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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28. 2024

<한옥 대목반>이별 여행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마지막으로, 한옥학교 대목과정도 거의 끝나갔다. 6개월동안 동고동락을 했던 38기 동료들은 이별이 가까워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던 차에 종석이가 묵호 항으로 이별여행을 가자는 제안을 했다. 종석이 장인이 별장으로 쓰는 아파트가 있으니까, 그곳에서 하루 지내고 오자는 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생선회로 회식을 하면서,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차 두대에 나눠 탄 동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묵호항으로 향했다. 자동차 창문으로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들어왔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태백산맥의 산들이 푸릇푸릇한 봄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햇살의 따스함과 자연의 생기로움이, 마치 우리들의 이별 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을 축하해주는 듯했다. 2022년 3월 봄 어느 날 우리의 이별 여행이 시작되었다.

  묵호 외항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근처 가게에서 횟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외항은 회 파는 가게가 많이 없었다. 가자미, 광어 등의 가격을 알아본 후, 내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항에는 가게가 많아서 그런지, 가자미, 광어, 숭어 등의 가격이 쌌고, 고등어, 성대 등의 물고기도 덤으로 끼워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충분히 먹을 만큼 생선을 사서, 근처에 회를 쳐주고 탕도 만들어주는 식당으로 갔다. 

  바닷가가 보이는 창문 옆의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서 회를 먹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다들 바다 경치에 취해서 그런지, 술병도 빨리빨리 비워졌다.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누군가가 불쑥 동료인 용기 이야기를 꺼냈다.

  “이 자리에 용기만 빠져 있으니까 섭섭하네. 같이 학교를 졸업하면 좋았을 텐데.”

  본격적으로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3월초, 용기가 학교를 그만두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모두들 술렁거렸다. 

  “더 있어봤자 내가 할 것이 별로 없어서 그만두는 거야.” 

  동료들의 질문에 대한 용기의 대답이었다. 용기는 목수의 길을 가지 않기로 결정한 뒤에, 지원했던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취소했다. 학과 과정도 다 끝났기 때문에, 학교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 날 짐을 챙겨서 떠난다고 했다. 너무 정이 많이 들어서, 그냥 보내기에 섭섭했다. 우리는 내 집에서 번개 이별 파티를 했다. 급 제안을 했는데, 38기 동료들이 모두 참석했다. 마침 집에 있던 보드카와 소주로 이별의 섭섭함을 달랬다. 

  

  “앞으로 서로 가야할 길은 다르지만, 지난 6개월동안 맺어진 우정은 잊지 못할 거예요. 전국에 흩어져 살지라도, 1년에 한 두번씩 얼굴을 보면 좋을 것 같네요.”

  나는 회장으로서 건배사를 했다. 30대에서 50대까지 나이 차이도 많고, 직장이며 사는 곳도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만들어냈던 지난 6개월이었다. 동료들도 가장 생각나는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지나간 날들을 안주 삼아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우리가 경험했던 행복했던 시간들이며, 힘들었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면서 각자의 앞날에 좋은 일들만 펼쳐질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


  묵호 항으로 이별 여행을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지막 등교 일이 되었다. 그날 숙소에서 학교까지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평소에는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그날은 40분이 넘게 걸렸다. 지난 6개월동안 정들었던 마을 풍경을 하나씩 마음속에 담고 싶었다. 이웃집 흰둥이들이 더 이상은 짖지 않고, 등교하는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어 댔다. 이제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너희들을 더 이상 못 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날은 38기 동기들의 마지막 회식 날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일현, 정목이가 살고 있는 펜션으로 향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이 집에는,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종석이와 호림이가 대화면의 하나로 마트에 가서 상추, 고추 등 각종 채소와 양념들을 사오는 동안, 우리는 숯에 불을 붙였다.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동료들은 평상시 회식과 다르게 별다른 말이 없었다. 뭔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 표정이었다. 이윽고 숯불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2군데서 고기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나와 호림이가 가져온 양주로 먼저 입을 적셨다. 맛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얼마 안가서 바닥이 났다. 

  고기와 술이 들어가면서 회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 즈음에 선생님도 학교 일을 마무리하고 합류했다. 서로의 밝은 앞 날을 기원하면서,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어댔다. 조금이라도 동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이리라. 

  회식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일현이가 며칠 전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우리가 휴식공간으로 사용했던 사모정이 무너졌잖아. 그때 기분이 참 묘했어. 마치 지난 6개월동안 잘 지냈으니까,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고 말하는 것 같더라고.”   

  정자가 무너져 내린 날 아침에 그 광경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은 일현이었다. 아침 일찍 등교해 있던 그는, “꽝”하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어 나갔단다. 빨간색 카니발이 정자의 기둥 하나를 들이 받은 모습을 목격했다. 정자의 기둥이 제자리에서 이탈했고, 그 바람에 정자는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비탈진 언덕 길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가 굴러 내려와서, 정자를 받은 것이다. 지난 6개월동안 우리의 휴식공간으로 애용하던 곳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 탓에, 학교에 도착한 동료들도 모두 허탈해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 사건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용식이가 끌 날에 손가락을 베어서, 급하게 병원에 가서 3바늘을 꿰매야만 했다. 손가락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용식이는 다음날까지 휴가라면서 옷을 갈아입고 서울 집으로 가버렸다. 

  때로 좋지 않은 사건들은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학교 생활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해서, 동료들은 찜찜해했다. 앞날에 좋은 일들이 많도록, 미리 액땜을 한 사건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위로하였다. 다들 6개월동안 즐겁게 지냈던 동료들이기에, 끝맺음도 아름답게 하고 싶어 했다. 

  목소리가 유난히 큰 호림이가 껄껄거리면서 호탕하게 웃어 제쳤다. 같이 앉아있던 30대 젊은 친구들끼리,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다. 그들의 얼굴에서 취기가 느껴졌다. 그때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유명이가 좋아하던 김광석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 긴밤을 또 잊지 못해 세울까 ~~~”

  지나간 추억을 주고받으면서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던 그날 회식의 주제와는 전혀 다른 노래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쓰기에는 이미 모두들 취해 있었다. 어느 덧 떼창이 되어서, 평창의 밤 하늘에 울려 퍼졌다. 밤 하늘을 수놓고 있던 별들도 반짝 반짝 빛을 내면서, 우리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회식도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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