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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2. 2024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벌들의 이주, 분봉(分蜂)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스물 두번째 글

  산채마을 사랑채 앞 마당에는 동료들의 함성 소리와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동료들은 여기 저기서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마치 유명 연예인이 방문한 것 같았다. 카메라들은 사랑채 마당 앞에 있는 제법 큰 나무의 꼭대기를 향하고 있었다. 나무를 둘러싸고 많은 벌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니고 있어서, 멀찍이 떨어져서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나뭇가지 사이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대표님이 보였다. 손에 벌집이 들려 있었다. 얼굴에는 그물망을 덮어쓰고 있었고, 손에 든 벌집 주위로는 많은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벌들은 벌집을 따라서, 산채마을 뒷산 초입으로 이사를 했다. 산채마을 뒤쪽에는 천 평이 넘는 메밀과 유채꽃 밭이 자리잡고 있었다. 꽃들이 수정하기 위해 벌들이 필요해서, 새로이 그곳으로 벌집을 분봉한 것이다. 

  분봉하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던 우리들에게, 대표님이 이 작업을 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사랑채 앞쪽 벽에 벌통이 설치되어 있는데, 어느 날 다른 여왕벌이 생기면서 자연 분봉을 시작했지. 일벌들이 근처에 분봉하기 좋은 장소를 찾느라, 분주하게 날아다니더라구.”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서, ‘분봉을 준비하는구나.’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근처 나무 위에 놓여있던 빈 벌통으로, 일부 벌들이 여왕벌과 함께 이사를 했다. 일부러 분봉하기 좋게 대표님이 미리 설치해 놓았던 벌통이었다. 이날은 유채꽃 밭 옆으로 새롭게 분봉한 벌통을 옮겨준 것이다.


  분봉이란 한통의 벌을 두통 이상으로 나누는 것이다. 벌을 키우는 사람이 인위적으로 분봉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벌이 넘쳐나게 되면 자연 분봉을 하기도 한다. 자연 분봉을 하기 위해서 일벌들은 분봉 계획을 세운 뒤, 수벌들을 키운다. 그 다음에 새로운 여왕벌 2를 키우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터전을 열심히 알아보고 다닌다고 한다. 

  이 과정이 완료되면 기존의 여왕벌 1이 산란을 못하도록 로얄제리 공급을 중단하고, 잘 날아다닐 수 있도록 다이어트를 시킨다. 그리고 여왕벌 1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하게 된다. 여왕벌 2가 잘 적응하도록 배려해서 기존의 집에 살도록 하고, 여왕벌 1을 새로운 집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분봉할 때는 갓 태어난 꿀벌부터 나이가 많은 꿀벌, 젊은 꿀벌, 그리고 수벌 등을 각각 비슷한 비율로 나누어 이사한다고 한다. 꿀벌의 기존 세계와 새로운 세계가 모두 생존할 확률을 높이는 행위로 보인다. 

  벌들이 분봉하는 과정은 흡사 인간 사회가 역사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인간 사회보다 훨씬 평화롭고 질서정연하게 확장하고 있었다. 벌들은 단순하지만 공동체적인 삶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드는 평화로운 확장방식이다.  

  반면 인간은 훨씬 다양한 동기에서 복잡한 방법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지배자의 개인적인 야욕이나 종교의 확장, 또는 경제적인 수탈 등등… 정복자의 동기가 충족될 때까지, 정치력 또는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동원한 물리적인 방법을 쓰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집단을 지배하려고 한다. 어떠한 목적이든 침략당한 국가의 수많은 국민들은 죽거나 다치고, 때로는 다른 나라에 팔려 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가 복잡 다단한 모양이다. 그 밑바탕에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깔려 있다. 벌들에게는 생존만이 중요하다면, 인간은 생존이외에 복잡한 욕심을 가진 탓이다. 단순한 확장의 규칙을 따라서 평화롭게 분봉해 나가는 벌들이,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인간사회의 확장 모습보다 지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데서 나오는 지혜일 것이다. 

  벌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지혜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벌들의 종류별, 그리고 연령대에 맞춰 비슷한 비율로 분봉을 함으로써, 균형잡힌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다양한 유형의 벌들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다할 때, 그 공동체가 발전한다는 원리를 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도 어린이부터 젊은이, 노인들의 비율이 균형있게 이루어질 때, 그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이치와 일맥상통하다. OECD 최하위의 출생률로 고민이 깊은 우리나라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얼마 전에도 대표님이 분봉을 해서, 같은 장소인 유채꽃밭 옆에 집을 만들어 줬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벌들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분봉에 실패한 것이다. 대표님은 이번에는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벌들이 새로운 집에 잘 들어가도록 유도해주었다. 

  유채꽃밭 옆으로 이주한 꿀벌들은 따스한 햇살아래 평화롭게 유채꽃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새로운 집에서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일벌들이 꽃밭에서 가져온 맛있는 꽃과 꽃가루로 벌집을 채우고 있었다. 여왕벌은 로얄제리를 먹고 수벌들과 함께 산란활동에 들어갔을 것이다. 평화롭게 자신들의 집을, 그리고 자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서 자연의 진리를 하나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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