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스물 일곱번째 글
“톡 톡 톡”
프라이팬 안의 쥐이빨 옥수수가 뜨거운 가스레인지 불에 견디지 못하고 튀어 올랐다. 프라이팬 덮개에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곤 했다. 동료들은 멍하니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옥수수가 튀겨 지기를 기다렸다. 언니네 텃밭 회장님이 횡성군의 장날에 전통 씨앗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 중의 하나로 준비한 것이란다. 튀겨진 쥐이빨 옥수수는 매우 맛있었다.
2022년 6월 중순 횡성읍에 있는 언니네 텃밭에 도착하니까, 구면인 사무장님과 회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니네 텃밭은 여성 농민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지만, 이미 와본 적이 있어서 정감이 있었다. 사무실의 회의 탁자에 자리잡은 동료들은, 회장님의 토종씨앗 지키는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토종 씨앗을 찾고 재배하는 사업은 국민들의 건강과 종자 주권을 지키는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자연환경에 맞게 만들어진 전통 씨앗이, 한국 사람의 건강에 유익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종자를 판매하여 로열티를 받아가고 있는 외국 대기업으로부터 종자 독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종씨앗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인데다가, 보유하고 있는 토종씨앗도 재배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사 종들과 자연 교배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만큼 토종씨앗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데 개량종자는 외국 대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기관인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만든다. 농업기술센터는 농민들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어서, 병충해에 강하고 생산량이 많은 개량종자를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다. 전통 씨앗을 지키려는 언니네 텃밭과는 대척점에 있는 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농민들을 위해서 개량 종자를 개발하는 반면, 여성농민들이 회원인 언니네 텃밭에서는 오히려 전통 씨앗을 지키는 사업을 한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우리가 둘러앉은 회의 탁자 위에는 선비잡이콩(얼룩이콩), 퍼런콩, 서리태, 쥐이빨 옥수수, 벼 등의 재래 종자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중 일부 종자를 우리들에게 심어보라고 나누어 주었다.
언니네 텃밭에서 교육이 끝난 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서 횡성읍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넝쿨링 카페’로 향했다. 이곳 사장님은 14년전에 귀농을 해서, 이제는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천평의 부지에 카페와 넓은 정원을 꾸며 놓았다. 정원이 머루포도와 애플수박 넝쿨로 치장되어 있어서, 여름에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졌다.
카페 부지 옆에는 9백평 규모의 애플수박 밭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남자 사장님이 혼자서 가꾼단다. 허름한 옷에 밀집모자를 쓰고 작업을 하는 사장님을 정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한때 종로학원 원장도 역임하였지만, 귀농을 해서 이 터를 가꾸었다고 한다.
종로학원에 근무할 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서 장이 내려앉아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고 한다. 횡성으로 오게 된 이유였다. 처음에는 그곳이 습지여서, 농어촌공사에서 싸게 임대를 받았고, 이후에 매입을 했다. 열심히 밭을 가꾸면서, 건강도 되찾았다. 농사 일이 곧 건강을 찾는 일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정원의 조그마한 그물망에 넣어 놓았던 죽은 애플수박 부스러기를 보여주었다. 1년된 것이란다. 친환경 농사로 생산해낸 애플수박은, 절대로 썩지 않고 단지 말라비틀어질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만큼 몸에 좋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넝쿨링 카페의 점심식사 메뉴는 가지밥이었다. 가지를 넣어서 지은 밥을 양념으로 비벼 먹으니까, 무척 맛이 있었다. 친환경으로 재배한 건강한 야채들로 만들어진 식사였다. 점심시간이 되니까, 카페에 빈 자리가 없었다. ‘카페에 식탁이 7~8개 정도만 있어서 그다지 크지 않은 탓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약을 하지 않으면 점심시간에 식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한다. 건강한 밥을 먹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회사에 다닐 때 나의 머리 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았던 질문이 있었다. 왜 생명을 단축시키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회사 생활을 해야 할까? 일을 하더라도 건강해지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경제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데, 스트레스로 건강을 축내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언니네 텃밭의 전통 종자 지키기 사업이나 넝쿨링 카페의 친환경 농산물로 만들어진 식단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부딪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농촌에서는 일반적으로 경제성을 제고하기 위해 개량종자를 만들어내고, 화학 농법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서는 전통 종자를 활용하고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친환경 농법이 화학 농법에 비해서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경제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농민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