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귀농인의 하루>새로운 귀농인의 탄생

- 귀농 3년차에 경험한 열여섯번째 이야기

by 유진

“지난 10여년간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서, 신용이 충분하지 않데요. 그래서 귀농자금을 빌려주기 어렵다고 하네요.”

어느 날 백현씨가 볼멘소리를 했다. 얼마전에 횡성군청에서 받은 귀농자금 융자 허가서를 농협에 제출했다. 둔내면 화동리라는 곳에 있는 7백평 정도되는 밭을 구입할 때 필요한 돈이었다. 그런데 밭의 감정가액이 2억원에 달하는 융자금의 담보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농업신용보증기금(이하 농신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의 신용상태로는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정부에서 귀농자금 융자를 해주라고 보증해주는 데, 왜 개인 신용을 들먹이는 거지? 농협이 너무 거저 먹기 식으로 장사하는 것 아니야?”

나는 속상해하는 백현씨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부 자금인데도 100%가 넘는 담보를 설정하려는 농협의 자세가 이해되지 않았다. 농민을 위한 은행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과 수익을 위한 금융기관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정부도 지원금을 농협을 통해서만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은행들과의 경쟁이 있어야, 융자 서비스도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백현씨는 나의 농장에서 같이 일을 했다. 원래 목수 일을 할 정도로 일 솜씨가 좋은 친구였다. 친환경으로 토마토를 재배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나의 농장에서 경험을 쌓고 싶어 했다. 그는 농사 일이 처음인 데다가 친환경 농법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워낙 일머리가 좋은 친구라서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전기공학을 전공해서 전기 작업을 도맡아서 해주었다. 혼자 할 일을 둘이서 나눠서 할 수 있었기에, ‘half-day farmer’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오전에만 농사 일을 하고 오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색소폰을 배우거나 글쓰기를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원하던 삶의 방식이었다.

2025년 어느 날 그는 귀농자금을 신청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을 마치고도 2년 가까이 지난 뒤였다. 모든 일을 천천히 하고 싶은 그의 희망이 반영된 스케줄이었다. 먼저 귀농자금을 받았던 내가 같이 있었기에, 사업계획서 작성을 비롯한 각종 서류 작성을 쉽게 해낼 수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까지 수료하여서, 가점도 주어졌다. 귀농자금 신청자중 20~30%, 많을 때는 50%까지 탈락하는 것을 감안할 때, 그는 합격 안정권이었다. 기대한대로 그는 쉽게 귀농자금 대상자로 선발되었다.

먼저 귀농자금으로 구입할 밭을 마련해야 했다. 내 농장이 있는 둔내면 삽교리뿐 아니라 근처의 다른 동네에서 매물이 나오면 가서 살펴보았다. 토마토 재배용 비닐 하우스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곳을 원했다. 그러려면 경사가 크지 않아야 하고, 직사각형 모양의 밭이어야 했다. 햇빛을 좋아하는 토마토의 특성상 밭 바로 옆에 산이 있으면 안되었다. 그가 받을 수 있는 귀농자금의 한도내에서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있었다. 이런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매물들을 둘러보았다.

보통 논밭은 수확이 끝나가는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매물이 나온다. 9월 중순을 넘어가면서 매물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팔려고 하는 밭이 나오면 나는 그와 같이 가서 살펴보곤 했다. 아무래도 내가 밭을 구입한 경험이 있고 농사를 지어봤기에, 좀 더 정확하게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산채마을 김대표님도 백현씨의 매물들을 같이 살펴봐 주었다.

10월초에 그가 원하는 매물이 나타났다. 둔내면 화동리에 있는 7백평짜리 밭이었다. 이미 하우스 6동이 지어져 있는데다 관수시설과 농약을 살포할 수 있는 설비까지 되어 있는 곳이었다. 값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그의 지원금으로 살 수 있었다. 화동리가 둔내면 소재지에서 30분쯤 떨어진 외진 곳이라는 점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백현씨가 농사를 그만두고자 할 때, 매도 가격을 높게 받기에는 어려울 수 있었다.


문제는 적당한 밭이 나타나면서부터 발생했다. 귀농자금은 경작지 구입, 하우스 구축, 농기계 구입 등의 담보할 수 있는 자산 구입에 주로 사용할 수 있다. 각각의 자산들을 구입할 때마다 횡성군의 허가서를 받아서, 농협에 제출해야 한다. 농협에서는 구입 물건들의 담보 가능한 금액을 산정한 다음, 부족한 부분은 농신보를 통해서 해결한다. 농신보에서는 지난 십여년 동안 융자받는 사람의 세금 납부금액, 수입액, 보유 부동산 등을 통해서 신용평가를 한다. 신용이 충분하면 신용 보증을 해주고 대신 보증비용을 매년 받는 구조이다. 백현씨는 바로 농신보의 신용평가 과정에서 이슈가 발생했던 것이다.

일반적인 대출이었다면 이 과정이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부에서 귀농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발된 사람이다. 정부 예산으로 지급보증까지 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일반 자금 융자와 똑 같은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농협이 너무 안이한 방식으로 대출을 해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백현씨가 스트레스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지나서 농협 담당자의 연락이 왔다. 자체 회의에서 대출을 해주기로 했단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보 성격을 가질 수 있는 자산에 대해서만 융자를 해줄 수 있기 때문에, 틀밭을 만들 때 필요한 각종 비용은 대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현씨는 가능하면 농작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틀밭을 선택했다. 멀칭 작업과 로터리작업 등을 하지 않는 무경운으로 토마토를 키워 보기 위함이다. 그만큼 노동력이 적게 들어가는 형태이다. 하우스 1~2동에 방부목재를 이용해서 이랑 2개정도 만들 수 있는 틀밭을 여러 개 만들거란다. 이 작업을 하려면 방부목재 등 재료를 구입해야 하고, 각종 작업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담보가 되지 않는 것들이어서 귀농자금 융자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횡성군의 허가서를 받아서 부딪쳐 보기로 했다.


“농사를 지을 때는 어느 정도 목돈이 있어야 돼. 농작물을 수확하기 전에 거의 대부분 비용이 들어가는데, 수입은 수확하고 난 뒤에 발생하기 때문이야.”

나는 그에게 내년 농사에 필요한 비용을 미리 준비해야 된다고 조언해주었다. 우분이나 계돈분 등 비료나 농약, 멀칭 비닐/점적 테이프 구입 등 대부분의 지출이 수확하기 전에 발생한다. 하지만 정작 수입은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해야 나온다. 비용보다 많은 수입이 발생할 때까지는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해결해야 한다. 특히 초보 농사꾼의 경우 제대로 농작물 재배를 못하게 될 위험까지 있어서, 이에 대비할 충분한 자금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백현씨도 닥쳐올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의 귀농을 위한 과정에서는 앞으로도 몇차례 고비를 맞을 것이다.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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