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해에 겪은 마흔번째 이야기
드디어 2년간 살던 원주의 아파트에서 횡성군 둔내면으로 이사하는 날이다. 이런 저런 물건들을 트럭으로 옮겨 싣다 보니까, 5톤짜리 트럭 하나로 부족해서 1톤 트럭을 추가로 불러야만 했다. 여전히 많은 ‘짐’들이 있었다. 이제 ‘짐’을 줄여 나가야하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인생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게을러서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작업을 못하기도 하고,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2023년 10월 24일 아침 8시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는데, 11시가 넘어서야 트럭으로 옮겨 싣는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이사짐 센터의 직원들은 곧바로 횡성으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점심식사를 한다고 한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이사를 할 때는 일하는 사람들의 점심은 물론 간식까지 준비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들이 먹을 것은 알아서 준비해왔다. 소비자들에게 주는 쓸데없는 부담을 줄여줄 수 있기에, 좋은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물건을 가득실은 승용차를 운전해서, 아내와 같이 횡성으로 향했다. 둔내면에 도착해서 가볍게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갈 요량이었다. 원주를 떠나 고속도로로 막 접어들었을 때에 전화벨이 울렸다. 세들어 살던 원주 아파트의 주인이었다.
“안방에 도배한 벽지의 아래쪽이 들떠서 보기 싫게 되어 있네요. 다시 도배를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2년전 원주로 이사한 뒤 안방에 있던 피아노를 옮기는 과정에서, 피아노의 모서리에 벽지의 일부분이 찢어지고 말았다. 횡성으로 이사하기 몇 주전에, 도배전문가에게 맡겨서 도배작업을 진행하였다. 40대 중반의 부부가 와서 작업을 했었는데, 왠지 초보자들 같아 보였다. 결국 도배를 잘못해 놓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도배를 해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살던 원주 아파트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는 이런 저런 요구조건이 많았다. 계약을 한 직후 집에 와서, ‘신발장 맞은 편의 벽지가 더러우니 깨끗하게 청소해달라’, ‘자신은 에어컨을 안쓰니까, 에어컨 선이 밖에 나오지 않도록 조치해달라.’ 등등… 안방에 새로 도배한 벽지 상태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한 것도 세입자였다. 내가 이사했던 2023년 10월 중순은 수확을 마무리하던 시기여서, 비교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청소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직접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다. 새로운 세입자가 요구하는 것들을 대부분 해결해줄 수 있었다.
다만 안방의 벽면으로 삐져 나와 있던 에어컨 연결하는 전선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에어컨 실외기와 연결하는 전선이 벽 속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선을 필요한 만큼만 밖으로 빼놓고, 나머지는 덮개로 덮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입주하였을 때부터 덮개가 없는 상태였다. 나로서는 덮개를 만들어줄 방법이 없었다. 새로운 세입자가 불만을 여러 차례 토로했지만, 그냥 전선이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로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로 새로운 세입자와 감정적인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새로 이사한 횡성의 집은 전원주택이었다. 2층 건물이었는데, 2층에는 다락방이 있다. 전원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장이 낮은 다락방이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이 많은 나는, 다락방을 도서실과 같이 책 읽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그러려면 가지고 온 책 박스들을 이층으로 날라 올려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계단을 통해서 2층으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2층 올라가는 계단이 좁은 탓에, 책 박스를 들고 올라가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이사짐 센터에서 나온 직원들이 툴툴대기 시작했다. 힘좋은 젊은 친구들이 더 불만이었다. 처음에는 이삿짐 센터 사장인 듯한 분이 이들을 달래가면서 박스를 날랐다. 몇 박스 옮기더니 사장도 나에게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책 박스를 옮겨주지 않으면 결국 내가 다 옮겨야 했기에, 힘들어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나마 작은 크기의 박스에 있던 책들은 이층으로 옮겨주었다. 하지만 큰 사이즈의 책 박스는 좁은 계단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이유로, 밖에 있던 간이 천막안으로만 가져다 놓았다. 결국 나중에 내가 이 책들을 모두 옮겨야만 했다.
보통의 이삿짐 센터가 그러하듯이, 그들은 이삿짐을 풀어서 정리해주는 작업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거의 대부분의 이삿짐 센터 직원들은 이삿짐 정리를 대충 해놓아서, 결국 주인이 다시 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집안 여기 저기에 이삿짐이 쌓인 채로 놓여 있었다.
포장이사라는 형태로 이삿짐센터의 서비스가 바뀌면서 이사 비용이 많이 올랐다. 몇 백만원을 지출하는 것은 예사가 되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른 만큼 서비스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떨 때는 이사짐 센터 직원들의 불친절과 불성실로 인해 서로 말다툼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비용은 비용대로 많이 지불하면서도 좋지 않은 경험을 해야만 했다.
여러차례 기분 나쁜 경험을 한 뒤로, 나는 가능하면 큰 규모의 이삿짐 센터를 찾게 되었다. 직원들 교육을 통해서, 이들이 비교적 친절한 탓이었다. 그리고 2~3개 회사의 비교견적을 해서, 소비자가 적정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준다. 비록 싸지는 않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이사 경험을 할 확률이 높았다.
내가 원주에서 횡성으로 이사할 때도 전국적인 체인점 형태의 회사에 의뢰했다. 이전에 몇 차례 이용했던 회사였고, 기분 좋게 이사를 했던 경험이 있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가 전국에 직영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지역의 소규모 이삿짐 센터를 묶어서 운영하는 체인점이라는 것이 한계였다. 직원들의 교육 수준이 균일하지 않았고, 가격 또한 지역의 이삿짐 센터가 임의로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횡성으로의 이사에서는 이전과 같은 기분 좋게 이사했던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이사한 다음 날 아내가 병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서울로 가야만 했다. 아내가 서울로 간 사이에, 나는 무겁고 크기가 큰 이삿짐들을 옮겨 놓아야 했다. 큰 물건들이 자리를 잡아야, 작은 물건들을 정리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책을 정리해 놓을 책꽂이, 거실에 어울리는 소파 등 새롭게 구입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구입한 물건들이 도착한 뒤에나 정리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사한 뒤로도 몇 주 동안 집안 정리작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느끼지만, 이사는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이사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사하기 전후에 해야할 일도 많고, 사람들 간에 갈등도 생기고, 짐 정리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는 탓이다. 매번 이사를 준비할 때마다, ‘이사를 재미있는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번번히 불편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