이가, 엉뚱한 사건으로 튀는 일이 며칠 뒤에 발생했다. 

  그 날도 아침 7시부터 꽈리고추 수확을 하기로 했다. 때마침 잠잠하던 하늘이 심술을 부리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꽈리고추를 따야만 하는데 딸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들 5분 대기 조가 되기로 했다. 나도 할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와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10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전장군님 형수님이 그날 5시에 횡성읍에서 하는 연극을 보러 가자고 카톡방에 올렸다. 더 이상 기다려봤자,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집에서 다른 일도 못하고 기다리던 나는 좀 황당했다. 비가 그치면 고추를 수확하자고 해서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극이라니. 결국 이날 연극은 단원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려서 취소되었다. 하지만 30대 젊은 신반장과 60대 최선생님사이의 농사 철학의 차이때문에, 우리 동료들이 작업 방향에 대해 혼선을 일으킨 것이다. 


  나도 여전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남은 인생에서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얼마만한 에너지를 쏟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행복한 수준으로 농사짓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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