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첫 해에 겪은 일곱번째 이야기
아침 기온이 7도에 머물렀지만, 햇빛이 비치는 따스한 봄날이었다. 해발 600미터인 횡성군 둔내면의 전형적인 3월 중순 날씨였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함께 했던 동료들이 모두 모여서, 내가 임대한 비닐하우스의 천장 비닐 씌우는 일을 도와주었다.
하우스의 천장 비닐이 찢어진 탓에, 일반적인 임대료의 반값인 오십만원을 주고 1년동안 빌릴 수 있었다. 길이가 50미터 정도이고, 폭이 7미터인 백평 규모의 하우스였다. 천장 비닐은 하우스 전체를 덮을 수 있는 크기여서 엄청나게 넓었다. 한두사람이 하기 어려워서, 8명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문가인 대표님의 지시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미 똑 같은 일을 경험해본 동료들이었기에, 손발이 척척 맞았다.
오전 8시에 시작했는데, 한시간 반쯤 지났을 때 이미 비닐이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남자 동료들이 사다리에 올라가, 하우스 뼈대에 맞춰 덮어 나갔다. 이것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여자동료들이 잡고 있었다. 남자 동료들은 하우스 옆면에 설치된 아연 패드에 용수철 모양의 철사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11시쯤 모든 일이 끝났다. 3시간만에 비닐하우스의 천장 비닐을 씌운 것이다.
일을 마친 후, 우리는 하우스 옆 그늘에 둘러 앉았다. 낮에는 햇볕이 강해지면서 약간 더웠지만,봄날의 청량함을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내가 준비해온 빵과 요구르트를 새참으로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땀 흘리고 난 뒤에 먹는 새참은 언제나 맛있었다.
최선생님 부부가 횡성읍에 집을 산 지 얼마 안된 상태여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다. 집 수리 작업,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로터리 작업 등등… 횡성읍에서 7백평 정도 밭을 임대한 전장군님은 감자, 고추, 옥수수 등 심고 싶은 작물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동료들과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거웠다. 새참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농사를 지을 때 큰 낙(樂)이었다. 자연스럽게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감정도 깊어졌다.
비닐하우스 천장에 비닐을 씌우고 한 달쯤 지났을까? 나 혼자 하우스안에 마사토를 붓고, 퇴비를 뿌리고, 삽과 괭이로 흙과 퇴비를 섞어주었다. 모두 몸을 써야만 하는 일이어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햇볕이 비치는 비닐하우스 안은 바람이 덜 통해서, 바깥보다 훨씬 더웠다. 아직 봄인데도 35도를 훌쩍 넘어갔다. 30분 일하고 나면 쉬어야만 했다. 나 혼자 일을 하다 보니까 더 힘들었고,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김에 그날 안에 마무리하고 싶었다. 어느 덧 시계바늘은 오후 6시를 넘기고 있었다.
‘내 나이에 맞는 노동 강도인가?’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러 온거지, 이렇게 힘든 노동을 하러 온건가?’
몸이 너무 힘들다 보니, 쉬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웃에 사는 농부에게 트랙터를 빌릴 수 있으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바쁘게 농사짓는 이웃들에게 트랙터를 빌리는 일이 번거롭게만 느껴졌다.
퇴직하고 난 이후의 삶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여유롭게 지내면서도 어느 정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귀농이었다.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을 하면서, 건강한 농작물을 재배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자연환경이 빼어난 강원도에 작은 밭을 마련한 이유였다.
본격적으로 농사 일을 하게 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해야할 것도 많지만, 육체적인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들이 꽤 많았다. 아직 농기계를 장만하지 못한 상태인데다, 초보 농사꾼이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만 했다. 동료들이나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들만큼 바쁠 때뿐이었다. 모두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자주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힘들 때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아쉬웠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사라진 것이다. 얼마 전에 하우스 비닐을 씌웠던 동료들과의 공동 작업이 떠올랐다. 힘들게 일한 뒤였지만, 새참과 함께 나눈 대화속에서 노동의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농사 일을 할 때의 규칙을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오후 5시 이전에는 일을 무조건 끝내자.’ ‘일이 힘들면 다음 날로 미루자.’ ‘작물들을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과도하게 작물들을 보살피지는 말자.’ ‘동료들이나 마을 사람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자주 갖자.’
농사를 즐거운 일로 만들어야지, 힘든 노동이 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퇴직 후 선택한 귀농인의 삶이었기에, 즐겁고 보람된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날 저녁에 만든 농사의 규칙을, 일기장에 큰 글씨체로 적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