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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5.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 태 풍

- 귀농 첫해에 겪은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매년 여름철이면 우리나라에 오던 태풍이 2023년 7월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7월말에 발생한 태풍 카눈은 일본 오키나와를 거쳐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그 세력이 다소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대 풍속 23m/s의 강풍과 최고 368mm(속초시)의 비를 쏟아냈다. 

  회사다닐 때의 태풍은 단지 출퇴근 시간의 번거로움만을 느끼게 하던 존재였다. 농사를 짓게 되면서, 태풍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 자연환경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태풍이 오기전에 농자재가 날아가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농작물이 넘어지지 않게 해줘야 한다. 특히 태풍이 동반하는 큰 비는 농작물에 홍수 피해뿐 아니라 각종 병충해를 가져온다. 태풍이 오기 전후에 병충해 예방작업이 필수적인 이유이다. 

  태풍 카눈이 오기 전에 미리 큰 비가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노지 밭의 수로 정비작업을 진행했다. 고추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주대에 노끈을 매주는 작업도 추가로 해주었다. 태풍이 오기 직전에 병충해 예방제를 살포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하던 날, 나는 지인들에게 보낼 토마토 수확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왔지만, 하우스 안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후두둑 후두둑” 

  하우스 천장 비닐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강한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천장 비닐을 때리는 요란한 소리에 겁을 먹을 정도였다. 일을 할 때면 틀어 놓는 라디오 음악소리를 제일 크게 해야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수확작업을 시작한 지 한시간쯤 지났을까? 태풍 카눈은 빗줄기만으로 부족했는지 강한 바람까지 불어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우스가 약간 흔들리는 정도였는데, 점차 하우스의 지붕을 날려버릴 듯한 기세로 바람이 강하게 부딪쳐왔다. 이때 카톡의 알람이 울렸다. 

  “강원도 지역에 태풍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으니까, 가급적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김대표님이 우리 아농회 카톡방에 올린 공지였다. 다른 태풍이 왔을 때도 이런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 만큼 비바람이 심한 날이었다. 그래도 나는 다음 날 지인들에게 보내줄 토마토를 수확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설마 비닐하우스가 무너지지는 않겠지.’하는 생각이었다.

  손은 토마토에 가 있었지만, 태풍의 비바람 소리로 인해서 수확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전날 저녁에 있었던 일이 자꾸 떠올랐다. 아내와 제 2의 삶을 함께 살아나갈 방향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를 했었다.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주제였기에, 중간에 이야기가 중단되고 말았다. 결론없이 토의가 끝나서일까? 몰아 치는 태풍소리로 인해서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애초 귀촌을 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더해서 농사까지 짓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나이를 감안할 때 몇 년이나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아내는 내가 작은 규모일지라도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농사에 대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밭 구매계약은 이미 해놓은 상태였고, 주택 구입을 위해서 집을 보러 다니던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귀농에 대한 아내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설득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제2의 삶을 계획하면서 부부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젊었을 때와 제2의 삶을 살 때의 일상적인 삶의 형태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테두리안에서 살던 직장인들은 더욱 그렇다. 제2의 삶은 회사생활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일 가능성이 높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진입비용이 클 뿐 아니라 적응기간도 필요하다. 은퇴를 한 이후 규칙적인 수입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이것 저것 고려해야할 요소가 많은 인생 계획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수도권이라는 대도시에 살다가 강원도의 산골로 내려가는 것이라서 더욱 어려운 상황이었다. 도시생활의 편리성을 농촌에서는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만나왔던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것도 큰 어려움이다. 하지만 부부사이의 의견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은퇴이후에도 가장 든든한 동반자 관계가 바로 부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에 살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려면, 부부사이에 같이 준비해야할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첫번째 이랑의 중간 정도까지 수확작업을 진행했을까?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서 하우스 전체가 휘청거렸다. 하우스가 날아갈 것 같았다. 문득 ‘하우스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서울로 출발했던 아내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원주 아파트에 물건을 두고 간 것이 있어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태풍이 이렇게 불어대는 데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태풍이 강해지면서 겁도 났지만, 아내에 대한 걱정으로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작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에 도착해보니까, 아내는 벌써 물건을 찾아서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아내가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빌면서도, 어제 아내와 토론했던 주제가 떠올렸다. 그러면서 지난 1~2년동안 고민해왔던 나의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보았다. 그동안 스스로에게 물어봤던 질문과 대답들을 반추해보면서, 나의 결정이 올바른 궤적을 밟아온 것인지 알고 싶었다. 

  ‘제2의 삶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좋을까?’

  ‘강원도에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러는 사이에 아내가 서울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태풍 카눈은 전국적으로 많은 비를 뿌리면서 사상자까지 발생시켰다. 새만금에서 열리던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도 조기에 철수를 해야만 했다. 태풍은 전국적으로 많은 피해를 주고 물러갔지만, 제2의 삶에 대한 나의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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