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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2. 2023

<한옥 대목반>"38기!" "안전! 안전! 안전!"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다섯번째 이야기

  나와 몇몇 동료들은 여러 부자재들 중에서 기둥으로 쓸 것을 꺼내는 작업을 했다. 2개월동안 치목(治木)을 해왔기 때문에, 많은 양의 부자재들이 실내 실습장 한 켠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기둥으로 쓸 부자재는 맨 아래쪽에 놓여 있었다. 할 수 없이 위쪽에 쌓인 서까래, 장혀 등을 먼저 내려야만 했다. 부자재들의 무게때문에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서너 개의 서까래를 내린 뒤에, 장혀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장혀 바로 밑에 놓여있던 4각형 모양의 보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위쪽에 있던 부자재들을 내리는 과정에서, 보의 위치가 불안정하게 바뀐 모양이다. 

  그 순간 “아얏!”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작업하고 있던 용기의 오른쪽 발등 위로 보가 굴러 떨어진 것이다. 보는 무거운 데다가 사각형의 각진 모서리가 있었다. 충격이 컷을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서 보를 들어올려서, 용기의 발을 빼냈다.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는 용기를 한쪽에 앉히고는 발의 상태를 살폈다. 벌써 발이 붓기 시작했고, 용기는 아프다고 하면서 발을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용기가 부상을 당했던 때는 2021년 12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아침 1교시 시작 종소리와 함께, 동료들은 여느 때와 같이 실내 실습장에 둥글게 둘러섰다. 매일 진행하는 체조를 하기 위해서이다. 체육부장이던 용기의 구령에 맞춰서, 상체운동부터 시작해서 하체운동까지 마무리했다. 운동이 끝나고서 모두들 안전 구호를 외쳤다. 다치기 쉬운 작업환경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38기” “안전! 안전! 안전!” 

  구호가 끝나고 나서, 선생님이 그날 작업할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동안 치목(治木) 작업을 부지런히 진행해서, 한옥 집을 지을 부자재들이 어느 정도 준비되었다. 집을 지을 때 필요한 순서대로 부자재를 꺼내서 가공을 해야 하는 단계였다. 그날은 기둥을 꺼내서 가공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조립하는 것이 기둥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이야기 말미에 교육생들을 칭찬해 주었다. 

  “입학한지 두 달이 되었는데 부상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서 고마워요. 다른 기수들은 이때쯤 되면 한 두명씩 부상자가 나와서 애를 태워야 했지요.”

  평상시 칭찬에 인색한 편인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우리들은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 동료들 중 첫번째 부상자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대로 발을 딛지 못하는 용기를, 행정실장님의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한참이 지나도록 진단결과가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들은 작업하는 내내 걱정만 할 수밖에 없었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오른쪽 무릎 아래부분에 석고 붕대를 감은 용기를 싣고, 행정실장님의 차가 도착했다. 양쪽에 목발을 짚고 차에서 내리는 용기를, 동료들이 부축하여서 실내 실습장으로 들어왔다.

  “한달정도 지나면 깁스를 풀 수 있을 거래요.”

  웃으면서 진단결과를 전해주는 용기를 동료들이 위로해주었다. 그 뒤 용기는 실습을 직접 진행하지 못하고, 수업에 참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기술을 몸에 익힐 수 없게 된 것이다. 동료들과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면서, 수업에 참관하는 용기를 모두들 안쓰러워했다. 

  용기는 한옥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큰 일을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2020년에 어머니, 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셨고, 본인도 뇌출혈로 쓰러져 몇 달 동안 병상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영업활동을 하면서 중국 파트너들과 술을 많이 마셔야만 했단다. 그런데 부모님이 몇 달 간격으로 돌아가시면서,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본인마저 쓰러지면서 몸에 마비가 왔다.

  그냥 쓰러져만 있기에는 용기가 젊었다. 재활훈련으로 몸이 차츰 나아져서, 완쾌되기에 이르렀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여서, 재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퇴원한 뒤에는 살고 있던 동네의 주짓수와 특공무술을 가르치는 체육관에 등록해서,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몸이 좋아지면서, 자신의 꿈 중에 하나인 한옥집을 짓기 위해서 한옥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깁스를 하고 2주정도 지나면서, 다리의 통증이 줄어들었다. 용기는 빨리 낫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목발을 짚고 학교 주변 마을을 산책하였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한달이면 깁스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상처부위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용기에게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단체 수업에 참가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공문이 한옥학교에 내려왔다. 우리 10명의 동료 중에서 백신 미접종자는 용기가 유일하였다. 고혈압, 고지혈증에 당뇨까지 있고 뇌출혈로 쓰러졌었던 용기는,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이 두려워서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것이다. 용기는 행정실장뿐 아니라 교장선생님과도 면담을 해서, 백신의 부작용 때문에 접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용기를 치료했던 담당의사에게 진단서를 떼어서 보건소에 제출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에서 AIDS와 같은 몇몇 예외적인 질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접종을 해야 한다는 대답만을 들어야 했다. 용기는 예외적인 사항에 해당하지 않았다. 

  실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용기는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 이 기회에 학교를 그만둬야 할까?’ ‘백신 부작용이 생기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내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데, 백신을 맞아야 하나?’ 그렇게 여러 날을 고민하던 용기는 마침내 백신을 맞기로 결심했다. 한옥집을 짓고자 했던 본인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옆 소목반에도 백신 미접종자가 있었는데,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행히 백신접종으로 인한 후유증이 별로 없었다. 여전히 깁스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발을 짚고 수업에 들어왔다. 실외 실습장에 한옥집이 다 지어질 때까지 실습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작업과정을 눈으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 

  용기는 대패질이나 끌질 등 가벼운 작업에는 참여하였다. 그럴 때면 동료들이 용기가 쉽게 작업할 수 있도록 목재를 고정시켜 주기도 하고, 앉아서 작업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힘들지만 목발을 짚고서라도 수업에 들어오겠다는 용기의 열정에,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수업 분위기가 진지 해졌다. 실습을 하지 못하는 용기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동료들의 정성이, 깊은 우정을 만들어 나갔다. 비록 6개월동안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동료들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우리들 마음에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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