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귀농인의 하루>롤러코스트를 탄 청양고추 농사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네번째 이야기

by 유진

[청양고추 납품을 당분간 중단해주세요. 재고가 너무 많아서요.]

이런 문자를 받은 것은 청양고추 수확을 한참해야 할 때인 2025년 8월말이었다. 문자를 보낸 것은 친환경 영농조합 산세로의 사장이었다. 2024년부터 산세로에 토마토와 고추를 납품한 뒤로 처음 받아보는 내용이었다. 한참 청양고추 가격이 좋았기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통업체에서 고추를 사가지 않는 모양이네요?”

“네. 고추가 한참 나오는 시기이다 보니까, 우리가 원하는 비싼 가격으로는 사가지 않네요.”

“가격을 떨어뜨려도 안되는 모양이죠?”

“그래도 재래농법으로 재배한 고추 생산물량이 너무 많다 보니까, 친환경 고추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일반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은 재래농법에 의해 출하된 농산물보다 가격이 약간 높게 형성된다. 산세로도 유통업자들과 가격 수준을 그렇게 정해오고 있다. 불과 한달전만해도 재래농법의 청양고추 경매가격이 10키로그램에 10만원을 넘길 정도로 높게 형성되었다. 덕분에 산세로는 유통업자에게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추 재배농가들의 수입이 좋았다. 그런데 여름철에 접어들어 시장에 청양고추가 많이 출하되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하였다. 경매가격이 10키로그램당 3~4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산세로와 거래하는 유통업자가 더 이상 물량 구매를 안하는 이유였다.


청양고추를 산세로와 같은 친환경 업체에 납품하지 못하면, 재래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과 같은 경매시장에 출하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 농산물 경매시장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산세로 사장의 메시지를 받은 뒤, 몇 차례 둔내면의 농산물 유통업체를 통해서 경매시장에 고추를 보냈다. 재래농법으로 재배하는 고추는 친환경 고추보다 겉이 매끈하다. 농약이 독해서 병충해 피해도 덜 받는데다가 보기 좋게 성장할 수 있도록 화학비료도 많이 살포하기 때문이다. 경매시장에서 이런 고추들과 경쟁하다 보면, 친환경 고추가 제 값을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매시장에 내놓는 것보다는 며칠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같이 일하는 백현씨와 상의하였다. 우리는 당분간 고추 수확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경매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도 너무 낮아서, 계속 출하하고 싶지 않았다. 수확을 늦추면서 산세로에서 다시 구입해주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산세로 대표가 청양고추를 납품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두세차례 납품을 하였다. 일주일쯤 지난 뒤에 다시 산세로 대표의 ‘납품 중단 요청’ 메시지가 날라왔다. 이런 일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되풀이되었다. 9월 중순에도 또 다시 메시지가 왔다. 그때 당시에 경매시장의 고추 가격은 3만원이하까지 내려가 있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수확을 중단하는 사이에 탄저병을 비롯한 각종 병해충이 고추들을 괴롭혔다. 친환경 농약으로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병해충에 시달린 고추의 상태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가 온도가 떨어지면서 더 이상 수확을 미룰 수만은 없었다.

9월말 며칠동안 고추 수확에 매달렸다. 그런데 출하할 정도의 고추는 한참 수확할 때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아니 10%도 안되었다. 그만큼 고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출하한 물량들의 경매가격조차도 10키로그램에 2만원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고추 수확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와 백현씨는 고추나무를 모두 뽑아 버리기로 했다. 더 이상 청양고추를 출하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고추나무를 뽑아서, 빠른 시간내에 빨간 고추로 만드는 것이 나을 듯했다. 홍 청양고추로 청양 고추가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추를 처음 수확했던 7월중순에는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출하할 수 있어서, 기분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금년 고추 농사는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추 출하량이 늘어나면서, 고추 가격은 급락했다. 그 뒤에 고추 수확을 여러 번 멈춰야 했고, 그러는 사이에 고추 상태가 나빠져서 더 이상 수확하는 것이 의미 없어져 버렸다. 급기야는 고추나무를 뽑아 버리기까지 했다.

가끔 기사에서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확을 포기한 밭들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은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직접 경험하고 나니까, 화도 나고 무력감도 느꼈다. 재배기간동안 고생한 보람도 없었다.

‘이런 게 농사이니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롤러코스트 같은 농산물의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큰 폭의 고추 가격 변동을 경험하면서 농산물 재배와 유통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농산물 현황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농부가 수확 물량을 충분히 만들어내고 소비자도 안정된 가격으로 구입하려면, 근본적으로 농산물 가격의 안정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보 농사꾼의 하루 퇴고글>농촌에서의 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