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2년차에 경험한 두번째 이야기
지난 겨울동안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 저곳 여행을 다녔다. 강원도의 강추위를 피해서, 주로 남부지방에 숙소를 잡았다. 2024년 1월초에는 부산 영도의 한 호텔에 투숙을 했다. 1개월 전에 이 호텔의 숙박권이 싼 값으로 판매되었다. 마침 아내와 내가 좋아하던 국제시장 근처여서, 선뜻 구입을 했다. 2023년에 아내랑 국제시장이며 깡통시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생각났다.
강원도에서 자동차로 5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먼 길이었지만, 여행이라서 그런지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부산에 가는 내내 아내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이전에 부산 국제시장에 갔을 때, 어떤 가게들을 돌아다녔지?”
쇼핑의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이미 마음이 들뜬 아내가 물었다.
“부엌칼 제작으로 유명한 국제시장의 한 모퉁이 가게에서 칼을 몇 개 샀었지. 그 주변에 있던 가방이며 의류 가게에도 갔었고. 그리고 깡통시장에서 밀면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했지.”
나의 머릿속에서 이전에 여행했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와 아내가 투숙한 호텔 방에서는 영도 앞바다가 보이고, 그 옆에 자리잡은 부산 자갈치 시장이며 국제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어선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었고, 호텔 건너편에는 롯데쇼핑몰이 자리잡고 있었다. 영도다리 밑을 지나 다니는 배들과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호텔에서 걸어서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국제시장이며 깡통시장이 있었다. 이전에 한번 다녀간 곳이라서, 그곳 지리에 익숙하였다. 깡통시장의 먹자 골목은 여전히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반면 옷가게나 가방 가게들이 있는 국제시장은 이전에 비해서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값싸게 즐길 수 있는 음식에는 사람들이 기꺼이 지출을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옷이나 가방에는 인색한 시기인 것 같았다.
저녁시간이나 주말이면 깡통시장에는 젊은 관광객들로 인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재래시장이지만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이곳을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은 관광지로 인식하는 탓이리라. 나도 아내와 인파에 끼어서 시장안을 흘러 다녔다. 먹을 것도 사먹고, 떨이로 옷이나 신발을 파는 가게에 가서 구경도 하고. 덕분에 아내와 나는 싼 값에 옷과 신발을 몇 개 챙겼다.
우리 부부는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에서 삶의 생기를 얻어가곤 한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물품들을 챙기는 것은 덤으로 주어진다. 오히려 생선회가 전문인 자갈치시장에서 먹어본 회는 비싼 편이었다. 그만큼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의 상품들이 저렴한 탓이기도 하다.
주로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가지만, 때로는 부모님들이나 아이들과 여행을 가기도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카톨릭 순교 성지들을 방문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시설에 가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가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한다. 부모님들이 연로하시기에 그것조차도 쉽지 않지만.
2024년 구정은 2월초였다. 구정 직전에 군산으로 향했다. 장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장모님을 위한 여행을 기획하였다. 장인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전주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을 예약하였다. 구정 연휴 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피해서, 며칠 일찍 고향 근처인 군산으로 내려가고자 한 의도도 있었다.
전주에서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가서, 군산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새만금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그 지역이 아직 개발이 덜 된 탓에, 주변에는 새만금 개발청을 제외하고 별다른 건물이 없었다. 황량하였지만, 확 트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호텔은 10년도 채 안된 깨끗한 건물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호텔에는 장모님과 아내가 좋아하는 사우나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한 뒤에 호텔에 투숙한 탓에 늦은 시간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장모님을 모시고 사우나를 즐겼다. 호텔의 이런 저런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즐기는 장모님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행복해하는 얼굴이었다.
다음 날은 군산의 맛집과 관광지를 가보기로 했다.
“얼마전에 tv프로그램에서 군산의 설렁탕집이 소개되었거든.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 아침식사를 이 집에서 하자고.”
장인어른이 말씀하신 해당 tv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고래설렁탕’이라는 곳을 찾아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이 식당을 찾았을 때, 벌써 손님들이 여러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메뉴는 설렁탕, 갈비탕, 도가니탕 등으로 단출했다. 장인어른과 나는 설렁탕, 장모님은 갈비탕, 아내는 도가니탕을 주문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먹기 시작한 음식들은 너무 맛있었다. 왜 이 집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었는 지 알 것 같았다.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가 향한 곳은 군산의 유명한 빵집인 ‘이성당’이었다. 설렁탕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성당은 큰 건물 두 곳에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한 곳에서는 주로 빵을 팔고, 다른 곳은 카페와 식당이었다. 아침 나절이었지만 빵집 입구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명절 연휴인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유명한 빵집이기 때문이리라.
한참을 기다린 끝에 빵집 안쪽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먹을 양보다 더 많이 주문하였다. 나중에 전주에 가서도 먹을 요량이었다. 빵집이 꽤 넓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음으로 가득하였다. 우리도 각자 먹고 싶은 빵을 디저트 삼아서 맛있게 먹었다.
마침 근처에 ‘군산 근대역사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장모님이 오랫동안 군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를 하셨기 때문에, 군산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은퇴하신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방문하는 군산이었다. 이곳 저곳 과거 장모님이 가보시던 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도 ‘근대역사 박물관’은 처음이란다.
박물관은 바닷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어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었다. 주차장도 널찍해서 좋았다. 관람객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여유가 있었다.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층 로비에서는 마술이나 음악 등 이런 저런 작은 이벤트가 열리는 곳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근대생활관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곳은 일제시대에 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고무신 가게, 술을 파는 가게, 인력거들이 대기하는 곳, 쌀 가마를 나르던 지게들도 체험할 수 있었다.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던 항구여서 그런지, 사진속의 군산은 번화한 거리였다. 항구까지 쌀 가마니를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길도 사진속에 담겨 있었다.
장인 장모님이 일제시대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자라면서 보아왔던 옛날 기억들이 새삼 떠오르는 것 같았다. 옛날 화폐나 양조장안에 가득 찬 도자기로 만든 술병들을 보면서 기억나는 일을 이야기하곤 했다.
“옛날에는 길거리에 이런 양조장들이 많았지. 지금과 같이 대량 생산을 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이렇게 도자기로 만든 큰 술병으로 팔기도 했고.”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1층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여기 저기 흩어져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그 주변에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자리를 잡았다. 간단한 마술 쇼를 한다고 한다. 우리도 1층으로 내려갔다. 마술사는 젊은 분이었지만, 마술에 제법 경험이 많은 것 같았다. 처음에 산만했던 분위기를 잡아가는 과정도 부드러웠고, 그때 그때 관객들의 반응에 맞는 마술을 진행하였다. 어느 덧 한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장인 장모님뿐 아니라 나와 아내도 오랜만에 보는 마술에 흠뻑 빠져들었다.
강원도의 겨울은 역시 매섭게 불어 제치는 바람으로 추웠다. 주변 산하가 흰 눈으로 뒤덮이면서, 사람의 움직임 조차도 뜸한 시기이다. 바람이 사그러들 때면, 조용한 침묵만이 흐르곤 했다. 농한기인 이 시기에 농부들은 국내외 여행으로 그동안 고생했던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옛날에는 사랑방에서 고스톱을 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다른 지방으로, 다른 나라로 떠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옛날보다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삶의 여유를 건전하게 즐길 줄 알게 된 탓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