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해에 겪은 마흔 한번째 이야기
“새참으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안주삼아 드시라고, 개구리 몇 마리 잡아 놓았어요.”
내 밭의 성토 작업을 하던 2023년 12월 어느 이른 아침이었다. 허총무가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기 위해 장작불을 피워 놓았다. 장작 옆에 개구리 몇 마리가 놓여 있었다. 같이 일하던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허총무가 선물 하듯이 개구리를 선사하였다. 포크레인 운전을 하는 허총무가 내 밭 주변을 둘러싼 개울가 정리작업을 하던 중에 발견한 개구리들이란다.
문득 시골에서 살던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겨울이면 주변 개울가에서 개구리를 잡아서 구워 먹곤 했었다. 그날은 허총무가 작업하던 중에 죽어 있는 개구리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2~3시간 일한 뒤 잠시 쉬는 시간에, 아저씨가 개구리를 장작불에 구웠다. 개구리를 먹지 못하던 나와 허총무는, 아저씨가 막걸리와 함께 개구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내 밭은 애초에 논으로 쓰던 곳이어서, 물이 많이 나는 토양이었다. 작년 초에 T자 형태의 유공관(有孔管)을 묻었지만, 유공관이 지나가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습기가 많았다. 땅속에서 스며나오는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유공관인데, 좀 더 촘촘하게 묻어줘야 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5톤 트럭으로 200대가 넘는 분량의 흙을 덮어주는 성토작업을 진행하였다. 밭의 지표면을 최고 1.5미터 높이는 작업이다. 땅속의 물이 작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었다.
성토를 한 흙이 비나 눈이 왔을 때 옆집의 밭으로 흘러 들어가면, 작물에 피해를 주게 된다. 그래서 내 밭의 가장자리를 블록으로 둘러쌓는 작업을 먼저 진행하였다.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두께 50센티가 넘는 두꺼운 블록을 일일이 포크레인으로 옮기고, 2단 또는 3단 높이로 수평을 맞추면서 쌓아 나갔다.
내 밭의 중간을 가로질러 흐르던 작은 개울도 흙을 덮어서 밭으로 만들었다. 이 개울로 흐르던 물이 잘 빠져나가도록 해주어야 해서, 먼저 지름 600mm짜리 큰 유공관을 개울 길을 따라서 묻어 주었다. 그 옆에 추가로 150mm 유공관을 묻어서, 물이 잘 빠져나가게 해주었다.
“내 밭에 묻혀 있는 기존의 유공관안으로 흙이나 나뭇가지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새로 묻은 유공관과의 연결부위를 큰 돌이나 벽돌로 잘 정리해주세요.”
“산 밑에 있는 큰 개울가의 수로를 직선으로 만들어서, 장마철에도 물이 잘 흐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작업을 진행하던 중에, 이웃집 함선생님이 이런 저런 요구를 했다. 내 밭으로 유입된 물이 함선생님 밭 주변의 개울가나 유공관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이번에 내 밭에 새로 묻는 유공관이 함선생님 밭에 묻혀 있던 유공관과 잘 연결되어야 했다. 내 밭 가장자리에 있던 개울도 역시 함선생님 밭 가장자리의 개울가와 이어져 있었다.
이웃집 밭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함선생님은 때로 지나친 요구를 해서, 불필요한 작업까지 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괜히 이웃집과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가능한 범위에서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래도 그의 과도한 요청들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성토작업을 마무리하고 한달 정도 흘렀을까? 처음 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토 작업하느라고 트럭 수백대 분량의 흙을 실어 날랐죠? 그 흙들이 마을 도로 여기 저기에 떨어진 상태에서 눈비가 오다 보니까, 도로에 흙탕물이 잔뜩 덮여 있네요.”
내 노지 밭이 위치한 둔내면 삽교리 4반 반장님이었다. 도로에 덮여 있는 흙탕물때문에, 통행하는 차들이 더럽혀진다고 마을 사람들의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흙을 포크레인으로 긁어주고, 도로를 물로 깨끗이 씻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아도 성토작업이 끝난 직후에, 포크레인으로 밭 주변 도로위의 흙을 깨끗하게 긁어냈었다. 그 뒤에 눈비가 오면서 포장된 마을 도로 주변의 비포장길에 있던 흙들이 다시 도로를 뒤덮었다. 눈이 내리고 녹으면서 이 흙들이 포장도로로 흘러간 것이다. 전적으로 내 밭의 성토작업때문에만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겨울에 물을 뿌리면, 도로가 빙판길로 변해서 사고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더군다나 마을 도로의 초입 지점은 경사가 심했다. 겨울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해도 반장님은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웠기에, 나도 반장님에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성토작업을 한 뒤 밭 주위 도로를 포크레인으로 깨끗하게 긁어준 상태예요. 겨울에 물로 청소를 하면, 도로가 얼어서 사고 위험이 높아지겠죠. 날씨가 풀리면 물 청소를 추가적으로 할께요.”
노지 밭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허총무를 비롯해서 몇몇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미리 이웃집 주인들에게 양해를 구한 덕에 별다른 민원 제기없이 지나갔다. 반면 4반 반장님을 비롯한 몇몇 마을 사람들은 관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지저분해진 마을도로 때문이었다.
이들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왜 마을도로가 지저분해졌는 지에 대한 원인에 집중하기 보다는, 이방인이라는 선입견으로 나를 비방하는 데 집중하는 인상이었다. 새로운 공동체에 스며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개구리를 구워 먹으면서 즐겁게 시작했던 일이었지만, 몇몇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마음의 부담감이 만들어졌던 과정이었다. 그래도 봄이 되기 전에 4반 반장님에게 인사를 드려야겠다.
4~5일에 걸쳐서 블록을 쌓고, 유공관을 묻고, 노지 밭 표면을 고르게 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밭 한가운데로 흐르던 개울에 유공관 작업을 한 후 흙으로 덮어주니까, 밭이 한결 넓어졌다. 이단 구조로 되어 있던 높은 쪽 밭의 흙을 파서 다른 부분에 성토를 해주었다. 그렇게 전체 밭의 지표면을 수평이 되게 만들어주니까, 1천평의 밭이 제 넓이를 찾은 듯 보였다.
다음 해에 농작물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니까,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