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다섯번째 이야기
부지런한 백현씨였다. 어느 날 농장에 도착해보니까, 토마토 유인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같이 쉬기로 한 전날에도 일을 한 모양이었다. 토마토의 줄기가 거의 180도 누워있었다.
방울 토마토는 첫번째 화방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면, 하엽을 제거해줘야 한다. 통풍이 잘 되게 해주어야 곰팡이 균이 생기지 않고, 1화방 위의 잎과 열매를 키우는데 영양분이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에 최대 3개까지의 잎을 제거하는 것을 권하고 있다.
하엽을 제거한 뒤에는 유인작업을 해준다. 방울 토마토가 거의 20화방가까이 자라면, 그 길이가 3미터를 훌쩍 넘어간다. 직립으로 키울 수 없는 크기여서 45도 정도 옆으로 눕히는 유인작업을 몇차례 해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눕히게 되면, 옆의 나무들과 접촉면이 많아져서 통풍이 잘 안되고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없다. 습한 환경에서 생기기 쉬운 병이 발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열매의 익는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백현씨는 하엽을 3개보다 많이 제거하면서, 토마토 줄기를 완전히 눕혀 버렸다. 토마토 나무에 적합한 유인작업이라기 보다는, 농부의 일손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한 것이다. 방울 토마토 나무가 자라면서 여러 차례의 유인작업을 해야 하는데, 한번에 많이 눕히면 유인작업의 횟수를 줄일 수 있는 잇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가능하면 45도 보다 세우는 방향으로 유인을 했다. 그만큼 유인작업의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토마토 나무가 건강하면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이후 나무가 자라면서 서로 다른 유인작업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관리했던 토마토 나무들이 잿빛 곰팡이 때문에 백현씨의 그것들보다 건강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관리했던 2차 정식한 토마토들이 모살이를 심하게 하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곁순이나 하엽 제거를 나무별로 상태에 맞게 세심하게 해주었다. 모살이가 심한 토마토 나무들은 광합성작용을 활발하게 유도하기 위해서 가능한 곁순을 오래 키웠기에, 곁순 제거작업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다른 재배관리의 차이는 서서히 드러났다. 나중에는 내가 관리했던 토마토들의 건강상태가 더 좋아졌고, 백현씨의 그것들은 곰팡이 병이 크게 번지고 말았다. 나의 토마토에서는 크고 건강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같은 면적에서 재배한 토마토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나의 수확량이 백현씨보다 많았다. 줄기와 잎이 건강해지니까, 자연스럽게 건강한 열매도 만들어낸 것이다.
토마토의 첫번째 유인작업을 마무리할 즈음에 노지밭에 심어놓은 청양고추의 지주대 세우는 작업을 했다. 농촌에서는 1.5미터에서 2미터 정도의 알루미늄 지주대를 이용해서, 고추나무를 고정시켜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추나무 4~5그루 정도의 간격으로 지주대를 땅에 꽂은 다음, 노끈으로 고추나무와 지주대를 함께 묶어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방지해준다.
나는 원래 지주대 대신에 고추 그물을 이용해서 고정시킬 생각이었다. 고추 그물은 작은 네모나 마름모꼴 형태의 단단한 노끈으로 만들어졌다. 고추 정식을 한 직후에 그물을 씌워주면, 고추가 마름모꼴의 구멍사이로 줄기를 뻗으면서 넘어지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면서 2~3층으로 그물망을 씌워주면, 가지가 많은 고추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수확을 할 때 그물사이로 손을 넣어서 열매를 따야 해서 번거롭다.
백현씨는 수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지주대를 고집하였다. 하지만 지주대를 이용하는 경우, 고추가 수시로 넘어지기 때문에 후속작업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지주대에 나무를 고정시킨 노끈이, 고추나무가 사방으로 흔들리면서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내 밭이 있는 마을은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나무의 움직임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색을 하면서 주장을 하는 백현씨의 의견을 꺾을 수 없었다.
고추가 심어진 밭의 군데 군데에 1.5미터 정도 되는 지주대를 박았다. 지주대는 ‘Y’자 형태로 두개를 교차해서 설치했다. 고추가 자라면서 가지들이 옆으로도 풍성해진다. ‘Y’자 형태의 지주대로는 가능하면 많은 가지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고정시킬 수 있다. 풍성해진 가지들을 압박하지 않고 2단, 3단의 노끈을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끈으로 지주대에 고추나무를 고정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고추나무에 고추들이 하나 둘씩 매달려 무거워지면서, 고추 줄기들이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노끈으로 지지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양말목으로 고추 나무 하나 하나를 노끈에 다시 묶어주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아니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일부 이랑에는 노끈을 추가로 묶어주어야 했다. 이 일은 재배하는 기간 내내 계속해야만 했다. 2단, 3단으로 노끈을 묶은 뒤에도 고추 나무가 넘어지는 현상이 많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노동력과 시간이 많이 허비될 수밖에 없었다.
초보 농사꾼들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불과 1, 2년전에 나도 실수를 많이 하였다. 처음 농사를 짓는 백현씨 입장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한 셈이다. 앞으로도 계속 농사를 지을 계획인 백현씨에게는 귀중한 체험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