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Apr 20.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공동 농장 project

- 귀농 첫해에 겪은 마흔 두번째 이야기

  “내년에는 조합을 만들어서 같이 농사를 지으면 어때요? 혼자하는 것보다 즐겁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농촌에서 살아보기’ 후배기수인 3기의 윤반장이 제안하였다. 2023년 3기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가끔 3기의 회식에 초청받았다. 둔내면 삽교리라는 같은 생활공간에서 머무르고 있는 탓에 가까워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윤반장은, 나를 포함해서 3기생들과 미래의 계획을 함께 나누고자 했다. 

  “귀농 첫해에는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더라구요. 농사에 대해서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도 잘 모르고… 후배기수들도 똑 같은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서, 내가 도움을 주고 싶네요.”

  나는 3기생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다. 2023년 나의 귀농 첫해에는 농작물의 특성을 잘 몰라서 이리 저리 물어보기에 바빴다. 농기계도 없어서 여러 사람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을 잘 모르기에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정착을 위해 집과 밭을 장만해야 했고, soft-landing을 위해 귀농자금을 받는 과정도 필요했다. 내가 경험했던 여러가지 것들을 3기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2023년 10월말부터 본격적인 ‘공동 농장 project’ 논의가 시작되었다. 윤반장, 백현씨와 재원씨가 자리를 함께 했다. 윤반장은 유통업계에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막걸리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횡성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이용해서, 특성있는 막걸리를 만들어보고자 하였다. 백현씨는 대기업에서 근무하였는데,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은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단다. 전자공학과 출신인데 유통관련 업무를 주로 맡았다고 한다. 재원씨는 LA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인의 요청으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였다. 암벽등반을 좋아해서 그런지, 매일 근력운동과 함께 달리기를 하였다. 날씬하지만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50대 초반으로 아직 젊지만, 좀 더 여유롭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 가고 싶어했다. 서로 다른 이유이지만 일에 매몰되어 사는 삶을 원하지 않았다.

  “막걸리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켜서, 횡성의 민속주를 만들고 싶어요.”

   “난 내년에 농사를 지을 거예요. 토마토나 사과 같은 작목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에 이 마을에 집을 짓기로 해서, 농사는 작은 규모로만 하고 싶어요.”

  제일 먼저 우리들은 서로의 미래 설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지를 알아야, 서로 협력이 가능한지, 협력을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사에 대한 서로의 희망이 달랐다. 같이 즐겁게 일하고 싶다는 욕구는 같았지만 미래 계획에 차이가 있기에, 협력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공동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도,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겠네요.”

  나는 굳이 작물 재배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막걸리와 같은 농업기반의 제조 및 가공, 유통 등도 같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서로의 다양한 희망을 한 그릇에 담아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재원씨도 토마토를 가공해서 판매해보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 

  각자의 미래 계획을 공유하고 며칠이 지난 뒤에, 나는 같이 협력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였다. 서로의 계획을 녹여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였다. 공동체를 만들어가는데 큰 틀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측면도 있었다.

  먼저, ‘half day farmer’로 우리의 포지션을 정하자고 제안하였다. 가장 바쁜 정식기와 수확기에는 하루 종일 일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른 시기에는 삶의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시간을 갖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반나절 정도만 농사에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두번째는 각자 하고자 하는 농업 분야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PM(Project Manager) 제도를 운영하자는 거였다. 각자 희망하는 대로 윤반장은 막걸리 제조에, 백현씨는 과일 농업에, 그리고 재원씨는 소규모 농사와 함께 가공을 주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자 하고자 하는 영역을 맡되, 다른 사람들은 도와주는 형태로 일을 하자는 의도였다. 

  마지막으로는 내 밭 1천평만으로는 4명의 매출을 만들어내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서, 추가로 1천평을 임대해서 농사를 짓자는 제안을 하였다. 둔내면에서 재배하기 용이한 감자 등의 작목을 추천하였다.


    그 뒤 내가 낸 아이디어를 기초로 ‘공동 농장 project’에 대한 논의를 여러 차례 진행하였다. 바비큐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활발한 토론을 벌이곤 했었다. 12월 초순 어느 날이었다. 같이 project를 논의하던 멤버들간의 번개 미팅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윤반장이 지내고 있던 산채마을 곤달비 방에 둘러 앉았다.

  “제가 제주도와 전남 광양에서도 막걸리를 제조할 생각이어서, 우리가 공동 작업을 진행할 때 자주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project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럽네요.”

  윤반장이 갑작스럽게 ‘공동 농장 project’에서 빠지겠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애초에 이 project를 제안했던 사람이 윤반장이었기에 더 놀랐다. 백현씨나 재원씨도 윤반장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요하는 모습이었다. 

  “제안했던 사람이 빠진다고 하니까 당황스럽네요. 그래도 남은 두 사람이 원하면, 세 명이서 이 project를 계속 진행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나는 이왕 시작하기로 한 것이니까, 윤반장이 없더라도 계속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백현씨나 재원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이 말이 없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 말에 동의는 하지만, 이런 저런 고민이 많음을 의미하는 거였다. 결국 나머지 두사람의 의견이 바뀌는 것도 며칠 걸리지 않았다. 

  “백현씨는 매달 수입이 필요해서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저도 새로 집을 짓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재원씨가 백현씨와 이미 논의한 사항이라면서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우리가 두 달 정도 논의해왔던 ‘공동 농장 project’가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내년에는 즐겁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구나.’라는 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후배들이 둔내면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할 때 도움이 되고자 했던 나의 생각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Project가 무산되는 것을 보고, 나는 황당하면서도 화가 났다. 처음부터 내가 제안했던 일도 아니었고, 그들의 제안에 힘을 보태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제안한 당사자들이 그만 두겠단다. 자신들이 원해서 시작했던 일이었고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노력했었는데. 논의 과정을 되돌아봤을 때, 이 결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사자들이 그만 하겠다고 하는데. 


  “윤반장부터 시작해서 후배들이 ‘공동 농장 project’를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 당황스러웠어요. 제안을 했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철회한 것이니까요. 열심히 도와주던 나로서는 좀 허탈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재원씨 부부와 식사를 하면서 했던 말이다. Project가 무산되고 한달여가 지난 시점이었다. 재원씨 부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즐겁게 일하고자 하는 욕구만 같았을 뿐, 살아가는 방법이 달랐던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 농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꿈이 무리였을 수도 있다. 누구는 막걸리를 제조해서 유통해야 하고, 누구는 알바를 해서 매달 수입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농사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매일 같이 일해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다. 

  같은 목적이라고 해도 목표가 다르다면, 동행하기 어렵다는 순리를 다시 한번 되뇌이게 하는 사건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 농사꾼의 하루>밭 만들기와 마을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