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2년차에 경험한 첫번째 이야기
“와아! 5반이 우승했다!!”
윷놀이의 결승전에 참여했던 5반 주민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반면 4반 주민들은 패배의 아픔을 안고, 조용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둔내면 현천1리 주민들의 마을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마을회관 바로 옆의 큰 실내 게이트볼장에는, 백명이 훨씬 넘는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이런 저런 게임도 즐기고 노래나 장기 자랑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는 이벤트였다. 1년에 한번씩 겨울철 농한기에 열리는데, 이번에는 2024년 3월에 개최되었다.
내가 작년 10월에 이사한 집은 횡성군 둔내면 현천 1리중에서도 4반에 위치해 있다. 현천 1리는 1반에서 5반까지 총 5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4반과 5반에 귀농인이나 귀촌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4반 반장님은 수십년 전에 귀농한 분이고, 60대 후반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워낙 부지런하고 목소리가 큰 분이었다. 평상시 마을 사람들과 소통을 자주하기 때문인지, 다른 반들보다 두배 이상의 많은 주민들이 행사에 참석하였다.
첫번째 게임은 윷놀이였다. 참석한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최소한 한번씩은 윷을 던져볼 수 있게 하였다. 참석한 주민 수가 제일 많았던 4반은 예선전에서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특혜를 받았다. 준결승전에서는 2반과 대결해서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결승전에서 4반 참석자들이 던진 윷은 ‘도’, ‘개’, ‘걸’을 벗어나지 못했다. 상대편인 5반 주민들이 ‘윷’이나 ‘모’가 나오면서 신나게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게임은 싱겁게 끝났다.
내가 사는 현천1리에는 전원주택 단지가 여러 곳에 조성되어 있다. 주로 귀촌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주중에 전원주택 단지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였다. 절반 이상이 주말에만 와서 머무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밭 주변에 있는 주택에는 토박이들이나 귀농한 사람들이 주로 살고 있다. 현천1리가 해발 500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다. 밭이 많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었다. 둔내면의 다른 곳과 비슷하게 토마토를 주로 재배하고, 양배추나 브로컬리 등을 이모작으로 기르기도 한다. 토마토는 하우스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곳곳에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띈다. 5반에는 20동이 넘는 하우스가 밀집해 있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과 귀촌한 사람들은 일상의 생활 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평상시에 부딪칠 일이 별로 없다. 마을 사람들이 유일하게 같이 얼굴을 대면할 수 있는 시기가 농한기인 겨울철이었다. 매년 겨울에는 이장이나 반장 선거도 하고, 새로 전입해온 주민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갖는다.
“어린 멧돼지 고기가 있으니까, 허총무 집에서 바비큐 파티하시죠.”
겨울철이면 멧돼지며 고라니, 꿩 등을 사냥하는 송사장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국궁을 하는 마을 동아리의 카톡방이었다. ‘청태정’이라는 작은 국궁장이 둔내면 삽교리에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에는 삽교리뿐 아니라 안흥면이나 우천면에 사는 사람도 와서 국궁을 즐기곤 했다. ‘2023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도 수업과목의 하나로 국궁을 했다. 나도 2023년부터 국궁 동아리에 참여했다.
이장님을 비롯해서 노인회장님, 반장님 등 마을의 지도자급 사람들뿐 아니라 오랫동안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이 동아리의 구성원들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살다 온 ‘농촌에서 살아보기’ 참가자들에게는, 마을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국궁 모임에서 사귄 사람들과 왕래가 빈번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2023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3기 후배들은 삽교리나 그 주변에 정착한 사람들이 많았다.
눈이 많이 내려서 산과 들이 하얗게 변해버린 2023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송사장, 허총무, 국궁 사부님, 이장님, 노인회장님 등 10여명의 국궁 회원들이 허총무 집 옆에 지어진 비닐하우스에 모였다. 송사장과 허총무가 이미 멧돼지 다리살을 굽고 있었다. 허총무가 어머님이 담가 놓으셨다는 신김치를 가지고 나왔다.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멧돼지 고기를 신김치에 싸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더군다나 하얀 눈으로 뒤덮힌 주변의 산 경치를 즐기면서 먹으니, 서울의 일류 호텔 식당에서 보는 바깥 경치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장작불로 덥혀진 비닐하우스 안의 공기가 외부의 차가운 겨울 바람과 만나면서 형성된,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따뜻하게 구워진 고기와 함께 시원한 소주를 들이켰을 때의 느낌이랄까!
“5반에 사는 김사장 부부는 동유럽에 여행갔다네. 나도 얼마전에 계원들하고 같이 베트남에 갔다 왔지.”
현천1리 마을 잔치에 같이 참석했던 이웃집 전사장님이 이야기를 꺼냈다. 케이터링으로 준비된 점심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겨울이면 마을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것도 농촌의 한 풍경이었다. 열심히 농사지어서 번 돈으로, 겨울철에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농부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기도 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에는, 농사로 번 돈을 오롯이 자신들만을 위해서 쓰는 농부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농부들이 나이가 많은 탓도 있다.
농촌의 겨울은 농번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춥지만 오히려 더 따뜻하고 여유있는 계절이다. 평상시 자주 보지 못했던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이웃과의 정이 돈독해지는 시기였다. 여행을 하면서 삶의 여유를 느끼기도 했다. 보다 인간적인 풍미가 진해지는 시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