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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2. 2023

<한옥 대목반> 한옥 짓기의 시작, 비계(飛階) 설치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열여섯번째 이야기

  선생님과 용식이가 비계를 만들기 위해 수직과 수평 쇠기둥을 설치한다.

  “용식아, 내가 기둥을 잡고 있을 테니까, 연결쇠로 고정시켜 줄래?”

  선생님이 수직과 수평 기둥이 만나는 지점을 정한 다음, 드릴을 가지고 있던 용식이에게 연결쇠를 조립해달라고 했다. 공사현장에서 알바 경험이 있던 용식이는, 능숙하게 드릴로 연결쇠를 고정시켰다. 첫번째 기둥의 조립 작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다른 기둥들을 조립해보라고 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선생님과 용식이가 조립하는 작업을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던 몇몇 동료들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2021년 11월말 주춧돌을 제자리에 설치하고 난 뒤에는, 며칠동안 야외실습장에서 한옥집을 짓는 실습을 진행하지 못했다. 겨울비가 오면서 추워진 날씨 때문이었다. 드디어 12월초 어느 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작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비계(飛階, 아시바)를 설치하는 작업을 진행할 차례였다. 비계는 집을 지을 때, 자재 운반이나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공간으로 쓰일 임시 가설물이다. 

   쇠 기둥과 쇠 발판을 이용해서, 지어질 집의 바깥쪽을 둘러치듯이 만들어야 한다. 특히 비계의 쇠 기둥은 주춧돌로부터 삼십 센티미터 이상 떨어뜨려서 설치해야 한다. 주춧돌위로 기둥을 올릴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계의 뼈대를 이루는 쇠 기둥들은 연결쇠로 조립해 나가면 된다. 

   선생님이 직접 첫번째 수직 기둥과 수평 기둥을 조립하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때 웬일로 용식이가 드릴을 잡고 앞장섰다. 평상시에는 실습작업에 소극적이었던 용식이었다. 첫번째 기둥 조립작업이 끝나자, 정목이와 일현이가 두번째 수직, 수평 기둥을 조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용식이와 다르게, 실습할 때마다 제일 먼저 나서서 작업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정목이가 잡고 있던 기둥에, 일현이가 드릴로 연결쇠를 끼웠다. 수직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선으로 수직 기둥을 받쳐주는 기둥을 추가로 세워 주기까지 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겨우 비계의 1층 뼈대 만드는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지어질 집의 가로 세로 크기에 맞게 수직 및 수평 쇠기둥을 모두 설치한 것이다. 이제 비계의 2층을 설치해야 한다. 우리가 지을 집의 지붕 작업은 2층 높이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직 쇠기둥의 2미터 정도 높이에 2층 뼈대를 조립해 나갔다. 

  “유명아, 호림이랑 같이 발판 좀 들고 와라. 젊은 놈들이 힘 좀 써야지, 빈둥빈둥 놀고 있냐!” 

  한쪽에서 멍하니 다른 사람 작업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유명이와 호림이에게, 일현이가 소리를 질렀다. 유명이와 호림이는 30대 중반으로 10명의 동료들 중에서 제일 젊은 친구들이었다. 덩치가 커서 힘도 좋았다. 하지만 실습작업에는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일현이나 정목이같이 50대 중반의 나이 많은 친구들이 적극적이었다.

  일현이의 호통소리에, 유명이와 호림이가 웃으면서 발판을 날라왔다. 2미터 높이에 설치된 수평과 수직 쇠기둥사이에 발판을 끼워 넣었다. 2층 높이에 올라가서 작업하고 있던 정목이가, 발판 끝 부분에 있는 연결쇠를 수평 쇠기둥에 고정시켰다. 


  “형님들이 알아서 다 하니까, 우리들이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 

  호림이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일현이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호림이는 수년동안 실내 인테리어작업을 하던 친구였다.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동안 목조주택 짓는 작업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다른 영역인 한옥 짓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들어온 친구였다. 목조주택 짓는 작업을 많이 한 탓에, 실습 작업도 빠르게 익혔다. 하지만 그다지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한옥짓는 작업이 그동안 일하던 것과 비슷해서 그런지, 지겹게 느낀 모양이었다.

  유명이는 제주도에서 연극을 했던 친구였다. 연극이라는 업에 자신의 미래를 걸어야 할 지 여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제주에 한옥집을 짓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옥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단다. 예술을 하던 친구여서 그런지 감수성이 풍부하였다. 매일 쉼없이 작업을 해서, 정해진 기간내에 집을 지어야 하는 한옥 목수와는 잘 맞지 않았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작업에 적합한 스타일이었다.

  10명이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한옥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다. 한옥 목수를 제2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친구가 있는 가 하면, 한옥집에 대한 관심 때문에 들어온 친구도 있었다. 그동안 하고 있던 일이 지겨워서 들어온 친구도 있었다. 이중 한옥 목수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친구들은 실습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단지 한옥 짓는 법과 한옥 목수일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온 친구들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요즘 젊은 친구들은 힘든 일을 하기 싫어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도 한 몫 한 것 같았다. 일에 대한 태도뿐 아니라 세대차이까지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비계 만드는 작업은 며칠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우리의 솜씨가 서툰 탓도 있었지만, 궂은 날씨로 인해서 야외에서 긴 시간동안 작업하기 어려웠다. 어떤 날은 주변 산들의 나무에 눈꽃이 활짝 필 정도로 추웠다. 또 어떤 날은 한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데, 비가 오면서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 작업이 중단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겨울에는 보통 한옥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비계 설치가 마무리됨으로써, 본격적인 한옥짓는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기둥을 세우고, 보를 설치하고, 서까래를 조립하고... 부자재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동안 치목과 가공작업을 마치고 실내 실습장에 쌓여 있던 부자재들이, 하나씩 제 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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